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진센터에서 일할 때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라며 가슴 답답함까지 피로로 넘기는 분을 만났습니다. 병동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 피곤함은 흔하지만, 그 말만으로 새로운 증상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꼭 구분해서 말씀드리는 건 지금 쉬어야 할 때와 지금 진료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과로사 전조증상이라는 말, 무엇을 뜻할까요?
과로사는 하나의 병명이 아닙니다. 장시간 노동과 관련된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한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같은 순서로 나타나는 ‘과로사 전조증상’ 목록도 없습니다. 심근경색은 가슴 통증으로, 뇌졸중은 갑작스러운 마비나 언어장애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뚜렷한 경고를 느끼지 못한 채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의 분석에서는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의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졸중 위험이 주 35~40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높았습니다. 다만 근무시간만으로 개인의 질병을 예측하거나, 지금 느끼는 증상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흡연, 수면 부족 같은 조건도 함께 봐야 합니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넘기기 쉬운 신호
쉬고 나면 나아지는 피로와 달리, 새로 생긴 가슴 압박감이나 숨참은 그냥 지켜볼 증상이 아닙니다. 가슴을 세게 찌르는 통증만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가슴이 무겁거나 조이는 느낌, 턱·목·등·팔로 번지는 불편감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식은땀이나 메스꺼움이 함께 오기도 합니다. 질병관리청은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 호흡곤란, 턱·목·등 또는 팔·어깨의 통증을 심근경색의 조기증상으로 안내합니다.
뇌졸중은 양상이 다릅니다.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야 이상, 중심을 잡기 힘든 어지럼, 경험해 보지 못한 심한 두통도 주의해야 합니다. 잠깐 좋아졌다고 안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변화가 있었다면 증상이 시작된 시각을 기억하고 바로 119에 연락하세요. 직접 운전하거나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반대로 피로, 두통, 두근거림만으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과로 탓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병동에서 환자분 이야기를 들을 때도 ‘원래 있던 증상인지’, ‘갑자기 시작됐는지’, ‘평소와 강도가 다른지’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그 차이가 진료의 긴급도를 가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검진 수치가 괜찮았어도 안심해도 될까요?
최근 검진 결과가 정상이었다는 말은 현재 나타난 증상을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검진은 검사받은 시점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특히 가슴 통증이나 갑작스러운 신경 증상이 생겼다면 이전 결과지를 찾아보느라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집에서 잰 혈압이 매우 높을 때도 증상부터 봐야 합니다. 수축기 혈압이 18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120mmHg 이상으로 나오면 잠시 안정을 취한 뒤 다시 측정하고 의료진과 신속히 상의하세요. 가슴 통증, 숨참, 시야 변화, 마비, 말하기 어려움이 함께 있으면 재측정이나 예약을 기다리지 말고 119에 연락해야 합니다. 미국심장협회도 이처럼 높은 혈압에 새롭고 우려되는 증상이 동반되면 응급상황으로 안내합니다. 반면 한 번 높게 나온 수치만으로 약을 임의로 더 먹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검진 결과지에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이상이 적혀 있다면, 수치 하나보다 이전 결과와의 변화 및 현재 복용 중인 약을 함께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수치가 경계에 있다는 이유로 응급 증상을 가볍게 봐서도 안 되고,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반복되는 이상 수치를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 갑자기 가슴이 조이거나 심하게 아프고, 숨이 차거나 식은땀이 나면 즉시 119에 연락하세요.
- 한쪽 마비, 언어장애, 시야 이상,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이 생기면 곧바로 119에 연락하세요. 증상이 가라앉아도 진료가 필요합니다.
- 평소와 다른 피로·두근거림·숨참이 반복되거나 휴식 후에도 낫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 진료를 받으세요.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다면 더 미루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증상이 시작된 때, 지속 시간, 함께 나타난 증상, 최근 근무와 수면 상태, 복용 중인 약을 말해 주세요. 저는 환자분께 병명을 짐작하기보다 변화를 정확히 전해 달라고 말씀드립니다. 과로가 걱정될수록 몸의 신호를 ‘일이 많아서’라는 한마디로 덮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갑작스럽고 평소와 다른 증상이라면,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