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미미의 아시안게임 결승을 보다가 경기 시작 12초 만에 화면에 뜬 ‘유효’를 다시 확인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결승에서는 연장까지 6분 35초를 싸우고도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첫 공격이 점수가 됐고, 그 점수를 끝까지 지켰다. 금과 은이라는 결과보다 두 결승에서 점수가 만들어진 방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같은 상대와 치른 두 결승의 다른 끝
허미미의 2024년을 이야기할 때 크리스타 데구치와의 두 경기를 빼기 어렵다. 5월 아부다비 세계선수권 여자 57㎏급 결승에서 허미미는 당시 세계 1위였던 데구치를 꺾고 우승했다. 승부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2분 19초. 정규시간 4분을 훌쩍 넘긴 긴 싸움 끝에 상대의 지도 누적으로 금메달을 얻었다. 체력과 집중력이 조금만 흔들려도 놓칠 수 있는 경기였다.
두 달 뒤 파리 올림픽 결승에서 다시 만난 상대도 데구치였다. 이번에도 정규시간 안에 기술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국제유도연맹의 경기 기록을 보면 연장 1분 48초에 데구치가 두 번째 지도를 받아 두 선수 모두 지도 2개가 됐다. 그로부터 47초 뒤, 허미미가 세 번째 지도를 받으며 경기가 끝났다. 최종 경기 시간은 6분 35초였다. 세계선수권에서는 긴 승부를 버텨 금메달을 땄고, 올림픽에서는 똑같이 팽팽한 승부의 마지막 경고가 상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장면을 ‘공격 한 번이 부족했다’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도는 공격의 모양뿐 아니라 잡기 싸움과 경기 운영이 쌓인 결과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서로 다른 선수가 지도 3개를 받았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간격이 얼마나 좁았는지도 보여준다. 허미미의 올림픽 은메달은 아쉬운 패배인 동시에 세계 정상급 선수와 두 차례 결승을 치러 한 번씩 승부를 가져간 기록이다.
은메달 다음에는 회복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다음 대회 성적이 곧바로 이어질 것 같지만, 선수의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허미미는 어깨 수술 뒤 2025년 세계선수권에서 2회전 탈락을 겪었다. 2024년 세계 챔피언이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일찍 멈춘 셈이다. 한 경기 결과만 떼어 놓으면 하락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복귀 과정까지 놓고 봐야 흐름이 읽힌다.
그해 11월 아부다비 그랜드슬램은 그래서 반가운 경기였다. 허미미는 여자 57㎏급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줄리아 카르나를 만나 연장전 누르기로 우승했다. 국제유도연맹도 결승의 승부처를 굳히기로 기록했다. 파리에서 지도 3개로 끝났던 연장 승부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끝내기 기술을 직접 만들어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한 대회 우승만으로 몸 상태를 전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수술 뒤 국제 무대에서 다시 우승했다는 기록은 분명했다.
나고야의 12초가 만든 경기 흐름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허미미는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와 맞붙었다. 경기 시작 12초 만에 업어치기로 유효를 얻었고, 그 점수를 지켜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앞선 8강에서는 중국의 타오위잉을 누르기 한판으로 제압했다. 결승의 이른 점수와 8강의 굳히기를 함께 보면, 이번 대회가 단순히 한 기술에 기대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초반 유효 하나가 금메달을 보장한 것은 아니다. 남은 시간에는 상대의 반격을 견디고 잡기와 자세를 계속 관리해야 한다. 허미미는 파리 올림픽 결승에서는 점수 없이 지도 수가 쌓이는 싸움을 했다. 나고야에서는 먼저 점수를 만든 뒤 상대가 따라와야 하는 경기를 운영했다. 같은 57㎏급 결승이어도 선수에게 요구되는 판단이 달라진다. 그 변화가 이번 금메달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금메달 뒤에도 이어진 경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허미미의 가을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약 2주 뒤 열린 전국체전 여자 일반부 57㎏급에서 다시 우승하며 이 대회 5연패를 기록했다. 8강에서는 경기 시작 1분 9초 만에 누르기 한판승을 거뒀고, 결승에서도 누르기 한판으로 김주희를 꺾었다. 국제대회 우승 직후 국내 무대에서 결과를 이어갔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허미미의 최근 기록을 한 줄로 적으면 세계선수권 금, 올림픽 은, 아시안게임 금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수술과 세계선수권 조기 탈락, 연장전 누르기 승리도 들어 있다. 나는 메달 색보다 이 굴곡이 더 궁금하다. 파리에서 지도 하나로 갈렸던 선수가 나고야에서는 12초 만에 점수를 만들었다. 다음 경기에서 어떤 기술과 운영으로 승부를 풀어갈지 계속 보게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