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업에서 “가방 단디 챙겨라”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단디가 가방 이름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옆자리 학생은 뜻을 알아듣고 웃었고요. 같은 한국어인데도 자란 곳에 따라 귀에 들어오는 말이 다릅니다. 경상도 사투리 테스트가 재미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낱말 하나를 맞히는 동안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생활 장면까지 떠올리게 되니까요.
아래 다섯 문장을 먼저 읽어 보세요. 답을 외워 맞히기보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말했을지를 생각하면 훨씬 잘 들립니다.
먼저 풀어 보는 경상도 사투리 테스트
- 1. “사람이 마이 왔네.” 여기서 ‘마이’는 무슨 뜻일까요?
- 2. “비가 억수로 온다.” 비가 어느 정도 온다는 말일까요?
- 3. “준비물 단디 챙겨라.”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뜻일까요?
- 4. 친구가 장난을 계속 치자 “고마 해라”라고 합니다. 어떤 마음일까요?
- 5. 나가려는 사람에게 “어디 가노?”라고 묻습니다. 상대에게 듣고 싶은 답은 무엇일까요?
다섯 문제 가운데 몇 개가 바로 들렸나요? 처음 두 문제는 앞뒤 단어가 힌트입니다. ‘사람이 왔다’, ‘비가 온다’는 사실은 이미 알 수 있으니, 낯선 말은 그 수량이나 정도를 보태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상황과 문장 끝을 함께 봐야 뜻이 또렷해집니다.
‘마이’와 ‘억수로’는 문장의 크기를 키웁니다
1번의 ‘마이’는 ‘많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마이 왔네”는 사람이 많이 왔다는 말이지요. 2번의 ‘억수로’는 ‘매우’, ‘몹시’에 가까운 말입니다. 따라서 비가 억수로 온다면 조금 흩뿌리는 비가 아니라 상당히 세게 오는 비를 떠올리면 됩니다. 국립국어원의 방언 자료에도 “비가 이래 마이 오노”, “바람도 억수로 불고”처럼 두 표현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두 말을 무조건 같은 뜻으로 바꾸면 문장이 어색해집니다. ‘마이’는 ‘많이’처럼 양을 나타내는 자리에 자연스럽고, ‘억수로’는 정도를 힘주어 말할 때 잘 어울립니다. “숙제를 마이 했다”와 “숙제가 억수로 어렵다”를 나란히 읽으면 차이가 들리지요. 낯선 사투리를 만났을 때 뜻풀이 한 줄보다 실제 문장 두 개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단디’와 ‘고마’는 상황까지 들어야 보입니다
3번의 “단디 챙겨라”는 준비물을 빠뜨리지 않게 제대로, 꼼꼼히 챙기라는 뜻입니다. ‘단디’를 그저 ‘빨리’로 알아들으면 급히 집어 들기만 하고 필요한 물건은 놓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 아이의 옷깃을 여미며 “단디 입어라”라고 할 때도 속도를 재촉하기보다 허술한 데가 없도록 하라는 마음이 담깁니다.
4번의 “고마 해라”는 “그만해라”에 가깝습니다. 친구의 장난을 멈추게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고마’가 들릴 때마다 기계적으로 ‘그만’을 끼워 넣을 수는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에 실린 방언 연구자들의 대화에서는 경상도 말의 ‘고마’가 대화 중간에 들어가 말맛을 더하는 쓰임도 소개합니다. 앞뒤 말을 빼고 낱말 하나만 떼어 낸 퀴즈가 실제 대화보다 쉬운 듯하면서도 때로는 틀리기 쉬운 까닭입니다.
같은 말도 표정과 관계에 따라 세기가 달라집니다. 웃으며 하는 “고마 해라”와 화가 나서 하는 “고마 해라”는 글자만 보면 같아도 듣는 사람에게 다르게 닿습니다. 방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낱말장을 외우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입니다.
‘어디 가노?’의 답은 문장 끝에 있습니다
5번에서는 상대가 가는 장소를 묻고 있습니다. “학교 간다”, “시장 간다”처럼 어디로 가는지 답하면 되지요. ‘어디’라는 의문사가 있으니 단순히 ‘응’이나 ‘아니’로 끝낼 질문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이 소개한 우리말샘의 설명에서도 경상 방언의 의문형 어미 ‘-노’는 의문사가 있는 질문에서 쓰이는 형태로 풉니다. “어디 가노?”를 읽을 때 ‘어디’와 ‘-노’를 한 묶음으로 보면 문장의 짜임이 보입니다.
여기서 사투리를 흉내 낸다고 아무 문장 끝에나 ‘노’를 붙이면 자연스러운 경상도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끝에는 나름의 쓰임이 있습니다. 또 부산, 대구, 안동의 말을 하나로 묶어 점수를 매길 수도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의 방언 연구 자료는 경상북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말소리와 어휘, 어법이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가족 안에서 쓰는 표현이나 세대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요. 이 다섯 문제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판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말의 문맥을 듣는 작은 연습으로 보는 편이 알맞습니다.
학생에게 다시 “가방 단디 챙겨라”라고 말했을 때는 “필통이랑 공책 빠뜨리지 말고”를 덧붙였습니다. 그제야 그 학생도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다음에 같은 말을 들으면 아마 ‘단디’의 뜻보다 그때 챙기던 가방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말은 그렇게 장면과 함께 익힐 때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