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관리 앱을 기획하면서 자주 본 장면이 있습니다. 워치에는 혈압이 정상 범위로 표시되는데, 진료실에서는 높게 나와 어느 숫자를 믿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입니다. 손목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편리함과 진료에 쓸 수 있는 정확도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손목의 숫자는 어떻게 나올까요?
일반적인 상완 커프형 혈압계는 팔을 압박했다가 풀면서 혈압을 측정합니다. 반면 많은 스마트워치는 손목의 광학 센서로 혈류 변화를 읽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혈압을 추정합니다. 같은 ‘혈압’ 화면이라도 값을 얻는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삼성 헬스 모니터의 혈압 기능은 별도의 상완 커프형 혈압계로 워치를 먼저 보정해야 합니다. 삼성전자 사용 설명서에는 보정 후 28일 동안 워치로 측정할 수 있다고 안내돼 있습니다. 커프가 처음부터 필요 없는 기능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보정에 쓴 혈압계의 상태나 측정 자세가 잘못되면 그 기준값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능 이름도 구분해야 합니다. 애플워치의 ‘고혈압 알림’은 손목에서 수축기·이완기 혈압 수치를 재는 기능이 아닙니다. 일정 기간의 심장 데이터에서 고혈압이 의심되는 패턴을 찾아 알리는 방식입니다. 애플은 알림을 받은 뒤 별도 커프형 혈압계로 7일간 혈압을 기록하고 의료진과 상담하도록 안내합니다. 워치의 알림과 혈압계의 측정값을 같은 것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도를 가르는 건 측정 순간만이 아닙니다
보정 직후 커프형 혈압계와 비슷한 숫자가 나왔다고 해서 한 달 내내 같은 수준의 정확도가 유지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혈압은 시간대, 운동, 카페인, 수면, 약 복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워치의 착용 위치와 밀착 정도, 움직임, 센서가 닿는 피부 상태도 측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미국심장협회는 커프가 없는 혈압 측정 기술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정확도와 장기간 성능에 관한 근거가 고혈압 진단이나 치료 결정에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몇 mmHg까지 오차가 난다’는 한 숫자로 모든 워치의 정확도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품과 사용 조건이 다르고, 안정된 자세에서 보정 직후 비교한 결과가 평소 생활 중 성능까지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역시 혈압 앱의 수치를 고혈압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는 용도로 쓰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부정맥이나 일부 심혈관 질환 등 사용에 주의가 필요한 상태도 설명서에 명시돼 있습니다. 혈압 기능이 제공되는 모델인지, 거주 지역에서 쓸 수 있는지, 본인에게 사용 제한 사항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워치와 커프형 혈압계는 이렇게 역할을 나눕니다
워치는 평소와 다른 변화가 있는지 알아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워치 수치 하나로 ‘고혈압이 생겼다’거나 ‘약이 잘 듣는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워치에 정상처럼 표시됐다는 이유로 반복해서 높게 나오는 상완 혈압계 수치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진료를 위해 기록할 때는 검증된 상완 커프형 혈압계를 기준으로 삼는 편이 낫습니다. 미국심장협회의 가정혈압 측정 안내는 측정 전 5분 이상 조용히 앉아 쉬고, 발은 바닥에 두며, 팔을 심장 높이에 놓도록 권합니다. 카페인 섭취·흡연·운동은 측정 전 30분 동안 피하고, 1분 간격으로 두 번 재서 날짜와 시간을 함께 기록합니다. 커프 크기가 팔에 맞는지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워치가 평소보다 높은 값을 보여 걱정된다면, 먼저 편안히 앉아 상완 혈압계로 다시 측정하고 그 기록을 진료 때 보여주는 흐름이 현실적입니다. 두 기기의 숫자가 다를 때는 측정 시각과 자세도 함께 적어 두면 도움이 됩니다. 혈압약의 용량을 바꾸거나 복용을 중단하는 판단은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높거나 낮은 수치보다 먼저 봐야 할 상황
상완 혈압계에서 수축기 혈압이 180mmHg를 넘거나 이완기 혈압이 120mmHg를 넘으면 잠시 안정을 취한 뒤 다시 측정하고, 계속 높다면 신속히 의료진에게 연락해야 합니다. 가슴 통증, 호흡곤란, 시야 변화, 한쪽 팔다리의 힘 빠짐,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함께 있다면 워치 수치를 확인하느라 기다리지 말고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수치가 그보다 낮더라도 심한 증상이 있으면 대면 진료가 우선입니다.
건강 앱에 혈압 기록을 연동한다면 어떤 앱과 기기에 데이터가 공유되는지도 확인해 두는 게 좋습니다. 진료에 보여줄 기록은 측정 기기와 시각을 구분해 남기고, 화면 캡처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는 이름이나 생년월일 같은 정보가 함께 담기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스마트워치의 장점은 손목에서 변화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 신호가 걱정스러울 때 상완 혈압계로 확인하고 필요한 진료로 이어지게 쓰는 편이, 작은 화면의 숫자 하나에 건강 판단을 맡기는 것보다 믿을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