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여대생 할아버지 살해’라는 뉴스 제목을 보고 징역 5년이라는 숫자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사람이 숨졌는데 왜 5년일까. 사건을 따라가 보니 재판부가 사망이라는 결과와 살해하려는 의도를 구분해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2026년 10월 1심에서 무슨 판단이 나왔나
연합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대학생인 20대 손녀는 2026년 5월 18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80대 친할아버지와 다투다 흉기로 어깨 부위를 찔렀습니다.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손녀는 직후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검찰은 손녀에게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해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반면 손녀 측은 상처를 입히려 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북부지법은 10월 23일 1심에서 살해 의도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존속상해치사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아직 1심 판단이므로 이후 재판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망했는데 왜 살인죄가 아니었을까
두 죄의 차이는 결과보다 당시의 의도에 있습니다. 존속살해는 부모나 조부모처럼 법에서 정한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입니다. 존속상해치사는 직계존속에게 상해를 입힐 의도로 행동했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른 경우입니다. 두 경우 모두 피해자가 숨졌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다만 어떤 의도가 증거로 확인되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죄가 달라집니다.
재판부는 상처 부위와 사건 직후의 행동, 손녀가 남긴 메모와 검색 기록 등을 함께 살폈습니다. 어깨를 찌른 점, 곧바로 구조를 요청하고 심폐소생술을 한 점 등을 고려해 살해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검색 기록도 내용과 맥락을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흉기를 사용한 행동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법원은 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해 숨지게 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형법상 존속살해의 법정형은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고, 존속상해치사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이번 5년형은 재판부가 적용한 존속상해치사죄의 법정 최저형입니다. 검찰의 ‘20년 구형’은 법원에 요청한 형량이지, 이미 선고된 형량은 아닙니다.
가족 갈등이라는 설명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재판부는 함께 살던 가족 사이에 다툼과 폭언·폭력이 누적됐다고 봤습니다. 이런 사정은 사건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있었다는 설명이 사망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가족이니까 참고 견뎠어야 한다는 말만으로 집 안에서 벌어진 폭력의 위험을 지워서도 안 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5년이 너무 짧다’거나 ‘오랜 갈등을 더 봐야 한다’고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피해자가 숨졌다는 사실, 손녀가 한 행동, 법원이 인정한 의도를 나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특히 폭언·폭력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을 모든 가족 갈등에 그대로 대입하거나, 보도되지 않은 사정을 사실처럼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갈등이 위험해진다면
이 판결로 일상에 새 제도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족 간 갈등이 반복되고 위협이나 폭력으로 번질 때, 집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장 다칠 위험이 있다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112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경찰은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상담과 보호가 필요하다면 성평등가족부가 안내하는 여성긴급전화 1366이 24시간 운영됩니다. 의료기관·상담기관·보호시설 연계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이 위험한 상황을 알게 됐을 때도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족 사이의 다툼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벌어진 뒤 형량만 놓고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이번 판결을 읽으며 저는 갈등이 폭력으로 커지기 전에 집 밖의 도움을 받을 길이 실제로 닿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