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짓으로 마음을 잇는 축제
말 한마디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제18회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이 대전 옛 충남도청사 본관에서 열렸다. 2009년 ‘지역문화예술운동확산’을 내걸고 출발한 이 축제는 민간 예술단체가 주도해 온 독립 예술 행사다.
2026년 축제의 주제는 ‘다시 몸’이었다. 무대는 화려한 말이나 복잡한 설명보다 인간의 몸이 지닌 표현력에 집중했다. 배우가 내딛는 한 걸음과 손끝의 움직임, 얼굴에 번지는 표정이 하나의 언어가 됐다. 관객들은 대사가 없는 장면을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상상으로 작품의 빈자리를 채웠다.
마임은 어떤 예술인가
마임은 ‘모방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말 대신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하며, 작품에 따라 여러 오브제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마임의 핵심은 언어가 달라도 몸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데 있다. 배우의 움직임은 장면의 상황과 감정, 인물의 선택을 보여준다. 관객은 몸짓의 속도와 방향, 멈춤과 반복을 따라가며 말로 설명되지 않은 이야기를 읽는다.
대전역에서 시작된 특별 공연
2026년 16일 오후 3시에는 코레일과 함께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대전역에서 진행됐다. ‘뻔뻔한 삐에로쇼’와 ‘초보 목수와 목각인형’ 등이 무대에 올라 철도 이용객에게 이동 중 문화공연을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
역을 오가던 이용객들이 마임을 접한 뒤 오후 페스티벌로 이어지는 구성은 일상적인 이동 공간과 예술 무대를 연결했다. 대전역에서 펼쳐진 프로그램은 마임을 처음 접하는 시민도 몸짓의 재미를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붓의 움직임으로 연 축제
옛 충남도청사 본관에서 열린 공연은 세종붓글씨연구회의 붓 퍼포먼스로 막을 올렸다. 마임 축제를 축하하는 붓의 움직임이 무대의 시작을 알렸고, 이후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세 편의 본 공연이 이어졌다.
세 작품은 종이와 문, 목수의 형상, 나무의 이야기를 각각 몸의 언어로 풀어냈다. 같은 마임 장르 안에서도 움직임을 구성하는 방식과 음악, 오브제의 활용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는 뚜렷하게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제목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의 ‘보이지 않는 제목’은 날아오는 흰 종이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인물을 그렸다. 인물은 마침내 문을 열고 자신만의 길을 향해 걸어 나간다.
작품의 흐름을 이끈 것은 섬세하게 조절된 발걸음과 몸짓이었다. 흰 종이와 문은 배우의 움직임과 맞물렸고, 관객은 인물이 얼굴을 찾고 길을 선택하는 과정을 말 없는 장면으로 따라갔다. 배우가 몸의 방향과 속도를 바꿀 때마다 무대에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몸으로 빚어낸 목수의 형상
호모르댄스컴퍼니의 ‘목수’는 1937년에 만들어진 마임의 고전 작품이다. 뚜렷한 갈등이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목수라는 형상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다.
배우는 얼굴을 가린 채 온몸으로 목수를 표현했다. 과장된 표정에 기대지 않고 자세와 움직임으로 형상을 드러내면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배우의 몸에 머물렀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동작과 음악이 맞물리며 작품의 리듬을 완성했다.
얼굴을 가린 무대는 몸 자체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관객들은 움직임이 쌓일수록 구체화되는 목수의 모습을 차분히 지켜봤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달란트마을은 잘 알려진 원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선보였다. 작품은 한 사람의 삶이 흘러가는 과정을 마임의 언어로 표현했다.
배우의 동작은 나무와 인간이 맺는 관계,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무대 위에 펼쳐 놓았다. 관객은 익숙한 이야기를 대사가 아닌 몸짓으로 다시 마주했다. 주고받는 관계와 삶의 과정이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객석은 작품의 흐름에 집중했다.
관객도 몸으로 참여한 시간
축제 진행은 최희 예술감독이 맡았다. 휴식 시간에는 관객이 직접 마임 연기에 도전하는 참여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무대를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고 몸을 움직여 표현해 보는 시간이었다.
최희 예술감독은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고의 열정으로 축제를 이끌어 왔다고 밝혔다. 젊은 관객층의 참여를 보며 마임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뜻도 전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출연자와 관객이 함께 마임 체조를 했다. 공연에 집중하며 긴장했던 몸을 움직이고 이완하는 과정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한층 가까워졌다. 객석 곳곳에서 출연자의 동작을 따라 하는 모습이 이어졌고, 축제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움직임으로 마무리됐다.
다시 발견한 몸의 가치
‘다시 몸’이라는 주제 아래 열린 이번 축제는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면서도 그 가치를 지나치기 쉬운 몸을 무대의 중심에 세웠다. 배우들은 표정과 걸음, 손짓과 자세를 통해 말 없이도 감정과 상황을 전달했다.
언어 이전부터 이어져 온 몸의 소통 방식은 마임 무대에서 하나의 예술 언어로 되살아났다.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은 대전의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순수예술 축제로서 다양한 마임 작품과 시민 참여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 장소
| 장소 |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옛 충남도청사 본관 |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85 |
| 주요 내용 | 붓 퍼포먼스와 세 편의 마임 본 공연, 관객 참여 프로그램, 마임 체조 |
역사적 공간인 옛 충남도청사 본관에는 배우의 절제된 움직임과 음악, 관객의 시선이 함께 머물렀다. 축제 현장은 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 수단이 세대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마음을 잇는 과정을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