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에서 ‘먹었다’를 나눠 보자고 하면 학생들은 대개 ‘먹’까지는 금방 찾습니다. 그런데 그 ‘먹’이 어간인지 어근인지 묻는 순간 손이 멈춥니다. 둘 다 말의 중심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네 용어를 한 줄에 세워 외우면 더 헷갈립니다. 무엇을 보려고 단어를 나누는지부터 생각하면 자리가 보입니다.
말의 모양이 바뀔 때는 어간과 어미를 봅니다
‘먹다, 먹고, 먹으면, 먹었다’를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문장에 맞춰 끝부분이 달라져도 ‘먹-’을 중심으로 같은 동사의 여러 모습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동사나 형용사가 문장 속에서 모습을 바꾸는 일을 활용이라고 합니다. 활용할 때 중심이 되는 부분이 어간이고, 그 뒤에 붙어 문장의 뜻과 쓰임을 바꾸는 부분이 어미입니다.
‘먹다’에서는 ‘먹-’이 어간, ‘-다’가 어미입니다. ‘먹고’는 ‘먹-’과 ‘-고’, ‘먹으면’은 ‘먹-’과 ‘-으면’으로 나뉩니다. ‘먹었다’에는 과거를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 ‘-었-’과 문장을 끝맺는 어미 ‘-다’가 차례로 붙습니다. 같은 ‘먹-’에 어떤 어미가 붙느냐에 따라 말을 잇기도 하고, 조건을 나타내기도 하고, 지난 일을 말하기도 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어간은 언제나 글자 모양이 똑같다’고 외우면 곤란합니다. ‘듣다’의 어간은 ‘듣-’이지만 ‘들어’에서는 ‘ㄷ’이 ‘ㄹ’로 바뀝니다. 불규칙 활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간은 글자를 기계적으로 잘라 찾는 자리가 아니라, 그 용언이 활용할 때 기준이 되는 줄기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새 단어가 만들어질 때는 어근과 접사를 봅니다
이번에는 ‘풋사과’를 보지요. ‘사과’가 말의 중심 뜻을 맡고, 앞의 ‘풋-’이 아직 덜 익었다는 뜻을 더합니다. 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이 어근, 거기에 붙어 새 단어를 만드는 부분이 접사입니다. ‘풋-’처럼 앞에 붙으면 접두사, ‘선생님’의 ‘-님’처럼 뒤에 붙으면 접미사라고 부릅니다.
‘사과’에 ‘풋-’이 붙으면 익은 사과와 구별되는 ‘풋사과’라는 단어가 됩니다. ‘선생’에 ‘-님’이 붙으면 높임의 뜻을 지닌 ‘선생님’이 되고요. 접사는 혼자 쓰이지 않지만, 붙는 자리에서 뜻을 보태거나 단어의 쓰임을 바꿉니다. 국립국어원도 어근과 접사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때, 어간과 어미는 용언이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볼 때 쓰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과가’의 ‘가’를 접사라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가’는 명사 뒤에 붙어 문장 안에서 그 말의 역할을 나타내는 조사입니다. 접사는 새 단어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조사는 이미 있는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드러냅니다. 붙여 쓴다는 공통점만으로 같은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같은 ‘먹-’에 이름이 두 개 붙는 이유
처음 학생들이 멈췄던 자리로 돌아가 볼까요. ‘먹다’가 ‘먹고, 먹으면’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때 ‘먹-’은 어간입니다. 반면 ‘먹다’에 사동 접미사 ‘-이-’가 붙어 ‘먹이다’라는 새 동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때 ‘먹-’은 어근입니다. 같은 부분을 두고도 살펴보는 일이 달라 이름이 달라지는 겁니다.
‘먹이다’를 한 번 더 나누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단어를 만드는 관점에서는 어근 ‘먹-’에 접미사 ‘-이-’가 붙었습니다. 완성된 동사 ‘먹이다’를 활용하는 관점에서는 ‘먹이-’가 어간이고, 사전에 실린 기본형의 끝 ‘-다’가 어미입니다. ‘먹이-’ 안에 이미 접미사 ‘-이-’가 들어 있으니 어간과 어근의 길이도 달라집니다. 어미는 그 어간 뒤에 붙어 ‘먹이고, 먹이면’처럼 활용형을 만듭니다.
이 예를 보면 ‘뒤에 붙는 것은 모두 어미’라는 생각도 풀립니다. ‘-이-’는 새로운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이고, ‘-고’와 ‘-면’은 그 동사를 문장에서 쓰게 하는 어미입니다. 둘 다 뒤에 붙지만 맡은 일이 다릅니다.
헷갈릴 때는 먼저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습니다
칠판에 네 용어를 적을 때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함께 씁니다. ‘같은 동사가 문장에 맞춰 모양을 바꾼 것인가?’ 그렇다면 어간과 어미를 찾습니다. ‘뜻을 보태어 새 단어가 생긴 것인가?’ 그렇다면 어근과 접사를 찾습니다. ‘먹다→먹고’는 앞의 경우이고, ‘먹다→먹이다’는 뒤의 경우입니다.
구별을 연습할 때는 ‘먹다, 먹고, 먹이다, 먹이고’를 이어 놓으면 좋습니다. ‘먹다’에서 ‘먹고’로 가는 길에는 어미가 바뀝니다. ‘먹다’에서 ‘먹이다’로 가는 길에는 접미사가 붙어 새 동사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새 동사도 ‘먹이고’처럼 활용합니다. 단어가 만들어지는 일과 만들어진 단어가 문장에서 쓰이는 일이 한 줄에 드러납니다.
이름 네 개를 각각 암기하는 학생보다 ‘지금 새 단어를 만들고 있나, 같은 단어를 문장에 맞춰 쓰고 있나’를 먼저 묻는 학생이 오래 기억하더군요. 말의 조각은 같아도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게 어간·어미·어근·접사를 가르는 출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