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손님이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며 “마끼다 그라인더로 원두도 갈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검색창에는 분명 그라인더라고 적혀 있었지만, 화면 속 제품에는 둥근 연마석이 달려 있었다. 같은 이름을 써도 커피 그라인더와 공구 그라인더는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다.
집에서 마신 커피가 로스터리에서 마신 것과 다를 때는 새 장비부터 찾기 쉽다. 그런데 내가 손님과 레시피를 맞춰 보면 원인은 대개 분쇄도, 물 온도, 원두의 로스팅 날짜에 있다. 장비를 사기 전에 무엇을 바꿀 수 있어야 하는지부터 생각하면 선택이 한결 쉬워진다.
마끼다 그라인더인지 먼저 용도를 확인한다
검색 결과에 나오는 마끼다 그라인더는 주로 금속이나 석재를 연마하고 자르는 앵글 그라인더다. 마끼다의 제품 설명에도 연마석과 샌딩 디스크 같은 부속품이 표시된다. 원두를 담는 통, 분쇄도를 조절하는 장치, 식품을 받는 분쇄통이 있는 커피 그라인더와 구조부터 다르다.
그래서 공구에 통을 달거나 날을 바꿔 원두를 갈 생각은 접는 편이 좋다. 분쇄 크기를 커피 추출에 맞춰 조절할 수 없고, 식품과 닿도록 설계된 장비도 아니다. ‘그라인더’라는 단어보다 제품 사진의 날 모양과 제조사가 밝힌 용도를 먼저 봐야 한다. 커피용이라면 원두 투입구와 분쇄도 조절 방식이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
커피용은 분쇄도를 다시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집에서 쓸 그라인더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몇 단계까지 곱게 갈리는지가 아니다. 같은 설정으로 갈았을 때 비슷한 입자가 나오고, 한두 단계 움직였을 때 컵의 맛이 예측 가능하게 달라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분쇄가 들쭉날쭉하면 작은 가루는 먼저 쓴맛을 내고 굵은 조각은 덜 우러나, 한 잔에서 시고 텁텁한 맛이 함께 날 수 있다.
칼날이 회전하며 원두를 잘게 부수는 방식은 작동 시간을 늘려도 입자를 고르게 맞추기 어렵다. 반면 버 그라인더는 두 분쇄날 사이의 간격으로 크기를 조절한다. 커피 그라인더 제조사 바라짜도 버의 종류와 조절 폭을 추출 방식에 맞춰 설명한다. 핸드드립이 주력이라면 중간 굵기를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수동 버 그라인더만으로도 충분하다.
에스프레소를 집에서 자주 뽑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이 짧은 시간에 촘촘한 커피층을 지나므로 미세한 분쇄 조절이 필요하다. ‘에스프레소 가능’이라는 문구만 보지 말고, 아주 고운 영역에서도 설정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드립만 마시는데 에스프레소용 고가 장비를 살 이유는 없다.
예산은 마시는 횟수와 추출 기구에 맞춘다
하루 한 잔 드립을 내린다면 10만 원 안팎의 수동 버 그라인더부터 살펴볼 만하다. 한 번에 15~20g씩 갈 때 손으로 돌리는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은지가 관건이다. 손잡이가 편하고 분쇄도 눈금이 다시 찾기 쉬운 제품이, 조절 단계 숫자만 많은 제품보다 실용적일 때가 많다.
하루 여러 잔을 만들거나 가족이 함께 쓴다면 10만~30만 원대 전동 버 그라인더가 시간을 아껴준다. 이 구간에서는 분쇄 성능과 함께 남은 가루를 털어내기 쉬운지, 분쇄날에 접근해 청소할 수 있는지를 본다. 원두를 바꿀 때마다 오래된 가루가 섞이면 좋은 분쇄날도 제맛을 내기 어렵다. 가격대는 판매 시기와 구성에 따라 달라지니 구매 전 실제 사양을 확인해야 한다.
30만 원 이상은 에스프레소를 자주 만들거나 작은 차이까지 반복해 맞추고 싶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로스터리에서는 한 설정으로 여러 잔을 연속 추출하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말에 드립 두 잔을 내리는 집이라면 남는 예산으로 저울과 온도 조절이 되는 주전자를 마련하는 편이 맛을 바꾸기 쉬울 수 있다.
새 그라인더를 샀다면 한 가지씩 바꾼다
처음 설정을 잡을 때 나는 원두 15g에 물 250g, 물 온도 92~94℃로 시작한다. 드립 총 추출 시간은 대략 2분 30초~3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숫자가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원두와 드리퍼가 바뀌면 물 빠지는 속도도 달라진다. 다만 기준이 있어야 무엇 때문에 맛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양과 온도로 내렸는데 맛이 날카롭게 시고 향이 얇다면 분쇄도를 조금 더 곱게 맞춰 본다. 반대로 혀에 쓴맛이 오래 남고 입안이 마른 듯하면 한두 단계 굵게 돌린다. 그때 물 온도까지 동시에 바꾸면 어느 조절이 효과를 냈는지 알기 어렵다. 맛을 적어 두면 다음 날 같은 원두를 꺼냈을 때 훨씬 빨리 맞출 수 있다.
에스프레소는 원두 18g에서 음료 36g을 약 25~35초에 받는 비율을 시작점으로 쓸 수 있다. 시간이 너무 짧다면 조금 곱게, 지나치게 길다면 조금 굵게 조절한다. 시간은 맛을 짐작하게 해주는 숫자일 뿐이다. 30초에 나왔어도 맛있다면 그 설정을 굳이 고칠 필요는 없다.
분쇄도만큼 원두 날짜도 살핀다
“어제 산 원두인데 향이 약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구매일보다 로스팅 날짜를 먼저 묻는다. 봉투를 산 날과 볶은 날은 다르다. 볶은 뒤 시간이 지나면서 원두의 상태가 바뀌므로, 지난주에 맞춘 분쇄도가 이번 주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원두를 밀폐해 서늘한 곳에 두고, 한 번에 너무 많이 사지 않는 편이 조절하기 쉽다.
분쇄한 가루는 원두보다 향이 빠르게 흐려진다. 가능하면 내리기 직전에 필요한 양만 갈고, 분쇄통에 남은 가루는 가볍게 털어낸다. 내 로스터리에서도 새 원두를 시험할 때 먼저 하는 일은 비싼 장비로 바꾸는 게 아니다. 로스팅 날짜를 보고, 물 온도를 재고, 분쇄도를 한 단계 움직여 다시 한 잔을 내린다. 집에서 맛이 달라지는 순간도 대개 그 작은 조절에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