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동 향촌마을의 흔적

만수동 향촌마을의 흔적

아파트 단지 아래 남은 마을의 기억

인천 남동구 만수2동과 만수3동 일대에는 과거 향촌마을이라는 저층 주거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도심 주거지로 바뀌었지만, 개발 이전에는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을 일군 주민들의 마을이 존재했다.

향촌마을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일대에 있었던 박촌마을을 살펴봐야 한다. 박촌부락이라고도 불린 이 마을은 현재 만수주공아파트 주변에 있었다. 철마산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예부터 반남 박씨가 많이 거주해 박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만수4동 관할인 만수주공2단지와 만수주공4단지 부지에는 당시 반남 박씨 세양공파 자손 약 30호에서 40호가 모여 살았다. 같은 성씨와 계통을 이은 주민들이 생활 기반을 함께 이루면서 집성촌의 모습을 유지했던 지역이다.

1987년 개발과 박촌마을의 변화

만수동 일대의 모습은 1980년대 후반 대규모 주택 개발을 거치며 크게 달라졌다. 1987년 현재의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반남 박씨 집성촌은 여러 지역으로 분산됐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박촌마을도 이 과정에서 기존 모습을 잃게 됐다.

박씨 주민이 많이 살았던 박촌마을이 사라진 뒤에는 향촌부락이라는 이름이 사용됐다. 개발과 이주를 거친 철거민들과 극히 일부의 박씨 주민은 주공아파트 뒤편과 만수2동·만수3동 인근으로 옮겨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박촌마을과 향촌마을의 변화는 남동구와 인천의 지역사를 다룬 기록에 남아 있다. 기록을 종합하면 이 지역의 변화는 단순한 지명 변경에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건설과 도시 확장 과정에서 기존 마을 주민들의 생활 공간이 이동하고, 집성촌이 분산된 흐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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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진으로 확인되는 향촌마을

1986년 이전 모습을 보여주는 항공지도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987년 만수동 항공사진에서는 당시 공간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에는 개발된 만수주공아파트 대단지 건너편으로 낮은 건물이 밀집한 향촌마을 일대가 나타난다.

당시 향촌마을은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와 마주한 저층 주거지였다. 한쪽에는 새로 조성된 아파트가 넓게 자리하고, 다른 쪽에는 기존 마을의 주택들이 이어져 있어 개발 전후의 주거 형태가 한 지역 안에 함께 나타났다.

그러나 대규모 주공아파트 개발로 인근 지역으로 밀려났던 주민들은 2000년대 초반 다시 생활 터전의 변화를 맞았다. 향촌마을 일대가 또다시 아파트 단지 개발 대상이 되면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다시 옮겨야 했다.

두 번째 개발로 사라진 저층 주거지

2001년에는 노후 주택이 밀집한 남동구 만수2동과 만수3동 향촌마을 일대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당시 보도는 기존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이 공동주택 중심의 주거 공간으로 바뀌는 계획을 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향촌마을을 다룬 보도가 이어졌고, 2004년 무렵까지도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오래된 저층 주택가였던 향촌마을이 철거와 공동주택 건설을 거치며 현재의 도시 공간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2006년 항공사진에서는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향촌마을 일대가 철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사진에서 촘촘하게 보이던 저층 주거지는 사라지고, 대규모 공사를 위한 부지 정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거 이후에는 아파트 단지 조성 공사가 이어졌다. 기존 골목과 주택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공동주택과 단지 기반 시설이 들어섰다. 지역의 주거 환경이 저층 마을에서 대규모 아파트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항공사진에 시간 순서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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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완성된 새로운 도시 모습

2013년 무렵의 항공사진에서는 공사가 진행되던 아파트들이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층 주거지가 이어졌던 향촌마을 일대는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로 바뀌었고, 주변 공간도 현재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1987년 사진에 남은 향촌마을과 2006년의 철거 현장, 2013년의 아파트 단지를 차례로 살펴보면 만수동 일대의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약 30호에서 40호의 반남 박씨 세양공파 자손이 살던 집성촌에서 향촌부락으로, 다시 대규모 공동주택 지역으로 이어진 변화다.

오늘날 현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옛 마을의 주택이나 골목을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개발이 완료된 뒤에는 향촌마을의 물리적인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거리에서는 아파트 건물과 생활 시설이 중심을 이루며, 과거 저층 주거지가 있던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명으로 이어지는 향촌의 흔적

옛 향촌마을을 직접 보여주는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름은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만수동 1117-3에 자리한 향촌소공원은 사라진 향촌마을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다.

인근 버스 정류장과 아파트 단지 이름에서도 향촌이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체인점의 지점명에도 향촌이 사용된다. 예전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 명칭이 공원과 교통시설, 공동주택과 생활권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향촌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만수동 생활권 안에서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만 이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박촌마을에서 향촌부락으로 이어진 지역의 변화와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아파트 개발 과정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수동에 남은 지역사의 한 장면

향촌마을의 역사는 만수동이 오늘날과 같은 아파트 중심 주거지로 변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반남 박씨 집성촌이었던 박촌마을은 1987년 주공아파트 단지 개발로 분산됐고, 이후 향촌부락에 자리 잡은 주민들도 2000년대 초반의 추가 개발로 다시 이주했다.

과거의 주택과 골목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항공사진에는 개발 전 마을과 철거 현장,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이 각각 기록돼 있다. 향촌소공원과 주변 시설에 남은 향촌이라는 이름도 이 지역에 한때 마을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만수동 아파트 단지는 사라진 박촌마을과 향촌마을의 터전 위에서 형성됐다. 현재 남은 지명은 도시 개발로 달라진 공간과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의 역사를 잇는 흔적이다.

만수동 향촌마을의 흔적
만수동 향촌마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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