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조선 시대 인물을 찾아보다가 사방지라는 이름에서 한참 멈췄어요. 어떤 글은 그를 남녀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지닌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또 어떤 글은 여장을 한 노비라고만 설명하더라고요. 같은 사람인데 설명이 왜 이렇게 다를까요? 세조실록의 기록을 날짜순으로 읽으면,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문제 삼았는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먼저 1462년의 기록부터 읽기
사방지가 처음 크게 등장하는 기록은 1462년 4월 27일 세조실록입니다. 사헌부 관리는 이씨 집의 가인인 사방지가 여성의 옷을 입고 다닌다며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가인은 집안에 속해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467년 기록은 사방지를 안맹담의 종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적고 있어요.
세조는 사람을 보내 사방지의 몸을 살피게 했습니다. 기록에는 머리 장식과 옷차림이 여성의 것이었고, 신체에는 남성의 특징이 있었으며 일부 구조가 보통과 달랐다고 나옵니다. 살펴본 관리들은 사방지를 ‘이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음과 양, 남성과 여성을 나누던 당시의 언어로 자신들이 본 모습을 표현한 것이죠. 이 대목만으로 사방지의 몸 상태를 현대 의학의 특정 진단명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을 읽을 때 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옵니다. 관리는 여성의 옷을 입는 데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라며 가두고 신문하자고 했어요. 옷차림 자체가 의심의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오늘날에는 한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는지만으로 그 사람의 성별이나 삶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조정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씨와의 관계는 어떻게 알려졌을까
사방지가 드나들던 집의 주인은 남편과 사별한 이씨였습니다. 이씨의 아버지는 천문학자로도 알려진 이순지였고요. 실록은 사방지와 이씨가 여러 해 가까운 관계였다고 적습니다. 1467년 기록에는 두 사람이 같은 그릇으로 음식을 먹고, 함께 앉거나 누우며, 옷 색깔까지 맞췄다는 묘사도 나옵니다. 두 사람이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그 관계를 못마땅하게 바라본 기록자의 시선도 담긴 문장입니다.
사방지는 바느질을 잘했고 여성의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씨 집에서는 다른 노비들이 사방지를 집주인처럼 대했다는 대목도 있어요. 그런데 실록이 전하는 관계의 모습만 보고 두 사람의 마음속 사정까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사방지 자신의 말이나 일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주로 사건을 조사하거나 논의한 사람들의 기록이니까요.
이 사건에는 신분 차이도 얽혀 있었습니다. 한쪽은 유력한 집안의 과부였고 다른 한쪽은 종이었습니다. 세조는 처음에 이씨 아버지의 집안이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일로 흠을 입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방지 개인의 처지와 사대부 집안의 평판이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조의 판단은 왜 여러 번 달라졌을까
1462년 기록을 하루치만 읽으면 세조가 사방지를 엄하게 조사하려 했는지, 조사를 막으려 했는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4월 27일에는 의금부에 가두어 조사하도록 했지만, 이틀 뒤에는 사방지를 병자라 부르며 다시 추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5월에는 조사 요구가 이어졌고, 이순지를 파직하라는 명령도 나왔어요. 실록에는 사방지를 국문할 만한 증거가 충분한지, 이미 사면된 일인지 등을 두고 벌인 논의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세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방지를 보호했다’거나 ‘곧바로 중형에 처했다’는 설명은 기록의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왕의 판단은 조사 절차, 증거, 이씨 집안의 지위,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실제로 1462년에는 사방지를 이순지에게 맡겼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년 뒤인 1467년 4월 5일, 사방지가 다시 이씨 집에 들어갔다는 일이 조정에서 거론됐습니다. 신하들은 먼 곳으로 보내거나 더 무겁게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조는 한때 다시 용서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사방지를 지방 관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기록 이후 사방지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까지는 실록만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의 이름을 붙일 때 조심할 점
사방지를 소개할 때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같은 현대의 말을 곧바로 붙인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쓰이지만, 사방지가 스스로 자신의 몸과 성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실록의 신체 묘사만으로 정체성을 확정할 수도 없고요. 당시 관리가 사용한 ‘이의의 사람’이라는 표현 역시 사방지 자신의 설명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사방지를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보다 세 가지를 나눠 읽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실록이 적은 신체와 옷차림, 조정이 문제 삼은 이씨와의 관계, 그리고 사방지에 대해 끝내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구분만 해도 누군가의 삶을 자극적인 일화 하나로 소비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세조실록의 1462년 4월 27일 기사와 1467년 4월 5일 기사를 차례로 읽으면, 사방지보다 그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훨씬 크게 들립니다. 저는 그 빈자리가 오래 마음에 남아요. 이름은 수백 년을 건너왔는데,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는 기록 속에 거의 없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