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숙소에 밤늦게 도착했을 때, 짐에서 가장 먼저 찾은 건 멋진 여행용품이 아니었다. 예약 내역을 보여줄 휴대폰, 충전기, 세면도구였다. 전국에서 숙소를 100곳 넘게 묵으며 느낀 건 비슷하다. 방 사진은 꼼꼼히 보면서도 그 방에서 첫날 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물건은 놓치기 쉽다. 그래서 내 해외여행 준비물 체크리스트는 ‘가져갈 것’보다 ‘언제 꺼낼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출발 전에 확인할 건 물건보다 입국 조건이다
여권을 챙겼다고 끝은 아니다. 유효기간, 방문국의 입국 조건, 경유지에서 필요한 서류를 출발 전에 확인한다. 같은 나라로 가더라도 국적과 체류 목적에 따라 요구 사항이 다를 수 있다. 항공권에 적힌 영문 이름이 여권과 같은지도 확인한다. 이 단계에서 틀리면 짐을 아무리 잘 싸도 여행이 시작되지 않는다.
- 여권과 항공권의 영문 이름, 여행 날짜 확인
- 방문국·경유지의 입국 조건과 필요한 서류 확인
- 숙소 주소와 예약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오프라인에서도 볼 수 있게 보관
- 여권 정보면과 주요 예약 내역을 별도로 저장
숙소 예약 화면은 인터넷이 잘 될 때만 열리는 경우가 있다. 현지 공항에서 데이터 연결이 늦어지거나 배터리가 떨어지면 주소 하나 찾는 일도 길어진다. 나는 숙소 이름과 주소를 현지 언어로도 저장해 둔다. 택시를 타거나 길을 물을 때 영어 표기만 보여주는 것보다 수월했던 적이 많다.
기내용 가방은 첫날 밤을 기준으로 싼다
위탁 수하물이 늦게 나오거나 일정이 꼬이면 큰 캐리어를 바로 열 수 없을 수 있다. 그래서 기내용 가방에는 ‘하루만 따로 살아도 되는 구성’을 넣는다. 속옷과 양말 한 벌, 필요한 상비품, 안경이나 렌즈 용품, 충전 케이블이 기본이다. 약은 원래 포장과 복용 정보를 함께 챙기고, 반입 규정이 걱정되는 약은 방문국 안내를 미리 확인한다.
- 지갑, 여권, 휴대폰, 숙소 주소는 바로 꺼낼 수 있는 칸에 넣기
- 속옷·양말 한 벌과 얇은 겉옷을 기내용 가방에 넣기
- 평소 꼭 쓰는 약과 안경·렌즈 용품 챙기기
- 보조배터리의 기내 반입 기준을 이용 항공사 안내에서 확인하기
여기서 실수하기 쉬운 게 액체류와 배터리다. 용기 크기나 배터리 허용 범위를 예전에 탔던 항공편 기준으로 기억하면 곤란하다. 출발 며칠 전 이용 항공사의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나는 보조배터리를 캐리어 깊숙이 넣었다가 공항에서 다시 꺼낸 뒤로, 짐을 닫기 직전에 한 번 더 확인한다.
숙소 사진에는 안 보이는 물건이 있다
숙소를 많이 다니다 보면 ‘제공’이라는 말의 범위가 제각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곳은 수건이 넉넉하고 어떤 곳은 인원수에 딱 맞는다. 드라이어는 있어도 바람이 약할 수 있고, 침대 옆 콘센트가 책상 뒤에 숨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드라이어와 수건을 무조건 챙기면 짐만 무거워진다. 예약 페이지의 객실 비품 목록과 최근 후기를 보고 내게 중요한 것만 골라 넣는다.
- 콘센트 모양과 전압을 확인하고 필요한 어댑터 준비
- 충전할 기기가 여러 개면 케이블과 충전 포트 수 확인
- 잠귀가 밝다면 귀마개, 빛에 민감하다면 안대 챙기기
- 수영장·해변 숙소라면 젖은 옷을 담을 가벼운 방수 주머니 준비
멀티 어댑터 하나에 모든 걸 맡기지도 않는다. 휴대폰, 카메라, 이어폰을 동시에 충전해야 하는 날에는 포트가 부족하다. 반대로 숙소에 USB 충전 포트가 충분한데 충전기만 여러 개 가져가면 짐이 된다. 여행지 전기 규격을 먼저 보고, 실제로 밤마다 충전할 기기 수를 세는 게 훨씬 정확하다.
돌아올 때까지 쓸 수 있는 짐인지 본다
출발할 때 캐리어가 꽉 차 있으면 돌아오는 날 난감하다. 나는 옷을 날짜별로 전부 나누기보다 서로 맞춰 입을 수 있는 조합으로 고른다. 빨래할 수 있는 숙소인지도 확인한다. 특히 장기 여행은 세탁기 유무에 따라 옷의 양이 크게 달라진다. 세탁기가 있다고 적혀 있어도 객실 안에 있는지, 공용인지,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신발은 걷기 편한 한 켤레를 중심으로 정한다. 사진 찍을 때 예쁜 신발을 따로 챙겼다가 여행 내내 캐리어에서 꺼내지 않은 적도 있다. 반면 숙소 실내화가 없거나 바닥이 차가웠던 곳에서는 가벼운 슬리퍼가 반가웠다. 이런 차이는 여행지보다 묵을 숙소와 내 일정에서 나온다.
출발 전날에는 체크리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보다 여권, 결제 수단, 통신 수단, 첫날 밤 물건 네 묶음만 확인한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 네 가지가 없으면 도착 직후부터 시간이 새어 나간다. 좋은 짐 싸기는 많이 가져가는 기술이 아니라 낯선 숙소에 도착한 순간에도 평소처럼 씻고, 충전하고, 잠들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