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입찰을 멈춘 날

상가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입찰을 멈춘 날

법원 입찰장에서 상가 물건을 보다 펜을 내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가격은 괜찮았는데, 점포를 운영 중인 임차인의 계약 시작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옆에서는 “낙찰받으면 새 주인이니 나가 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죠. 상가에서는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입찰표를 쓰기 어렵습니다.

상가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일정한 기간 동안 계약을 이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경매 투자자에게는 명도 시점과 임대수익을 바꾸는 변수입니다. 그런데 ‘임차인이 있으니 무조건 10년 보장’이나 ‘경매로 소유자가 바뀌니 무조건 퇴거’처럼 한 줄로 판단하면 위험합니다.

10년은 낙찰일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은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갱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은 법에서 정한 거절 사유가 없다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최초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 10년 이내입니다. 낙찰자가 소유권을 얻었다고 10년 시계가 처음부터 다시 도는 건 아닙니다.

가령 2019년 6월에 임대차가 시작된 점포를 2026년에 낙찰받는다고 해보죠. 계약이 같은 임대차로 이어져 왔다면 출발점은 2019년입니다. 임차인이 적법하게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따질 때 2026년부터 새로 10년을 세지 않습니다. 반대로 계약서에 적힌 최근 재계약일만 보고 “이제 2년 차”라고 계산해도 틀릴 수 있습니다. 최초 계약서와 갱신계약서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래된 계약은 한 번 더 조심해야 합니다. 10년 규정은 2018년 10월 16일 시행된 개정법과 그 경과규정이 얽혀 있습니다. 대법원은 그 이전에 시작한 임대차가 개정법 시행 뒤 적법하게 갱신됐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계약 시작일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10년 규정을 적용하거나 배제하면 입찰가가 어긋납니다.

경매에서는 갱신권보다 임차권의 생존 여부가 먼저다

제가 권리분석표에 먼저 적는 건 갱신 만료일이 아니라 점유 시작일, 사업자등록 신청일, 선순위 권리의 설정일입니다. 상가 임차인은 건물을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그다음 날부터 대항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경매로 임차권은 원칙적으로 소멸하지만,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한 대항력 있는 임차권은 남을 수 있습니다. 낙찰자가 임대인의 지위를 이어받는지부터 가려야 갱신 요구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의 대항력이 선순위 근저당권보다 앞서고 보증금도 배당으로 다 변제되지 않는다면, 낙찰자가 남은 보증금 반환 부담과 임대차 관계를 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반대로 임차권이 매각으로 소멸하는 경우라면 그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기존 계약의 갱신을 당연히 요구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같은 ‘임차인 점유’라는 표시가 붙어 있어도 입찰 판단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확정일자도 별개로 봅니다.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은 법이 정한 범위에서 경매·공매 대금에 대해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확정일자 날짜만으로 실제 배당액이 정해지는 건 아닙니다. 등기부의 선순위 권리,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임차인의 배당요구와 예상 배당을 맞춰 봐야 합니다. 서류끼리 보증금이나 점유 날짜가 다르면 현장 확인과 추가 자료 확인 없이 숫자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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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세 번 밀렸다는 말도 장부로 확인한다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유는 임차인이 3기의 차임액에 이르도록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입니다. 월세 180만 원이라면 연체액이 540만 원에 이른 적이 있는지를 보는 식입니다. 꼭 세 달 연속 미납이어야 한다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임대인의 구두 설명보다 입금 내역과 연체 계산표가 중요합니다.

무단 전대,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따른 파손 등도 법에 적힌 사유입니다. ‘낙찰 후 내가 직접 장사할 예정’이라는 사정만으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재건축 역시 건물을 헐 계획이라는 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약 당시 구체적인 공사 계획을 알렸는지, 안전상 위험이 있는지 등 법에서 정한 요건을 따져야 합니다. 현장에 가 보면 점포 주인은 이미 인테리어와 단골에 돈을 들였습니다. 서류상 만료일만 보고 쉽게 나갈 거라고 계산하는 건 제 경험상 가장 비싼 낙관입니다.

갱신 요구와 묵시적 갱신도 구분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정해진 기간에 갱신 거절이나 조건 변경을 통지하지 않으면 법상 같은 조건으로 1년간 갱신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임차인은 언제든 해지를 통고할 수 있고, 임대인이 통고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깁니다. 임차인이 반드시 1년을 채워 월세를 낼 거라고 수익표에 적어두면 공실 위험을 놓칩니다.

입찰가에는 남을 보증금과 비는 기간을 넣는다

숫자로 바꿔 보면 판단이 빨라집니다. 낙찰가를 3억 8천만 원으로 예상하고,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 중 배당받지 못할 금액을 3천만 원으로 보수적으로 잡았다면 취득 부담은 이미 4억 1천만 원입니다. 여기에 취득 관련 세금, 법무 비용, 수선비가 붙습니다. 이 3천만 원은 예시일 뿐입니다. 실제 인수액은 권리관계와 배당 결과를 확인해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나간 뒤 새 세입자를 구할 계획이라면 공실도 넣습니다. 월세 180만 원짜리 점포가 6개월 비면 예정 임대료만 1,080만 원입니다. 관리비 부담, 원상복구 협의, 중개비까지 생각하면 ‘시세보다 2천만 원 싸게 낙찰’이 좋은 거래가 아닐 수 있죠. 반대로 기존 임차인이 안정적으로 영업하고 월세를 잘 낸다면 갱신은 비용이 아니라 수익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소가 됩니다.

저는 상가 입찰 전 최초 계약일과 갱신 이력, 점유·사업자등록 시점, 선순위 권리, 보증금의 배당 가능액을 한 장에 나란히 적습니다. 하나라도 확인되지 않으면 낮은 입찰가로 위험을 반영하거나 그 물건을 넘깁니다. 상가 계약갱신청구권은 외워서 맞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점포의 시간표와 돈의 흐름을 끝까지 맞춰 보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상가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입찰을 멈춘 날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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