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검진센터에서 일할 때 “혈압이 조금 높게 나왔는데, 저도 만성질환자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습니다. 반대로 이미 고혈압 약을 드시면서도 몸이 멀쩡하니 병이 다 나은 것 같다고 말씀하는 분도 있었고요. 만성질환자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 약을 먹는지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만성질환자란 오래 관리가 필요한 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입니다
만성질환은 대체로 오랜 기간 지속되고, 경과를 살피거나 치료를 이어가야 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고혈압, 당뇨병, 만성콩팥병,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이 익숙한 예입니다. 질환마다 진단 기준과 관리 방법은 다릅니다. ‘몇 달 아프면 모두 만성질환’처럼 하나의 기간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만성질환자란 단순히 몸이 오래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의사의 진단을 바탕으로 그 질환의 경과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약을 먹지 않고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중이어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기가 오래 낫지 않는다고 스스로 만성질환자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오래가는 증상에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진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병동에서 자주 본 모습은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고혈압은 초기부터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을 먹고 혈압이 안정됐다면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뜻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질환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처방약을 스스로 끊거나 양을 바꾸기 전에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검진 수치 한 번으로 만성질환자가 될까요?
검진 결과는 진단을 위한 단서입니다. 예를 들어 진료실 혈압이 수축기 140mmHg 이상 또는 이완기 90mmHg 이상이면 고혈압을 의심하고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검사 직전의 긴장, 활동, 측정 방법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도 진료실 수치만 보지 않고 가정혈압이나 활동혈압을 함께 살피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혈당도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공복혈당 100~125mg/dL이나 당화혈색소 5.7~6.4%는 당뇨병 전단계에 해당합니다. 위험을 낮추기 위한 관리와 추적 검사가 필요하지만, 이 수치만으로 당뇨병 환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공복혈당 126mg/dL 이상 또는 당화혈색소 6.5% 이상은 당뇨병 진단 기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 진단은 검사 조건과 증상, 재검 필요성을 의사가 함께 판단합니다.
만성콩팥병의 ‘만성’에는 기간도 중요합니다. 추정 사구체여과율이 60mL/min/1.73㎡ 미만인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진단 기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콩팥 기능 수치가 그보다 높아도 소변 검사에서 콩팥 손상의 근거가 지속되면 평가가 필요합니다. 검진에서 수치가 한 번 낮았다고 곧바로 병의 단계를 정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결과지에 ‘질환 의심’이 적혀 있다면 그 문구를 진단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후속 진료 일정을 잡는 것이 먼저입니다.
진단받았다면 무엇을 계속 살펴야 할까요?
같은 병을 앓아도 확인할 항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고혈압이라면 혈압 기록과 함께 심장·콩팥 상태를, 당뇨병이라면 혈당뿐 아니라 눈·콩팥·발의 변화를 살필 수 있습니다. 만성콩팥병이라면 혈액검사 수치에 더해 소변 단백이나 알부민 검사 결과를 함께 볼 수 있고요. 진료 때 ‘제 목표 수치가 얼마인지, 다음 검사는 언제인지’를 물어두면 결과지를 읽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집에서 잰 혈압은 날짜, 시간, 수치를 적어 가져가면 좋습니다. 검진 수치도 올해 결과만 보지 말고 이전 결과와 나란히 놓아보세요. 조금 높은 상태가 반복되는지, 치료 중인데 점차 달라지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숫자 하나만 보고 약을 늘리거나 줄이지는 마세요. 어지럼, 붓기, 숨참처럼 새로 생긴 증상과 현재 먹는 약까지 함께 알려야 의사가 상태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검진에서 혈압·혈당·콩팥 기능 이상이 처음 나왔다면 증상이 없어도 결과지를 들고 진료를 받으세요. 이미 진단받은 분은 처방대로 관리하는데도 수치가 평소보다 높게 반복되거나, 갈증과 소변량 증가, 다리 부종, 운동할 때의 숨참 같은 변화가 생기면 예정된 진료일까지 무작정 기다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적어두면 진료에 도움이 됩니다.
갑자기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 지속되는 가슴 통증이나 심한 호흡곤란은 수치와 관계없이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혈압이 수축기 180mmHg를 넘거나 이완기 120mmHg를 넘게 나왔다면 잠시 안정을 취한 뒤 다시 재고, 여전히 높으면 곧바로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이때 가슴 통증, 숨참, 시야 변화, 마비나 말하기 어려움이 함께 있다면 응급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성질환자라는 말은 앞으로도 상태를 살피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이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내 수치의 변화와 새 증상을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괜찮아 보이는 날에도 검진 결과가 달라졌다면 확인하고, 몸이 보내는 신호가 평소와 다르다면 진료를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