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30평대 집을 고칠 때 견적서 첫 장에 적힌 금액만 보고 마음이 놓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철거하고 나니 벽 상태가 달랐고, 폐기물 처리비도 따로 붙더군요. 30평 인테리어 3천만원을 생각한다면, 먼저 ‘어디까지 고칠 돈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창호부터 욕실 두 곳까지 전부 바꾸는 예산으로 잡으면 중간에 멈추기 쉽습니다.
3천만원에 넣을 공사부터 정합니다
제가 이 예산으로 계획한다면 도배와 바닥은 전체, 주방은 기존 배관 위치를 유지한 교체, 욕실은 상태가 나쁜 한 곳만 시공합니다. 문과 문틀은 멀쩡하면 교체 대신 필름이나 도장을 검토하고요. 창호 교체,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붙박이장 신설은 처음부터 별도 항목으로 뺍니다. 같은 30평대라도 철거 범위와 집 상태에 따라 견적이 크게 달라서, 이 숫자는 공사 약속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입니다.
계획표에는 ‘반드시’, ‘가능하면’, ‘이번에는 제외’를 나눠 적습니다. 누수 흔적이 있는 욕실 보수는 반드시에 넣고, 멀쩡한 방문 색을 바꾸는 일은 가능하면에 둡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잡으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돈을 쓰고 정작 필요한 보수비가 모자랍니다.
예산은 2천4백만원만 먼저 배분합니다
다음은 제가 견적을 비교할 때 쓰는 예산 배분 예시입니다. 지역, 자재, 철거 후 상태에 따라 실제 금액은 달라집니다. 업체에 이 금액으로 가능한 범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정 견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 철거·폐기물 처리 150만원, 도배 250만원, 바닥 450만원
- 주방 600만원, 욕실 한 곳 450만원
- 문·몰딩 보수와 필름 200만원, 기존 위치 조명 교체 100만원
- 실리콘·보양·운반 등 잡비 200만원
이렇게 잡으면 예정 공사비가 2천4백만원입니다. 남은 600만원은 예비비로 남깁니다. 실제 견적에서 어느 항목이 더 비싸면 다른 항목의 범위를 줄이거나 공사를 미뤄야지, 예비비부터 전부 끌어다 쓰면 곤란합니다. 특히 오래된 집은 철거 뒤 바닥 수평, 벽의 곰팡이, 욕실 방수 상태가 드러납니다. 이런 문제는 사진만 보고 받은 가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주방 600만원도 배치를 그대로 둔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싱크대 위치를 옮기면 급수와 배수, 전기 위치까지 엮입니다. 욕실 역시 타일을 덮어 붙일 수 있는 상태인지, 철거와 방수가 필요한지에 따라 작업 내용이 달라집니다. 누수 흔적이 있다면 비용을 아끼려고 덮어 시공하는 쪽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견적서는 같은 조건으로 세 곳에 요청합니다
업체마다 ‘주방 교체’라는 말에 넣는 일이 다릅니다. 한 곳은 후드와 수전이 포함되고, 다른 곳은 상하부장만 적혀 있을 수 있죠. 저는 실측 뒤 같은 요청서를 세 곳에 보내고, 견적서에서 수량과 자재 규격을 나란히 봅니다. 도배지는 합지인지 실크인지, 바닥은 어떤 제품인지, 욕실은 철거·방수·폐기물 처리까지 포함되는지 확인합니다. 부가세와 관리사무소 공사 신고 비용도 따로 묻습니다.
계약서에는 공사 범위, 자재명, 시작일과 완료 예정일, 대금 지급 시점, 추가 공사 승인 방법, 하자보수 담당자를 적어 둡니다. 현장에서 ‘이건 추가예요’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진행하지 않고 작업 내용과 금액을 글로 받아 확인합니다. 한국소비자원도 인테리어 계약에서 공사 내용과 자재 규격을 구체적으로 적고, 진행 상황을 사진으로 남길 것을 권합니다.
직접 할 일과 맡길 일을 나눕니다
3천만원 예산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직접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가구 이동, 손잡이 교체, 벽지 철거 전 보양, 선반 위치 표시 같은 작업을 직접 맡습니다. 페인트를 칠한다면 벽 상태를 확인하고 퍼티·샌딩·보양 시간을 따로 잡습니다. 칠하는 시간보다 준비와 건조에 더 오래 걸리는 날도 많습니다. 롤러와 보양재는 사도 부담이 적지만, 가끔 쓰는 사다리나 전동 공구는 상태 좋은 것을 빌리는 편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욕실 방수와 배관 이동은 시공업자에게 맡깁니다. 조명도 전구 교체와 배선 변경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천장 배선을 옮기거나 새 회로를 만드는 작업은 직접 진행하지 않습니다. 전기공사업법 시행령은 경미한 전기공사의 범위를 따로 정하고 있으니, 작업 범위가 애매하면 전기 시공업자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판단을 받는 게 안전합니다. 수도관을 자르거나 연결하는 일도 누수 피해가 커질 수 있어 맡기는 쪽으로 잡습니다.
일정은 실측과 범위 결정에 2~3일, 업체 비교와 계약에 약 1주, 현장 공사에 2~3주 정도를 우선 비워 둡니다. 이건 공사 범위가 위 예시와 비슷하고 자재 수급이 원활할 때의 계획치입니다. 철거 후 보수가 생기면 더 걸립니다. 도배와 바닥이 끝난 날 바로 가구를 밀어 넣는 대신, 접착 상태와 환기, 마감 점검 시간도 남겨 둡니다.
30평 집을 3천만원으로 고칠 때 제가 가장 아깝다고 느끼는 돈은 눈에 띄지 않는 예비비가 아닙니다. 서둘러 계약했다가 빠진 공사를 뒤늦게 추가하며 쓰는 돈입니다. 손댈 곳을 조금 줄이더라도, 매일 밟는 바닥과 물 쓰는 공간부터 제대로 고치는 편이 오래 만족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