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1000편 넘게 보다 보니 추천할 때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건 별점이 아니라 그날의 기분입니다. 같은 범죄 영화라도 가볍게 반전을 즐기고 싶은 밤과, 복잡한 사건을 따라가고 싶은 밤은 다르니까요. 웨이브 오리지널 영화 추천을 부탁받으면 저는 <젠틀맨>, <용감한 시민>, <데드맨>을 나란히 놓고 고릅니다. 세 편의 재미가 꽤 다릅니다.
세 편 모두 오리지널이지만 보는 맛은 다릅니다
웨이브가 오리지널 영화로 소개한 이 작품들은 극장에서도 먼저 관객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오리지널’이라는 말만 보고 웨이브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키노라이츠의 시청 정보에는 세 편 모두 웨이브 정액제 감상 작품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다만 OTT 편성과 이용 조건은 달라질 수 있으니 재생 전 작품 화면을 한 번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선택 기준은 간단합니다. 주지훈의 능청스러운 범죄 오락극이 끌리면 <젠틀맨>, 학교 폭력을 향한 통쾌한 액션이 필요하면 <용감한 시민>, 이름을 빼앗긴 남자의 추적극에 집중할 수 있다면 <데드맨>입니다. 아래 이야기는 세 작품의 출발점까지만 다룹니다. 반전과 후반부 사건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가볍게 속고 속이는 재미라면 젠틀맨
<젠틀맨>은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다 누명을 쓴 흥신소 사장이 검사 행세를 하며 사건을 파고드는 이야기입니다. 설정부터 현실적인 수사물보다는 사기극에 가깝죠. 주지훈이 맡은 주인공은 정면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말과 기지를 앞세웁니다. 상대가 무엇을 믿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영화의 추진력입니다.
이런 영화는 반전의 크기만 기대하면 조금 싱거울 수 있습니다. 저는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 인물들이 정보를 언제 꺼내는지에 집중할 때 더 재미있었습니다. 빠른 대사와 장르 특유의 허세를 즐기는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반대로 사건의 개연성을 촘촘하게 따지는 편이라면 몇몇 전개가 편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범죄를 다루지만 분위기는 세 편 중 가장 장난스럽습니다. 다만 15세 이상 관람가이고 폭행과 유혈 장면이 있으니 완전히 순한 오락영화를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머리를 무겁게 쓰고 싶지 않은 밤, 두 시간 안팎의 범죄극을 한 편 보고 싶을 때 먼저 손이 갑니다.
답답함을 깨는 액션이 필요하면 용감한 시민
<용감한 시민>의 주인공 소시민은 한때 복싱 기대주였지만 지금은 기간제 교사입니다. 정규직이 되려면 학교 안의 불의를 못 본 척해야 하는 처지죠. 영화는 그 망설임을 충분히 보여준 뒤 액션의 쾌감을 끌어올립니다. 신혜선의 몸놀림도 볼거리지만, 제게 더 남은 건 ‘나서면 손해’라는 계산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학교 폭력에 분노하는 인물이 직접 맞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가장 고르기 쉬운 작품입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관객이 기다리는 장면도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악역의 행동이 강하고 이야기의 선악도 선명합니다. 인물의 회색지대를 오래 들여다보는 영화를 찾는다면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시청 전 주의가 필요합니다. 청소년을 향한 괴롭힘과 폭력, 위협적인 장면이 나오며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통쾌함을 주는 영화여도 학교 폭력 소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날에는 피하는 게 낫습니다. 그 소재를 감당할 수 있고 답답한 상황이 깨지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세 편 가운데 만족감이 가장 즉각적입니다.
사건의 뒤편까지 따라가고 싶다면 데드맨
<데드맨>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며 돈을 벌던 이만재가 거액 횡령의 누명을 쓰고, 살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면서 시작합니다. <젠틀맨>에도 누명은 등장하지만 무게가 다릅니다. 이 영화는 이름 하나가 거래되는 순간 한 사람이 얼마나 쉽게 지워질 수 있는지를 범죄 미스터리로 풀어갑니다.
조진웅이 맡은 이만재를 따라가다 보면 눈앞의 범인만 찾는 이야기에서 더 큰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넓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인물과 정보가 빠르게 쌓여요. 저는 한 장면씩 단서를 붙잡는 재미가 있었지만, 피곤한 밤에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며 보기에는 불친절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한국형 범죄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도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납치와 감금, 폭력적인 장면이 있어 긴장감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따라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세 편 중 가장 오래 곱씹을 거리를 남깁니다.
오늘 밤 한 편만 고른다면
편하게 웃으며 속고 속이는 판을 즐기려면 <젠틀맨>, 분노 끝에 오는 시원한 액션이 필요하면 <용감한 시민>, 사건의 구조를 하나씩 맞추고 싶다면 <데드맨>입니다. 저는 영화를 추천할 때 ‘가장 잘 만든 한 편’을 단정하기보다 지금 그 사람이 감당하고 싶은 긴장감부터 생각합니다. 오늘의 기분에 맞는 작품이 결국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이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