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교무실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교장 선생님 지금 있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뜻은 통했지만, 교장 선생님이 교무실에 머무는지를 묻는 말이라면 “지금 계세요?”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에서는 ‘있으세요’가 맞습니다. 두 문장에 같은 사람이 나오는데도 말이 달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계시다 있으시다 차이’를 외울 때 사람에게는 ‘계시다’, 물건에는 ‘있으시다’라고만 기억하면 곧 막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처럼 사람을 두고도 ‘있으시다’를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있다’가 그 문장에서 무슨 뜻인지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어디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계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계시다’를 사람이 어느 곳에 머무른다는 뜻의 동사 ‘있다’에 대응하는 높임말로 풀이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방에 계신다”,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에 계세요”, “사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가 이 쓰임입니다. 높임을 받는 사람이 직접 그 장소에 있는 것이지요.
전화로 “어머님 있으세요?”라고 묻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상대가 그 뜻을 몰라듣지는 않지만, 어머님이 집에 머무는지 확인하는 상황이라면 “어머님 계세요?”가 알맞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방에 있으신다”보다 “방에 계신다”가 자연스러운 이유도 같습니다. 이때의 ‘있다’는 단순히 무엇이 존재한다는 뜻보다 그곳에 머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낼 때도 ‘계시다’가 쓰입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읽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주무시고 계신다”처럼 말합니다. 여기서는 ‘읽고 있다’, ‘주무시고 있다’의 ‘있다’가 앞 동작의 진행을 돕습니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없어도 ‘계시다’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가진 것과 예정된 일이 있다면 ‘있으시다’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계시다”와 “할아버지께서는 집이 있으시다”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또렷합니다. 앞 문장은 할아버지의 위치를 말합니다. 뒤 문장은 할아버지에게 집이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집에’와 ‘집이’ 한 글자 차이로 묻는 내용이 바뀌는 셈이지요.
“어머니께서 약속이 있으시다”, “선생님께서는 시간이 있으세요?”, “할아버지께서는 손자가 있으시다”도 같은 갈래입니다. 약속, 시간, 손자처럼 높임의 대상과 관련된 것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문장에서는 그 사람에게 딸린 사정이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높입니다. 국립국어원도 ‘집에 계시다’와 ‘집이 있으시다’를 이 차이로 설명합니다.
가령 병원 접수대에서 “원장님 계세요?”라고 하면 원장님이 지금 병원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원장님, 오늘 빈 시간이 있으세요?”라고 하면 진료 일정에 여유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둘 다 원장님을 높이지만, 앞 문장의 중심은 사람이 머무는 자리이고 뒤 문장의 중심은 빈 시간입니다.
사람을 말해도 ‘있으시다’가 맞을 때
수업에서 “사람이면 무조건 ‘계시다’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를 떠올리면 답이 보입니다. 이 문장은 특정한 분들이 어느 장소에 머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이 경우 형용사 ‘있다’의 높임 표현인 ‘있으시다’가 어법에 맞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이 계십니다”와 “동의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를 무조건 같은 장면의 정답과 오답으로 가를 수는 없습니다. 회의실 안에 있는 분들을 가리키며 그분들이 그 자리에 머문다는 뜻이면 ‘계십니다’가 어울립니다.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이면 ‘있으십니다’가 맞습니다. 사람이라는 낱말 하나보다 문장이 전하려는 뜻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문법 용어로 풀면 머무른다는 뜻의 ‘있다’는 동사이고, 무엇이 존재하거나 누구에게 무엇이 있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있다’는 형용사로 쓰입니다. 다만 일상 문장을 볼 때마다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먼저 판정하려 들면 오히려 어렵습니다. “어디에 머무는가, 무엇이 있는가, 존재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물어보면 문법 설명도 뒤따라 이해됩니다.
‘계시다’가 따로 굳어진 까닭
‘계시다’는 ‘있다’에 ‘-시-’를 붙여 만든 ‘있으시다’와 모양부터 다릅니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역사 정보에 따르면 ‘계시다’의 옛말 ‘겨시다’는 15세기 문헌에 나타납니다. ‘겨-’에 높임을 나타내는 ‘-시-’가 결합한 것으로 추정하며, 16세기에는 첫 음절이 바뀐 ‘계시다’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는 높임의 뜻을 지닌 하나의 단어로 씁니다.
흥미로운 점은 옛 ‘겨시다’가 지금의 ‘계시다’ 자리뿐 아니라 오늘날 ‘있으시다’를 쓰는 자리에도 쓰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구별하는 방식이 처음부터 똑같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말이 오래 쓰이는 동안 뜻에 따라 자리가 나뉜 것이지요.
두 표현이 헷갈릴 때 저는 학생들에게 문장 속 ‘있다’를 잠시 다른 말로 바꾸어 보라고 합니다. ‘머무르다’가 자연스러우면 ‘계시다’, ‘가지다’나 ‘존재하다’가 뜻에 가까우면 ‘있으시다’를 떠올립니다. “아버지께서 집에 계신다”와 “아버지께서 집이 있으시다”를 함께 읽으면, 높임말의 모양보다 말하려는 장면이 먼저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