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의 도시 울산이 품어온 노동의 소리와 제철문화가 한자리에서 되살아났다. 2026년 10월 25일 오후 1시 30분 울산광역시 북구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에서 ‘울산쇠부리소리 2026 공개발표회’와 ‘쇠부리소리 Whoever페스티벌’이 열렸다. 행사는 울산쇠부리소리의 국가무형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무대와 시민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울산은 오늘날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알려졌지만, 철 생산과 제련의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천광산의 철광석과 숯을 활용한 제철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뜨거운 불과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은 함께 소리를 부르며 호흡을 맞췄다. 그 삶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유산이 바로 울산쇠부리소리다.
울산의 철 문화를 품은 노동요
울산쇠부리소리는 철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박자를 맞추고 풍요로운 철 생산을 기원하며 불렀던 노동요다.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풍년과 다산을 기원한 다른 전통 노동요와 달리, 철문화를 토대로 형성된 풍철요라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지닌다.
2019년 무렵 울산광역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뒤 전승되고 있으며, 산업도시 울산의 역사적 뿌리와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료를 나르고 쇳물을 얻는 제련 과정부터 대장간의 단조 작업과 마을의 일상까지 철을 둘러싼 공동체의 삶이 소리 안에 이어진다.
현재 전해지는 울산쇠부리소리는 마지막 불매꾼으로 알려진 고 최재만 옹의 소리와 쇠부리 후손인 고 김달오 옹이 구연한 도덕굴 쇠부리소리를 근간으로 한다. 1982년부터 놀이의 일부로 연행된 쇠부리불매소리와 쇠부리금줄소리에 병영지역에서 채록된 성냥간불매소리, 애기어루는불매소리가 더해져 오늘의 전승 형태를 갖췄다.
울산쇠부리소리는 한 곡의 노래가 아니라 채굴과 제련, 기원 의식, 쇠의 가공, 가정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제철문화의 서사다. 특히 쇠부리불매소리는 각 작업 공정을 노래로 담아 우리나라 철기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가치를 지닌다.
비 속에서 이어진 공개발표회
행사 당일에는 비가 내려 공개발표회가 당초 계획보다 축소된 규모로 진행됐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쇠부리불매소리와 쇠부리금줄소리, 성냥간불매소리, 애기어루는불매소리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야외공연장에는 풀무질의 박자를 닮은 힘찬 소리와 의식의 간절함, 대장간의 망치질을 연상시키는 짧은 구호, 아이를 달래는 부드러운 가락이 번갈아 울렸다. 서로 다른 성격의 네 소리는 철 생산 현장과 그 주변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풀무질의 박자를 맞춘 불매소리
먼저 선보인 쇠부리불매소리는 불편수가 용광로에 불을 지피면 숯쟁이와 쇠쟁이가 숯과 토철을 운반하고, 불매꾼들이 풀무를 밟는 속도에 맞춰 불매대장이 이끌어 부르던 소리다.
‘불매’는 용광로에 바람을 불어 넣는 풀무를 가리키는 방언이다. 용광로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발풀무를 밟거나 손으로 풀무를 젓는 작업은 여러 사람이 쉬지 않고 호흡을 맞춰야 했다. 이때 노동의 속도와 리듬을 하나로 모아준 것이 쇠부리불매소리였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반복되는 가락은 고된 작업의 피로를 덜고 일의 흐름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쇳물난다 불매야”, “디뎌봐라 불매야”, “저쪽구비 불매야”, “어절시구 불매야”와 같은 구절에는 불매꾼들의 집단적인 호흡이 담겼다.
쇠부리불매소리는 뜨거운 제철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움직임을 하나로 묶었던 핵심 노동요다. 이날 무대에서도 반복되는 후렴과 힘 있는 동작이 어우러지며 과거 작업장의 긴장과 활기를 전했다.
풍철을 기원한 금줄소리
쇠부리금줄소리는 쇠부리 작업을 시작할 때 외부인의 출입과 부정을 막기 위해 작업장 주변에 금줄을 치고, 작업이 끝난 뒤 이를 걷어 태우면서 불렀던 소리다.
제철장의 액운을 막고 좋은 쇠가 무사히 생산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요의 성격을 지닌다. 작업장 입구의 금줄을 거두어 불에 태우고 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소리를 얹었으며, 그 중심에는 풍요로운 철 생산을 뜻하는 ‘풍철’을 이루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자리했다.
쇠부리금줄소리는 제철이 단순한 생산 활동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불과 쇠를 다루는 위험한 작업을 앞둔 사람들이 공동체의 안녕과 작업의 성공을 함께 기원했던 의식이 노동요 안에 남아 있다.
대장간의 호흡을 담은 성냥간소리
성냥간불매소리는 생산된 판장쇠를 대장간에서 두드려 농기구와 생활도구로 만들 때 대장장이들이 부른 소리다. ‘성냥간’은 대장간을 뜻하는 방언으로, 쇠부리터에서 가져온 쇳덩이를 정제하고 필요한 형태로 단조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대장장이와 매꾼들은 커다란 쇠망치를 번갈아 내리치며 달궈진 쇠의 모양을 잡았다. 쇠가 식기 전에 정교하게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구성원 사이의 일체감과 순발력이 중요했다. 성냥간불매소리는 망치질의 강약과 박자를 맞추는 짧고 리드미컬한 노동 구호로 기능했다.
공개발표회에서는 빠르고 분명한 소리의 흐름을 통해 대장간 작업의 속도감이 표현됐다. 불매소리가 용광로의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면, 성냥간불매소리는 달궈진 쇠가 생활도구로 완성되는 가공 과정의 긴박함을 드러냈다.
마을로 이어진 애기어루는소리
애기어루는불매소리는 쇠부리 작업장 인근 마을에서 아이가 울거나 보챌 때 어머니들이 부른 육아요이자 생활요다. 일터로 나간 남편과 가족을 기다리며 아이를 달래는 과정에서 불렸고, 제철 현장의 불매소리가 가정의 일상으로 이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거칠고 힘찬 불매소리의 리듬은 가정 안에서 아이를 어르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가락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작업장의 노동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연결돼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철 현장의 박자가 아이를 달래는 노래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쇠부리문화가 울산 공동체의 삶 전반에 스며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대에서는 앞서 펼쳐진 힘찬 노동요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정서가 더해지며 쇠부리소리의 폭넓은 구성을 드러냈다.
보고 듣고 체험한 쇠부리문화
공개발표회가 끝난 뒤 야외공연장 한편에서는 쇠부리소리 Whoever페스티벌이 이어졌다. 울산북구문화원이 주최·주관한 이번 행사는 ‘2026년 문화도시 울산조성 북구 로컬헤리티지 실용예술 창작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련됐다.
행사장에서는 쇠부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꾼의 진행을 즐기는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대장간에서 작은 호미를 만들어 꽃을 심는 체험을 비롯해 쇠부리소리를 익히는 소리배움터와 의상 체험 부스도 마련됐다.
손불매 풍선아트와 쇠부리 추억인화소, 불매 놀이터도 운영됐다. 각 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은 받은 도장 수에 따라 쇠부리 주전부리 부스에서 ‘쇠부리주전부리 한 상’을 접할 수 있었다. 공연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쇠부리문화의 도구와 소리, 놀이를 직접 경험하도록 구성된 행사였다.
비로 인해 공개발표회 규모는 줄었지만, 공연과 체험을 연결한 프로그램은 울산의 철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했다. 아이부터 성인까지 제철문화의 개념을 소리와 동작, 만들기와 놀이를 통해 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었다.
산업도시의 뿌리를 잇는 무대
울산쇠부리소리에는 거친 풀무질의 박자와 풍철을 향한 염원, 대장간의 활기, 가족을 기다리며 아이를 달래던 생활의 정서가 함께 담겨 있다. 각각의 소리는 독립된 노래이면서도 철광석이 쇳물이 되고 생활도구로 완성되는 과정, 그 주변에서 이어진 사람들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이번 공개발표회는 현대 산업도시 울산의 기반에 오랜 철 생산의 역사와 제철 공동체의 문화가 놓여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쇠부리소리의 전승은 과거의 노동 방식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울산의 역사적 정체성을 오늘의 시민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울산쇠부리소리의 국가무형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목소리도 이번 행사의 중심에 놓였다. 지역 무형유산을 공연과 교육, 시민 체험으로 연결한 문화도시 사업은 울산 북구의 고유한 철 문화가 일상에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넓혔다.
행사 장소
| 행사명 | 울산쇠부리소리 2026 공개발표회 및 쇠부리소리 Whoever페스티벌 |
|---|---|
| 일시 | 2026년 10월 25일 일요일 오후 1시 30분 |
| 장소 | 울산북구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산업로 1000 |
| 페스티벌 주최·주관 | 울산북구문화원 |
이번 행사는 철의 생산지로 이어져 온 울산의 역사와 노동의 소리를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 쇠부리소리는 뜨거운 불 앞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호흡과 풍요를 바란 마음, 가족의 일상까지 품으며 산업도시 울산의 뿌리를 생생하게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