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이름난 사원이 아니라 강 건너 동네 골목이었다. 아침에는 가게 앞에 빗자루 소리가 났고, 낮에는 오토바이를 피해 담장 쪽으로 한 걸음 비켜 걸었다. 유명한 장면을 놓친 하루였는데도 이상하게 그날이 가장 선명하다.
11월 치앙마이 여행을 떠올리면 등불 축제부터 생각나기 쉽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걷기 좋은 계절을 만났을 때는 큰 행사를 하루 채우는 것보다 동네의 평범한 시간을 따라가는 편이 좋았다. 태국 관광청도 11월을 선선한 계절의 시작으로 소개한다. 다만 낮볕은 여전히 강하고, 그늘과 햇빛 아래의 느낌이 꽤 다르다.
와로롯 시장에서 강 건너로 걸어갔다
첫날 아침에는 올드시티 동쪽의 와로롯 시장에서 출발했다. 시장 안쪽은 한적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장을 보는 사람과 짐을 옮기는 손수레가 뒤섞여 있다. 그래도 관광객을 위해 꾸며 놓은 공간과는 리듬이 달랐다. 과일 가게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길을 비켜 주고, 북부식 소시지인 사이우아 냄새를 따라 몇 걸음 더 가는 식이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삥강 쪽으로 빠졌다. 강을 건너 왓껫 동네로 들어서니 차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왓껫은 예전에 강을 오가는 배가 닿던 자리였다고 태국 관광청이 소개하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과 작은 가게가 한 길에 붙어 있지만, 모든 골목이 엽서처럼 예쁜 건 아니다. 닫힌 셔터도 있고 차가 가까이 지나는 구간도 있다. 그래서 더 생활하는 동네처럼 느껴졌다.
이 길은 지도를 따라 명소를 찍기보다 시장에서 강을 건너 동네 안쪽으로 한두 블록 들어가는 정도가 적당했다. 골목에는 보도가 끊기는 곳이 있어 걷는 동안 주변을 자주 살펴야 했다. 낮에는 그늘이 적은 구간도 있으니 물 한 병을 챙기면 마음이 편하다.
왓껫에서는 걸음을 늦출 이유가 생겼다
왓껫에서 좋았던 건 볼거리가 끊임없이 나타나서가 아니었다. 낮은 건물 앞에 화분이 놓여 있고, 누군가는 가게 문을 열고, 또 누군가는 점심거리를 들고 지나갔다. 작은 사원 주변도 조용히 둘러보기 좋았다. 사진 한 장을 건지려고 골목을 서두르지 않으니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나 그늘의 온도 같은 것이 뒤늦게 느껴졌다.
다만 이곳도 주민이 사는 동네다. 집 앞이나 영업 준비 중인 가게 안을 카메라로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 사원에서는 복장과 현장 안내를 먼저 살폈다. 여행자에게 조용한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늘 걷는 출근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조금 느려진다.
점심 무렵에는 큰길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강변 쪽으로 나왔다. 와로롯 시장과 왓껫을 잇는 길은 하루를 꽉 채울 만큼 길지 않다. 오히려 오전 한나절만 쓰고 숙소에서 쉬었다가 저녁에 다시 나가는 편이 좋았다. 11월이라고 해도 한낮을 계속 걸으면 금세 지친다.
산티탐에서는 목적 없이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에는 올드시티 북서쪽 산티탐으로 갔다. 숙소가 어디냐에 따라 이동 시간이 달라지니 거리 숫자를 믿기보다 지도를 보고 차량을 부르는 편이 낫다. 산티탐에는 작은 식당과 세탁소, 카페가 이어진다. 특별한 전망을 기대하고 가면 심심할 수 있지만,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 걷기에는 그 심심함이 좋았다.
나는 메뉴 사진이 크게 붙은 집보다 사람들이 천천히 드나드는 식당 앞에서 더 오래 망설였다. 낯선 음식 이름을 완벽히 알고 주문할 필요는 없었다. 손짓으로 메뉴를 짚고 한 그릇 먹은 뒤, 밝은 큰길을 따라 숙소 쪽으로 돌아왔다. 골목 안은 구간마다 조명과 보행 환경이 달라서 밤늦게까지 무작정 걷는 코스로 잡지는 않았다.
산티탐이 언제나 조용한 것은 아니다. 퇴근 시간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많고 인기 있는 가게에는 줄도 선다. 그래도 올드시티 중심부의 관광 동선에서 조금 벗어나 저녁 한 끼를 보내기에는 괜찮았다. ‘현지인만 아는 곳’이라는 기대를 내려놓으니 오히려 동네가 편안하게 보였다.
11월의 축제 일정은 따로 생각했다
11월 치앙마이 여행에서 한적함을 가장 크게 바꾸는 변수는 이펭과 러이끄라통이다. 등불과 강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는 중심부와 강가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라진다. 축제를 보고 싶다면 그날의 북적임까지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조용한 골목 산책이 우선이라면 행사일 전후의 일정과 숙소 위치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다. 해마다 행사 날짜와 운영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니 출발 전 태국 관광청과 현지 공지를 다시 보는 게 안전하다.
날씨도 ‘11월이면 비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기가 물러가는 때라 아침저녁은 한결 걷기 좋지만, 갑자기 비가 오거나 낮에 덥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얇은 겉옷 하나와 접을 수 있는 우산을 가방에 넣고, 바깥 일정은 오전과 해 질 무렵에 나눴다. 하루에 동네 두 곳이면 충분했다.
치앙마이의 기억에는 화려한 등불도 있지만, 와로롯 시장에서 강을 건너던 아침과 산티탐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길이 더 오래 남았다. 11월의 선선한 시간은 멀리 가는 데만 쓰기 아깝다. 한 동네를 천천히 걷고 나서야 그 도시의 평범한 표정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