
얼마 전 학생이 쓴 생활문에서 ‘아기가 트름을 했다’는 문장을 봤습니다. 뜻은 바로 통했는데, 학생은 제 표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집에서는 늘 ‘트름’이라고 들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입에 익은 말은 글자로 옮길 때 더 헷갈립니다. 귀에 자연스럽게 들리는 모습과 사전에서 기준으로 삼는 모습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기준이 된 말은 ‘트림’입니다
국립국어원은 ‘트림’을 표준어로, ‘트름’을 비표준어로 안내합니다. 따라서 글에는 ‘트림이 나왔다’, ‘트림을 했다’, ‘아기에게 트림을 시켰다’라고 적습니다. ‘트름을 했다’도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지만, 표준어에 맞춘 표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구별할 것은 소리의 인상과 단어의 기준입니다. 누군가는 ‘트름’이 몸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더 닮았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렇다고 두 형태가 모두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트림’과 ‘트름’은 뜻을 달리하는 두 단어가 아니라, 같은 일을 가리키면서 형태가 달라진 경우입니다.
사전에서 ‘트림’은 위에서 생긴 가스가 입으로 복받쳐 나오는 일, 또는 그 가스를 뜻합니다. 일상에서는 식사 뒤에 나온 트림도, 우유를 먹은 아기가 한 트림도 같은 단어로 부릅니다. 문장 속에서 조사나 동사가 바뀌어도 명사의 표기는 ‘트림’ 그대로입니다.
왜 ‘트림’이 먼저 자리 잡았을까요?
이 말의 유래를 찾을 때는 ‘트림’의 ‘ㅣ’에 억지로 뜻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상담백서는 ‘트림’을 예부터 써 온 말로 설명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소개한 16세기 문헌 『소학언해』의 용례에도 ‘트림’이 보입니다. 적어도 오래전부터 이 형태가 쓰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옛 문헌에 한 번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오늘의 표준어가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어상담백서는 ‘트림’이 ‘트름’보다 널리 쓰였고, 사전에서도 기준이 되는 형태로 다루어 왔다고 설명합니다. 오래된 쓰임과 실제 사용을 함께 보았을 때 ‘트림’이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가끔 ‘트림은 어떤 말이 줄어서 생겼으니 ㅣ를 써야 한다’는 식의 암기법을 만납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풀이를 어원으로 외우면 다른 단어까지 엉뚱하게 설명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단어를 억지로 쪼개기보다, 오래 쓰인 형태가 ‘트림’이었다는 사실이 더 든든한 기억의 실마리입니다.
‘트름’도 많이 들리는데 함께 인정할 수 없나요?
수업에서 이 질문이 나오면 저는 먼저 표준어 규정 제17항을 이야기합니다. 발음이 비슷한 여러 형태가 같은 뜻으로 쓰일 때, 그중 한 형태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하나만 표준어로 삼는다는 원칙입니다. 국어상담백서는 바로 이 조항을 ‘트림’과 ‘트름’의 관계를 설명하는 근거로 듭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 이야기하다 ‘트름이 나올 것 같다’고 말하면 뜻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드물 겁니다. 하지만 학교 과제나 안내문에 ‘식사 후 트름을 했다’고 적었다면 ‘트림을 했다’로 고쳐야 합니다. 말뜻이 통하는지와 글에서 표준어를 썼는지는 서로 다른 판단입니다.
‘많이 쓰이면 언젠가 표준어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표준어는 언어생활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말이 내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는 느낌만으로 변경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국립국어원의 안내에서는 ‘트름’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트름이 맞았다가 트림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할 근거도 없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문장째 떠올리면 편합니다
두 음절만 따로 외우면 며칠 뒤 다시 ‘트림이었나, 트름이었나’ 망설이기 쉽습니다. 저는 학생에게 짧은 장면을 붙여 기억하게 합니다. ‘우유를 먹은 아기가 트림을 했다.’ ‘급하게 먹었더니 트림이 나왔다.’ 둘 다 자연스럽고, 두 문장 모두 가운데 모음은 ‘ㅣ’입니다.
‘트림하다’처럼 뒤에 ‘하다’가 붙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가 트림했다’라고 쓰면 됩니다. ‘트름하다’로 바꿀 이유는 없습니다. 사전에서 표제어 ‘트림’을 찾고, 그 단어가 실제 문장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함께 읽으면 표기가 훨씬 오래 남습니다.
학생의 글에 표시를 해 둔 뒤, 저는 집에서 들은 ‘트름’도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버릇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익숙한 말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사람이 함께 읽는 글에는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하지요. 그 기준으로 오래 자리 잡은 말이 ‘트림’이라는 사연을 알면, 다음에는 빨간 표시보다 먼저 문장이 떠오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