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 물건을 보다 보면 세입자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전세 만기 연장만 했는데, 보증금은 그대로 안전한 거 아닌가요?” 계약 기간은 늘었어도 집주인의 빚이나 집값이 달라졌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가 전세계약을 연장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도 계약서보다 현재 등기부와 주변 시세입니다.
만기 두 달 전, 어떤 방식으로 연장할지부터 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은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한 번 행사할 수 있고, 갱신 기간은 2년입니다. 집주인이나 그 직계존속·직계비속의 실제 거주처럼 법에서 정한 거절 사유가 있으면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속 살게요”라는 말만 주고받았다면 언제, 어떤 취지로 전달했는지 확인할 기록부터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양쪽이 갱신 거절이나 조건 변경 의사를 법정 기한까지 알리지 않아 기존 조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묵시적 갱신입니다. 이것과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나중에 집을 팔거나 경매로 넘어가면 갱신요구권을 썼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문자로 의사를 전했다면 상대방에게 도달한 내용과 날짜를 남겨 두세요.
예를 들어 만기가 12월 31일이라면 10월 말이 되어서야 대화를 시작하는 건 빠듯합니다. 만료일을 달력에 표시하고 몇 주 여유를 두고 연락하는 게 낫습니다. 묵시적 갱신에 기대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어느 조건으로 계약이 이어졌는지 설명하는 데 시간이 더 듭니다.
보증금이 그대로여도 집의 위험은 달라집니다
전세 만기 연장을 앞두고 등기사항증명서를 새로 발급받아 소유자, 근저당권, 압류·가압류, 경매개시결정 같은 변동을 확인합니다. 2년 전 계약 당시 깨끗했던 등기부가 지금도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집주인이 바뀌었다면 새 소유자와 계약 관계도 확인해야 합니다.
등기부 한 장으로 끝낼 일도 아닙니다. 같은 단지의 최근 매매가격과 전세 호가를 비교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할 때 집을 팔아 충당할 여지가 얼마나 되는지 보수적으로 따져봅니다. 예컨대 보증금 3억 원인 집의 실제 매매 가능 가격이 3억 2천만 원 안팎이라면, 가격 차이 2천만 원만 보고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경매에서는 낙찰가격이 예상보다 낮을 수 있고 선순위 권리도 배당에 영향을 줍니다. 이 숫자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지만, 연장할 때 가격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가구주택은 특히 조심합니다. 내 계약서와 등기부만으로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 규모나 순서를 다 알기 어렵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도 반환보증을 심사할 때 이런 선순위 보증금을 살핍니다. 확인할 수 없는 금액이 큰데 집주인이 “다 괜찮다”고만 하면, 저는 그 말을 안전판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보증금을 올린다면 새로 들어가는 돈을 따로 봅니다
계약갱신요구권에 따른 갱신에서 보증금 증액청구에는 원칙적으로 기존 금액의 5% 상한이 적용됩니다. 3억 원이라면 1천500만 원입니다. 다만 5%는 집주인이 무조건 올려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증액에는 법에서 정한 사유와 조건이 있고, 지역 조례에 따라 상한이 더 낮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합의해 새 계약을 맺는 상황까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금액이 바뀌면 갱신계약서에 기존 보증금, 증액분, 새 만료일, 실제 지급일을 분명히 적습니다. 기존 계약서는 버리지 않고 함께 보관합니다. 증액분은 새 확정일자를 받아도 기존 보증금과 같은 순위로 소급되는 게 아닙니다. 기존 확정일자와 전입·점유를 유지하는 문제, 추가로 낸 돈의 우선순위 문제를 나눠 봐야 합니다. 그 사이 선순위 근저당권이 생겼다면 증액분 회수 가능성은 더 신중히 계산해야 합니다.
가령 기존 보증금 3억 원에 1천만 원을 더 넣기로 했다면, 저는 추가 1천만 원도 회수할 수 있는지 별도로 봅니다. 계약서에 숫자만 고쳐 적고 송금하는 건 위험합니다. 계약 상대방이 현재 소유자인지 확인하고, 지급 기록을 남긴 뒤, 새 계약 내용에 맞는 확정일자와 임대차 신고도 챙기는 순서가 낫습니다.
대출과 반환보증은 자동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세대출을 쓰고 있다면 계약 연장 전에 취급 은행에 갱신 심사 일정과 필요한 서류를 묻습니다. 보증금이 늘거나 집주인이 바뀌면 확인할 사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기 직전에 은행에 연락했다가 대출 일정과 계약 일정이 어긋나면 세입자도 집주인도 곤란해집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보증기간과 갱신 절차도 따로 확인합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갱신계약의 신청 시기와 심사 조건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기존 보증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장된 계약 기간까지 보장된다고 넘기지 마세요. 계약 방식과 보증금 변동에 맞춰 실제 보증서의 기간·금액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정이 바뀌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면 종료 의사를 기한 안에 분명히 전하고 기록을 남깁니다. 계약이 끝났는데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먼저 이사해야 하는 상황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입과 점유를 잃으면 권리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권등기명령 제도가 있지만, 신청만 해두고 등기가 마쳐지기 전에 이사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전세 만기 연장은 날짜를 늘리는 서류 작업처럼 보입니다. 현장에서는 그날의 집값, 선순위 권리, 돌려받을 경로를 다시 판단하는 순간에 더 가깝습니다. 살던 집이라 익숙하다는 이유로 숫자 확인을 건너뛰는 일이 저는 가장 아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