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가 넷플릭스를 켜 놓고 한참을 넘기다가 물었다. “액션 애니 하나만 골라줘.” 어려운 부탁이었다. 빠른 전투를 보고 싶은 날과, 싸움이 끝난 뒤에도 인물이 마음에 남는 날은 다르니까. 넷플릭스 애니 추천 액션 목록에서 제가 먼저 묻는 것도 그날 원하는 기분이다. 아래 네 편은 모두 액션이 좋지만, 보고 난 뒤의 온도는 꽤 다르다. 줄거리의 중요한 전개는 밝히지 않았다.
짧고 세게 달리고 싶다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도시가 사람을 어떻게 소모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나이트 시티에서 살아남으려다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인다. 몸을 강화할수록 싸움은 화려해지는데, 그 선택이 정말 그를 자유롭게 하는지는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전투의 속도와 음악이 맞물리는 순간에는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시즌 1개, 10화라 긴 작품을 시작할 여력이 없을 때 좋다. 게임을 몰라도 데이비드의 처지는 따라갈 수 있다. 다만 화면의 자극이 강하고 폭력 묘사도 거칠다. 가볍게 이기는 주인공을 보며 기분을 풀고 싶다면 이 작품은 무거울 수 있다. 저는 빠른 액션을 찾다가 예상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만나고 싶을 때 이쪽을 고른다.
싸움의 이유까지 따라가고 싶다면 아케인
‘아케인’은 필트오버와 자운이라는 두 도시, 그리고 서로 다른 길로 밀려나는 자매를 중심에 둔다. 처음에는 세계관의 이름이 낯설 수 있다. 그래도 인물들이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만 붙잡으면 이야기가 열린다. 전투 장면은 단순히 힘을 겨루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충돌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아프게 느껴진다.
이 작품의 액션은 색과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크다. 하지만 다음 싸움을 기다리는 동안 인물들의 관계와 선택에도 시간을 써야 한다. 대결이 연달아 이어지는 작품을 기대하면 초반에는 속도가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캐릭터에 마음이 붙으면 전투 한 장면의 무게가 달라진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해본 적이 없어도 괜찮다. 게임 지식보다 가족과 계급 사이에서 갈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 와 닿는다.
칼끝의 긴장을 원한다면 푸른 눈의 사무라이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에도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복수를 향해 걷는 무사 미즈를 따라간다. 칼을 뽑기 전의 정적이 길고, 일단 움직이면 타격이 묵직하다. 몸이 어디에 있고 다음 일격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많아서, 화려한 효과보다 검술의 동선을 보는 사람에게 특히 맞는다.
미즈의 여정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깊이 얽혀 있다. 그래서 한 차례의 승리만 보고 시원해지는 복수극을 기대했다면 의외로 씁쓸할 수 있다. 피가 많이 나오고 성인 대상 장면도 있으니 함께 볼 사람의 취향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저는 이 작품의 싸움에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보다, 미즈가 다음 걸음을 내딛기까지의 망설임을 더 오래 기억한다.
웃으면서 볼 액션이라면 사카모토 데이즈
앞의 세 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사카모토 데이즈’가 있다. 한때 최강의 킬러였던 사카모토가 은퇴 후 가족과 일상을 지키려 싸우는 이야기다. 평범한 공간과 물건이 전투에 끼어드는 발상이 즐겁고, 주인공의 진지한 표정과 엉뚱한 상황이 붙을 때 웃음이 난다. 살벌한 설정에 비해 보는 기분은 한결 경쾌하다.
물론 킬러들이 등장하는 만큼 폭력 표현이 없지는 않다. 또 복잡한 심리극보다 다음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덤벼올지에 재미를 두는 편이 잘 맞는다. 피곤한 저녁에 무거운 세계관을 외우고 싶지 않다면 좋은 선택이다. 화면을 잠깐 놓쳤다가 돌아와도 인물의 목표가 분명해서 흐름을 다시 잡기 쉽다.
오늘 밤의 기분으로 고르는 한 편
두세 시간 안에 강한 여운을 원하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인물과 세계에 오래 머물고 싶으면 ‘아케인’이 먼저 떠오른다. 칼싸움의 긴장과 성인 복수극을 찾는다면 ‘푸른 눈의 사무라이’, 웃음 섞인 추격전을 보고 싶다면 ‘사카모토 데이즈’다. 모두 넷플릭스 한국 작품 페이지에서 확인되는 작품이지만, 제공 상태와 관람 등급은 시청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좋다.
액션 애니를 고를 때 저는 전투의 크기보다 그 장면이 끝난 뒤 어떤 기분으로 앉아 있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같은 주먹질과 칼싸움도 어떤 날에는 통쾌하고, 어떤 날에는 조금 아프다. 오늘의 취향에 맞는 한 편은 그 차이에서 골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