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영문 자기소개서에 쓴 이름을 보여 주며 물었습니다. “선생님, 여권에는 HONG GILDONG인데 자기소개서에도 전부 대문자로 써야 하나요?” 같은 사람의 이름인데 서류마다 모양이 다르니 헷갈릴 만합니다. 이름을 로마자로 옮기는 방법과 대문자를 쓰는 방법, 여권에 인쇄하는 방식이 한꺼번에 섞여 있기 때문이지요.
먼저 기억할 점은 우리가 흔히 ‘영문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수가 영어로 새로 지은 이름이 아니라, 한글 이름을 로마자로 옮긴 표기라는 사실입니다. 홍길동을 Gildong Hong이라고 적든 Hong Gildong이라고 적든, 출발점은 ‘홍길동’입니다. 이 차이를 알면 대문자를 어디에 쓰는지도 훨씬 선명해집니다.
일반 글에서는 성과 이름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씁니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는 고유 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사람 이름도 고유 명사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글에서 홍길동은 Hong Gildong, 김민수는 Kim Minsu처럼 성과 이름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면 됩니다. 이름을 붙여 쓴 Gildong 안의 ‘동’이 새 단어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므로 d를 다시 대문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교실에서 자주 보는 표기가 Hong GilDong입니다. 한글 두 음절을 눈에 띄게 나누려는 마음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름을 Gildong이라는 한 덩어리로 적었다면 중간의 D까지 올릴 이유는 없습니다. 두 음절의 경계를 드러내고 싶다면 Hong Gil-dong처럼 붙임표를 넣는 방식이 허용됩니다. 붙임표 뒤의 글자까지 반드시 대문자로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인명을 성과 이름 순서로 띄어 쓰고,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허용합니다. 따라서 Hong Gildong이 기본적인 예이고 Hong Gil-dong도 가능합니다. 성과 이름 사이의 빈칸은 중요합니다. HongGildong처럼 전부 붙이면 어디까지가 성인지 곧바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여권에는 왜 HONG GILDONG처럼 모두 대문자일까요?
여기서 학생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외교부 여권 안내에 실린 예시는 홍길동을 HONG GILDONG으로 보여 줍니다. 여권은 해외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문서이고, 그 안의 로마자 성명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있는 한글 성명을 로마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름을 보기 좋게 꾸미는 글과는 쓰임이 다릅니다.
그러니 여권의 HONG GILDONG과 일반 글의 Hong Gildong을 서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앞의 것은 여권에서 확인하는 표기 모양이고, 뒤의 것은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히는 모양입니다. 다만 여권이나 비자처럼 신원 확인에 쓰이는 서류를 작성할 때는 대문자 모양만 보고 임의로 철자나 띄어쓰기를 바꾸면 안 됩니다. HONG GILDONG을 보고 Hong Gil Dong으로 다시 나누어 쓰는 식의 변화가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여권의 로마자 성명은 처음 발급한 뒤 마음대로 고치기 어렵습니다. 외교부는 재발급 때도 기존 표기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안내합니다. 일상적인 글에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바꾸는 문제와 공적 신분 문서의 성명 자체를 바꾸는 문제를 구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름의 두 음절을 띄어 써도 될까요?
홍길동의 ‘길동’을 Gil Dong으로 적으면 한글의 두 음절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하지만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보통 글에서 새로 표기를 정한다면 Hong Gildong이나 Hong Gil-dong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권 실무에는 조금 다른 사정도 있습니다. 외교부 안내는 이름을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희망할 경우 음절을 띄어 쓰는 것도 허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여권에 GIL DONG으로 기재된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원칙만 떠올려 이를 마음대로 GILDONG으로 바꾸어 적어서는 곤란합니다. 실제 서류에서는 그 사람의 여권에 기재된 철자와 간격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이 대목에서 ‘허용’과 ‘원칙’을 같은 말로 읽으면 혼란이 생깁니다. 새로 표기를 배울 때는 원칙을 기준으로 삼고, 이미 사용 중인 공적 표기가 있다면 그 기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명함이나 소개문을 만들 때도 본인이 오래 사용해 온 표기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면 불필요한 수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Kim과 Gim 중 하나만 맞는 걸까요?
대문자만큼 자주 나오는 질문이 성의 철자입니다. ‘김’을 로마자 표기 원칙에 맞춰 옮기면 Gim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 이름에서는 Kim도 널리 쓰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성의 표기를 따로 정하도록 한 규정과 그동안 써 온 인명 표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함께 안내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Kim을 보고 무조건 Gim으로 고쳐 주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름은 교과서의 연습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오래 써 온 신원 정보입니다. 가령 Kim Minsu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의 서류를 Gim Min-su로 손보면 대문자만 고친 게 아닙니다. 성의 철자와 이름의 구분 방식까지 바꾼 셈이지요. 먼저 무엇을 고치려는지 살펴야 합니다. 대문자 위치가 궁금한 것인지, 로마자 철자를 새로 정하는 것인지, 기존 여권과 일치시키려는 것인지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학생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기소개서에는 Hong Gildong이라고 쓰면 자연스럽고, 여권 정보를 옮길 때는 여권에 적힌 이름을 그대로 확인하자.” 이름의 첫 글자를 크게 쓰는 까닭은 그 말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고유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대문자 몇 개를 외우는 것보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