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주말 외식 장소를 고르다가 가족끼리 또 목소리가 커졌다. 누구는 가까운 곳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오랜만이니 멀리 가도 된다고 했다. 식당 하나 고르는 일인데 서로 말을 끊고 같은 주장만 반복했다. 끝나고 보니 토론을 한 게 아니라 각자 원하는 곳을 발표한 셈이었다.
다음번에는 방법을 조금 바꿔봤다. 거창한 규칙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15분 안에 끝내기로 하고, 모두가 한 번씩 말한 뒤에 의견을 주고받았다. 사소한 차이였는데 적어도 대화가 어디서 꼬이는지는 훨씬 잘 보였다.
말이 길어질 때는 주제가 너무 컸다
처음에는 ‘이번 주말에 뭐 할까’라고 물었다. 그러니 식당, 영화, 집안일, 이동 시간까지 한꺼번에 나왔다. 한 사람은 비용을 얘기하는데 다른 사람은 쉬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 서로 답이 엇갈렸다. 주제를 ‘토요일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로 좁히자 비교할 것이 줄었다.
그때부터 조건도 세 가지만 적었다. 1인당 식사비는 2만 원 안팎, 이동 시간은 편도 30분 이내, 예약이 어려우면 다른 곳을 고르기. 숫자가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가족에게 그날 부담이 되는 지점을 먼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맛있는 곳’이라는 말보다 ‘30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선택에 더 도움이 됐다.
의견이 갈릴 때마다 주제를 다시 읽는 것도 효과가 있었다. 식당 얘기 중에 예전 여행에서 서운했던 일까지 나오면 잠깐 멈췄다. 그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식당을 고르는 15분 안에는 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첫 순서에서는 반박을 잠깐 미뤘다
우리는 네 명이 각자 1분씩 원하는 선택과 이유를 말했다. 다른 사람은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궁금한 점만 메모했다. 타이머가 울리면 말하던 사람도 문장을 마쳤다. 처음엔 좀 어색했다. 그래도 평소 말수가 적은 가족의 의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 사람은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메뉴를 걱정했고, 다른 사람은 주차보다 대중교통이 편한 곳을 원했다. 이전 같으면 ‘그 식당 별로야’라는 한마디에 묻혔을 이유들이다. 반박을 잠깐 미루니 찬성과 반대의 숫자보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이 먼저 드러났다.
질문할 때도 ‘왜 거기가 좋아?’ 대신 ‘그곳을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메뉴야, 거리야?’처럼 물었다. 앞의 질문은 따지는 말로 들릴 수 있었고, 뒤의 질문은 비교할 기준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됐다. 말투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걸 그날 꽤 실감했다.
의견이 갈리면 선택지를 두 개만 남겼다
모두 말하고 나니 후보가 네 곳이었다. 여기서 바로 투표했더라면 두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곳이 떨어진 이유를 모른 채 따라왔을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앞서 적은 조건에 맞는지 확인했다. 한 곳은 이동 시간이 너무 길었고, 한 곳은 그 시간대에 예약이 어려웠다. 두 곳만 남기니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남은 선택지를 두고는 각자 ‘좋은 점 하나, 걸리는 점 하나’를 말했다. A 식당은 가까웠지만 대기 시간이 불확실했다. B 식당은 자리가 넉넉했지만 가격이 조금 높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 누군가의 취향을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를 고르든 감수할 점이 있다는 것도 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끝날 무렵에는 전원 동의를 목표로 붙잡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B 식당을 고르고, 다음 외식 때는 A 식당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선택을 미룬 게 아니라 아쉬운 의견을 다음 기회에 반영한 것이다. 15분을 조금 넘기긴 했지만, 평소처럼 식당을 고른 뒤에도 불평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해보니 규칙보다 중요한 건 듣는 시간이었다
물론 매번 타이머를 켜고 토론할 생각은 없다. 메뉴처럼 가벼운 일에는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같은 말이 세 번쯤 반복되거나, 한 사람만 계속 말하고 있다면 잠깐 멈춰볼 만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좁히고 각자 한 번씩 말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 방식이 누구에게나 잘 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 집에서도 피곤한 날에는 1분을 기다리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누가 이겼는지보다 왜 그 선택을 원하는지 알게 된 점은 남았다. 다음에 가족끼리 의견이 갈리면, 나는 일단 모두의 이유를 한 번씩 들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