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 메뉴판에서 신제품을 볼 때면 이름보다 먼저 묻게 된다. 이 음료는 왜 지금 나왔을까. 살구 조이풀 메들리 티는 그 질문이 특히 재미있는 사례다. 스타벅스는 여름에 ‘살구 조이풀 메들리 쉐이큰 티’를 선보였고, 가을에는 같은 조합을 ‘살구 조이풀 메들리 티 라떼’로 다시 내놓았다. 살구라는 맛의 단서를 남겨둔 채, 계절에 맞춰 마시는 방식을 바꾼 셈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과일 티라는 약속
여름 음료에서 살구는 꽤 영리한 선택이다. 레몬이나 자몽처럼 산미를 강하게 예고하지 않으면서도, 복숭아보다 조금 낯선 인상을 준다. 소비자는 이름만 보고도 ‘익숙한 듯 새로운 과일 티’를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 쉐이큰 티라는 형태가 붙으면 기대하는 장면도 분명해진다. 얼음이 든 컵, 흔들어 섞은 차, 더운 날 가볍게 마시는 한 잔이다.
그런데 이름에 과일이 앞선다고 해서 차의 존재감이 사라지면 곤란하다. 살구 향만 남는 달콤한 음료라면 굳이 ‘조이풀 메들리’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약해진다. 브랜드가 약속한 건 단순한 살구맛 음료보다 차와 과일의 조합에 가깝다. 첫 구매는 살구가 이끌 수 있지만, 다음 구매는 그 균형이 결정한다.
같은 이름으로 가을에 돌아온 까닭
10월 스타벅스 코리아의 시즌 행사에는 살구 조이풀 메들리 티 라떼가 등장했다. 여름의 쉐이큰 티가 청량감을 앞세웠다면, 라떼는 부드럽고 따뜻한 쪽으로 마시는 경험을 옮긴다. 새로운 이름을 처음부터 알리는 대신, 이미 소개한 살구와 조이풀 메들리의 조합을 다른 계절에 맞게 쓴 것이다.
이런 확장에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는 처음 보는 메뉴라도 이름의 절반쯤은 안다. 브랜드는 익숙함을 발판 삼아 새 음료를 소개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이름이 같은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차를 시원하고 산뜻하게 마시던 사람이 우유가 더해진 라떼에서도 같은 매력을 느낄지는 별개의 문제다. 재료보다 중요한 건 그 이름을 듣고 기대한 경험이 실제 컵 안에서 이어지는가다.
숫자를 보면 음료의 역할도 달라진다
스타벅스 코리아 메뉴 안내에서 톨 사이즈 살구 조이풀 메들리 티 라떼는 따뜻한 음료가 300㎉, 당류 36g, 카페인 80mg이다. 아이스는 200㎉, 당류 25g, 카페인 50mg으로 표기돼 있다. 같은 이름의 라떼여도 온도에 따라 수치가 꽤 다르다. 주문할 때는 ‘살구 티’라는 이름만 보고 가벼운 차 한 잔을 떠올리기보다, 마시려는 메뉴의 정보를 따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수치는 마케팅 관점에서도 흥미롭다. 여름의 쉐이큰 티가 더위 속에서 집어 들기 쉬운 음료였다면, 가을의 라떼는 달콤한 휴식이나 간식 같은 자리를 노린다. 브랜드가 계절을 바꾸며 같은 맛의 조합에 다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다만 판매 성과나 재구매율이 공개된 것은 아니므로, 이 전략이 성공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브랜드가 지켜야 할 것은 이름보다 기억이다
시즌 메뉴는 타이밍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름에는 얼음이 든 과일 티가 반갑고, 쌀쌀해지면 따뜻한 라떼에 손이 간다. 좋은 기획도 날씨와 출시 시점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새 메뉴가 화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제품의 힘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이 사례에서 눈여겨보는 건 스타벅스가 하나의 이름으로 두 계절을 건넜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기억하는 살구의 향과 조이풀 메들리의 차 맛을 다음 음료에서도 납득할 수 있다면, 그 이름은 신제품 광고보다 오래 일할 수 있다. 반대로 이름만 이어지고 마신 뒤의 인상이 끊기면 익숙함은 금세 실망으로 바뀐다. 브랜드의 약속은 메뉴판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다음에 다시 주문하고 싶은 한 잔에서 증명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