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PC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이 안 나온다며 본체를 들고 왔습니다. 그래픽카드 고장을 의심했지만, 원인은 살짝 빠진 모니터 케이블이었습니다. 반대로 케이블 문제로 보였던 PC에서 저장장치 불량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PC수리는 증상만 보고 부품을 찍는 것보다, 어디까지 정상 작동하는지 순서대로 확인하는 편이 빠릅니다.
전원이 안 켜질 때는 전원 경로부터 확인한다
전원 버튼을 눌러도 팬과 LED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면 윈도우를 볼 단계가 아닙니다. 멀티탭 스위치, 전원 케이블, 본체 뒤 파워서플라이 스위치를 먼저 확인합니다. 콘센트를 바꿔 연결해 보는 것도 간단한 구분법입니다. 멀티탭에 연결된 다른 기기가 켜진다고 해서 그 자리에 꽂힌 PC 플러그까지 정상 접촉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최근 조립하거나 본체를 옮겼다면 메인보드의 24핀 전원과 CPU 보조전원 커넥터가 끝까지 들어갔는지 봅니다. 버튼을 누를 때 팬이 잠깐 돌다 멈추는 증상은 전원 공급 문제뿐 아니라 부품 접촉 불량이나 쇼트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전원 케이블을 뽑고 파워 스위치를 끈 뒤 점검하세요. 파워서플라이 내부를 여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전원을 분리해도 내부 부품에는 전하가 남을 수 있습니다.
타는 냄새가 나거나 커넥터가 변색됐다면 반복해서 전원을 넣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때는 사진을 남기고 점검을 맡기는 편이 부품 손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팬은 도는데 화면이 없다면 출력 경로를 좁힌다
팬이 돈다는 사실만으로 부팅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니터 전원과 입력 신호 선택을 확인하고, 케이블을 양쪽에서 다시 꽂습니다. 외장 그래픽카드를 쓰는 PC라면 모니터 케이블이 그래픽카드 출력 단자에 연결돼 있는지도 봅니다. 메인보드 단자에 꽂으면 CPU의 내장 그래픽 지원 여부와 설정에 따라 화면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케이블과 모니터를 바꿔도 그대로라면 메인보드의 진단 LED를 확인합니다. CPU, DRAM, VGA, BOOT 중 어디에 불이 남는지 사진으로 기록해 두면 다음 점검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LED가 가리키는 부품이 반드시 고장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DRAM 표시가 남아도 메모리 접촉이나 설정 문제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메모리를 다시 꽂을 때는 전원을 끄고 케이블을 뽑은 뒤, 슬롯의 걸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합니다. 메모리가 두 개라면 하나씩 장착해 부팅을 비교합니다. 어느 슬롯에 한 개를 꽂아야 하는지는 메인보드 설명서를 따르는 편이 정확합니다. 부품을 여러 개 한꺼번에 바꾸면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알기 어려워집니다.
윈도우가 뜨다가 멈추면 데이터부터 챙긴다
제조사 로고나 BIOS 화면은 보이는데 윈도우 로딩 중 멈춘다면 전원 불량과는 접근이 달라집니다. 최근 설치한 드라이버, 윈도우 업데이트, 새로 연결한 주변기기를 먼저 떠올려 보세요. 부팅이 가능하다면 중요한 파일을 외장 저장장치 등에 복사한 뒤 점검을 이어갑니다. 오류가 잦은 저장장치에 복구 명령이나 검사를 반복하면 파일을 꺼낼 기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바탕화면에 들어갈 수 있다면 작업 관리자에서 디스크 사용률이 계속 높게 유지되는지 보고, 저장장치 상태를 확인합니다. 파일 복사 중 읽기 오류가 나거나 드라이브가 간헐적으로 사라진다면 소프트웨어 수리보다 데이터 확보가 우선입니다. 저장장치 상태가 괜찮고 최근 드라이버 변경 직후 문제가 시작됐다면 해당 드라이버를 되돌리거나 안전 모드에서 제거하는 순서가 낫습니다.
윈도우 파일 손상이 의심되고 백업도 끝났다면 관리자 권한 명령 프롬프트에서 DISM /Online /Cleanup-Image /RestoreHealth를 실행한 다음 sfc /scannow로 시스템 파일을 검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은 하드웨어 고장을 고치지 못합니다. 실행 결과가 정상이어도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 저장장치, 메모리, 온도처럼 다른 원인을 다시 봐야 합니다.
수리비를 쓰기 전에 증상을 기록한다
PC수리를 맡길 때는 ‘가끔 안 된다’보다 재현 조건이 훨씬 유용합니다. 전원 버튼을 누른 뒤 몇 초 만에 꺼지는지, 화면이 아예 없는지, 게임을 켤 때만 재시작하는지 적어 둡니다. 오류 문구와 진단 LED는 사진으로 남기고, 최근 교체한 부품이나 설치한 프로그램도 함께 전달합니다.
게임 중에만 꺼진다면 작업을 하지 않을 때와 게임을 실행할 때의 CPU·그래픽카드 온도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온도가 높다고 곧바로 쿨러를 사기보다 팬 작동, 먼지, 케이스 통풍을 먼저 확인합니다. 반대로 평소에도 갑자기 전원이 끊기면 온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전원과 부품 접촉 상태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PC를 볼 때 가장 시간을 아끼는 방법은 증상을 한 문장으로 정확히 쓰고, 확인할 항목을 하나씩 바꾸는 것입니다. 케이블 하나로 끝나는 일도 있고 부품 교체가 필요한 일도 있지만, 그 순서를 지키면 불필요한 구매와 데이터 손실을 꽤 줄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