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1월 하노이를 걸을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유명한 풍경보다 작은 골목의 아침이었다. 가게 앞에서 채소를 다듬는 사람, 낮은 의자에 앉아 국수를 먹는 사람, 천천히 문을 여는 카페가 있었다. 오토바이 소리는 여전했지만, 큰길에서 한두 번만 방향을 틀면 여행지보다 동네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아주 없는 곳을 기대한다면 하노이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어느 길을 언제 걷느냐에 따라 붐비는 도시 안에서도 잠시 숨을 고를 자리는 찾을 수 있었다. 내게는 쭉박 호수 주변과 티엔꽝 호수 쪽 길이 그랬다.
생각보다 서늘했던 1월의 아침
하노이에 가기 전에는 베트남이라는 말만 듣고 얇은 옷을 먼저 챙겼다. 그런데 아침에 숙소 밖으로 나오니 손을 주머니에 넣게 됐다. 기상청의 하노이 월별 기후자료를 보면 1월 평균 최저기온은 14.6도, 최고기온은 20도다. 숫자만 보면 걷기 좋은 날씨 같지만 흐린 날이나 호숫가에서는 체감이 조금 다르다.
두꺼운 겨울 외투 한 벌보다 얇은 옷을 겹쳐 입는 편이 편했다. 낮에는 걷다 보면 더워지고, 해가 기운 뒤에는 다시 서늘해졌다. 작은 우산도 가방에 넣었다. 겨울 하노이는 맑고 쨍한 하늘만 이어지는 계절이 아니어서, 회색빛 거리까지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다.
쭉박 호수에서는 큰길보다 안쪽 골목이 좋았다
호안끼엠 주변의 북적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쭉박 호수로 향했다. 길을 찾을 때는 판딘풍 거리를 지나 호수 쪽으로 걸으면 흐름이 자연스럽다. 가로수가 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물이 보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바로 옆의 타인니엔 거리는 호수 전망을 보러 온 사람도 있어 한적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오래 머문 곳은 호수에서 응우사 거리 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이었다. 식당 앞에서 점심 준비를 하는 모습과 집 앞에 세워 둔 오토바이가 이어졌다. 관광지를 찾는 마음으로 걸으면 금세 지나칠 장면들이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한 블록씩 걸으니,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잠깐 빌려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응우사는 포꾸온을 먹으러 들르기에도 좋다. 얇은 쌀국수 면을 채소와 고기와 함께 말아 먹는 음식이라 뜨거운 국물 쌀국수와는 느낌이 다르다. 추운 날에는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지만, 많이 걸은 뒤 가볍게 점심을 먹고 다시 호수 쪽으로 나오는 코스도 괜찮았다. 인기 있는 식당 앞은 붐빌 수 있으니, 조용히 앉고 싶다면 식사 시간을 조금 비켜 가는 편이 낫다.
티엔꽝 호수 근처에서는 걸음을 더 늦췄다
다른 날에는 호안끼엠 남쪽에서 바찌에우 거리를 지나 티엔꽝 호수 쪽으로 걸었다. 구시가지의 좁고 빠른 길과 달리 이쪽에는 보도와 나무가 있는 구간이 이어진다. 카페와 식당도 있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하는 분위기는 덜했다.
호수에 도착해서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물가를 조금 걷고 벤치가 보이면 앉았다. 운동하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여행 중에는 장소를 하나 더 보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쉬는 시간도 일정의 일부가 됐다.
티엔꽝 호수 옆의 통녓 공원까지 이어 걸을 수도 있다. 다만 한적함은 시간대에 따라 달랐다. 아침과 늦은 오후에는 산책하거나 운동하러 나온 주민이 있다. 사람 없는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라기보다, 현지의 일상과 나란히 걷기 좋은 장소에 가깝다.
골목 여행은 하루에 두 동네면 충분했다
처음에는 쭉박과 티엔꽝을 하루에 모두 넣으려 했다. 막상 걸어 보니 길을 건너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마음에 드는 가게 앞에서는 자꾸 멈추게 됐다. 그래서 오전에는 한 동네, 오후에는 가까운 곳 하나만 더 보는 식이 편했다. 하노이에서는 지도에 표시된 거리보다 실제로 걷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골목에서는 보도가 끊기거나 오토바이가 가까이 지나가는 구간도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길 한가운데 오래 서 있지 않고, 주민의 집 안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으려 했다. 조용한 동네를 찾아왔다는 이유로 그 동네의 평소 리듬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1월 하노이 여행을 다시 간다면 유명한 장소를 몇 곳 더 넣기보다 같은 골목을 아침과 오후에 한 번씩 걸어 보고 싶다. 날씨와 사람의 움직임이 바뀌면 익숙해진 길도 달라 보일 테니까. 내게 하노이는 오래 걷다가 따뜻한 한 끼를 먹고, 다시 천천히 걸을 때 가까워지는 도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