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제주행 항공권특가를 보고 잠깐 망설였다. 제주에 가면 어디를 가야 한다는 마음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왕복 시간을 고를 수 있는 표가 있어 예약했고, 이번에는 동쪽의 종달리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막상 다녀오니 기억에 남은 건 유명한 풍경보다 아침 골목에서 들리던 그릇 소리와 천천히 문을 여는 가게들이었다.
싼 표를 찾을 때 돌아오는 시간부터 봤다
특가 화면에는 낮은 운임이 먼저 보인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비교한 건 결제 직전의 왕복 총액이었다. 항공운임에 유류할증료와 공항시설사용료가 더해지고, 짐을 부치거나 좌석을 고르면 금액이 달라진다. 에어부산의 국내선 특가 운임처럼 무료 위탁 수하물이 없는 경우도 있다. 짐을 부칠 생각이라면 표 두 장의 표시 가격만 비교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시간도 가격만큼 중요했다. 저녁 늦게 도착해 다음 날 아침부터 움직이는 2박 3일과, 오전에 도착해 첫날 오후를 통째로 걷는 2박 3일은 몸에 남는 길이가 다르다. 반대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너무 이르면 마지막 날은 공항에 가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출발 시각, 귀국 시각, 수하물 조건을 한 화면에 적어 놓고 골랐다. 날짜를 하루 옮겼을 때 숙박비까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봤다.
이번에는 작은 가방 하나로 다녀왔다. 비가 올 때 입을 얇은 겉옷과 여벌 옷을 챙기니 짐이 금방 찼지만, 버스에 오르내릴 때는 가벼운 편이 훨씬 편했다. 항공권특가가 반가운 건 맞다. 다만 그 덕에 하루를 더 머물 수 있는지, 서둘러 떠나야 하는지까지 보고 나서야 내 여행에 맞는 표인지 알 수 있었다.
공항에서 종달리까지 가는 길도 여행이었다
종달리는 제주 동쪽 끝에 가까운 마을이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제주공항에서 제주시버스터미널 쪽으로 이동한 뒤 동쪽으로 가는 버스를 확인하면 된다. 나는 세화 쪽을 거쳐 종달리로 들어갔다. 201번 버스가 세화와 종달리 일대를 지나지만, 같은 번호라도 운행 구간과 정류장 방향이 다를 수 있어 타기 전에 제주 버스정보에서 그날의 경로를 다시 봤다.
버스 창밖으로 큰 건물들이 낮아지고 밭과 돌담이 이어질 때쯤, 표를 싸게 샀다는 생각은 거의 잊었다. 종달리 정류장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길을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해안으로 바로 나갈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을 안쪽 골목을 먼저 돌았다. 집과 밭 사이로 난 길에는 생활의 속도가 있다. 누군가 사는 집 앞에서 오래 서 있거나 담장 너머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금 늦췄다.
종달리에서는 목적지를 줄이는 편이 좋았다
첫날 오후에는 종달리해변까지 걸었다. 모래와 검은 돌이 섞인 바닷가에 서면 우도와 성산일출봉 쪽이 보인다. 비짓제주도 이 해변을 조용히 걷기 좋은 곳으로 소개한다. 그렇다고 언제나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날씨 좋은 주말이나 꽃 피는 계절에는 마을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내가 좋았던 시간은 사진을 찍으러 서둘러 오는 발길이 줄어든 평범한 늦은 오후였다.
다음 날에는 책방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잠깐 들어갔다. 종달리 골목의 작은 책방은 큰 서점처럼 오래 훑어볼 책장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행지에서 책 한 권을 고르는 시간이 느긋했다. 가게의 영업일은 바뀔 수 있으니 한 곳만 보고 멀리 찾아오기보다는, 문이 닫혀 있어도 골목을 걷는 것으로 괜찮은 날에 들르는 게 마음 편하다.
더 걷고 싶다면 마을과 밭길, 바닷길을 잇는 제주올레 21코스를 참고할 만하다. 비짓제주에 따르면 하도리에서 종달리까지 전체 길이는 약 11.1km이고, 걷는 데 3~4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전 구간을 채우려 하지 않고 종달리 주변의 걷기 좋은 부분만 골랐다. 지미봉에 오르는 길까지 욕심내면 쉬는 시간이 짧아질 것 같았다. 다녀온 곳의 수보다 길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남은 오후를 비워 두니 동네가 보였다
종달리에서의 둘째 날 오후에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해안 쪽으로 걷다가 바람이 세지면 골목으로 들어오고, 배가 고프면 그때 식사할 곳을 찾았다. 버스가 자주 오는 도시의 동네와는 달라 돌아갈 교통편은 미리 확인했다. 특히 늦은 시간 비행기를 잡았더라도 공항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넉넉히 남겨 두는 편이 좋다.
항공권특가 덕에 제주에 갔지만, 종달리에서 좋았던 건 저렴한 표와 관계없는 순간들이었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에게 특별한 장면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 동네였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숙소와 돌아오는 차편만 정해 두고, 그 사이에는 또 한 번 아무 목적 없이 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