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 시간에 ‘국물’을 소리 내어 읽게 하면 학생들은 거의 모두 자연스럽게 [궁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칠판에 발음을 적어 보라고 하면 잠깐 멈칫하지요. 글자에는 ‘ㄱ’이 있는데 입에서는 ‘ㅇ’이 나왔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리는 겁니다.
말을 할 때는 앞뒤 소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발음하기 어려운 소리는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를 음운 변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음운은 뜻을 구별하는 말소리의 단위입니다. 음운 변동 종류를 이해할 때는 긴 규칙부터 외우기보다 소리가 바뀌었는지, 합쳐졌는지, 사라졌는지, 새로 생겼는지를 먼저 들어 보는 편이 쉽습니다.
다른 소리로 바뀌면 교체입니다
‘국물’의 [궁물]은 교체의 좋은 예입니다. 뒤에 입을 다문 채 내는 ‘ㅁ’이 오자 앞의 ‘ㄱ’도 코로 내는 ‘ㅇ’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이웃한 소리를 닮아 가는 현상을 동화라고 하고, 이 경우에는 비음화라고 부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18항에도 이런 발음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신라’를 [실라]라고 읽는 것도 이웃 소리의 영향입니다. ‘ㄴ’이 뒤의 ‘ㄹ’을 닮아 ‘ㄹ’로 바뀌는 유음화이지요. 다만 ‘ㄴ’과 ‘ㄹ’이 만날 때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생산량’은 [생산냥]으로 발음합니다. 낱말을 보지 않고 ‘ㄴ’과 ‘ㄹ’만 보고 발음을 단정하면 틀리기 쉬운 까닭입니다.
‘국밥’이 [국빱]이 되는 된소리되기도 교체입니다. ‘ㅂ’이 ‘ㅃ’으로 바뀌었으니까요. ‘굳이’가 [구지]가 되는 구개음화도 같은 갈래입니다. ‘ㄷ’이 뒤의 ‘ㅣ’를 만나 ‘ㅈ’으로 바뀝니다. 표준 발음법 제17항은 받침 ‘ㄷ, ㅌ’이 조사나 접미사의 ‘ㅣ’와 결합할 때의 발음을 규정합니다. 그래서 ‘굳이’는 [구지]이지만, ‘굳어’는 [구더]입니다.
두 소리가 하나가 되면 축약입니다
‘좋고’를 읽을 때 ‘ㅎ’과 ‘ㄱ’을 하나하나 분리해 발음하지 않습니다. 두 소리가 합쳐져 거센소리 ‘ㅋ’이 되고, 발음은 [조코]가 됩니다. ‘놓다’가 [노타]가 되는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두 소리가 하나로 줄었으므로 축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묻습니다. ‘좋고’의 ‘ㅎ’이 안 들리니 탈락 아닌가요? 발음 결과만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ㅎ’이 뒤의 ‘ㄱ’에 영향을 주어 ‘ㅋ’을 만들었습니다. 두 소리의 성질이 한 소리에 모인 것이지요. 국립국어원도 이런 거센소리되기를 축약의 예로 설명합니다.
‘보아’와 ‘봐’처럼 모음이 줄어든 형태를 만났을 때는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교과서나 문법서에 따라 반모음화로 분석하는 방식 등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험 문제라면 먼저 배우는 교과서의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네 갈래는 소리를 이해하는 큰 틀이지, 모든 사례의 분석이 언제나 한 가지로 고정된 표는 아닙니다.
소리가 사라지면 탈락입니다
‘값’을 [갑]이라고 읽을 때는 겹받침 ‘ㅄ’ 가운데 ‘ㅅ’이 소리 나지 않습니다. 우리말의 한 음절 끝에서는 겹받침의 두 자음을 그대로 모두 발음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남는 자음군 단순화가 일어나며, 이는 탈락에 속합니다. 글자로는 ‘값’이라고 적어야 뜻과 낱말의 형태가 드러납니다.
‘좋아’는 [조아]로 발음합니다. 이번에는 ‘ㅎ’이 뒤의 모음과 만날 때 소리 나지 않습니다. ‘좋고’에서는 ‘ㅎ’이 ‘ㅋ’을 만드는 데 참여했지만, ‘좋아’에서는 빠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글자 ‘ㅎ’이라도 뒤에 오는 소리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표기와 발음을 나란히 놓으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값’의 ‘ㅅ’과 ‘좋아’의 ‘ㅎ’이 발음에서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글자에서도 지우지는 않습니다. 맞춤법은 매번 달라지는 발음을 그대로 옮기는 방식만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값이’는 [갑씨]로 읽히는 등 뒤에 붙는 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지만, ‘값’이라는 낱말의 표기는 이어집니다.
없던 소리가 들어오면 첨가입니다
‘담요’는 [담뇨]라고 발음합니다. 글자에는 없는 ‘ㄴ’이 ‘요’ 앞에 들어온 것입니다. 표준 발음법 제29항은 합성어나 파생어에서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할 때 ‘ㄴ’이 첨가되는 경우를 규정합니다. ‘담요’의 [담뇨]가 그 예입니다.
‘색연필’은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연’ 앞에 ‘ㄴ’이 더해지고, 앞의 ‘ㄱ’이 뒤의 ‘ㄴ’을 닮아 ‘ㅇ’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생년필]이 됩니다. 한 낱말에 첨가와 교체가 함께 일어난 것이지요. 발음만 듣고 ‘생년필’로 적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소리는 발음의 변화이지 표기의 변화가 아닙니다.
한편 ‘옷이’를 [오시]라고 읽는 것은 보통 음운 변동으로 세지 않습니다. 받침 ‘ㅅ’이 뒤 음절로 자리를 옮겨 발음되지만, 다른 소리로 바뀌거나 새 소리가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연음이라고 합니다. ‘값’의 받침이 줄어드는 일과 ‘옷이’의 받침이 옮겨 가는 일을 구별하면 탈락도 훨씬 또렷해집니다.
학생들과 발음을 비교할 때 저는 먼저 글자를 가리고 소리만 들어 보게 합니다. ‘국물’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좋고’에서는 두 소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묻지요. 그런 뒤 표기를 다시 보여 줍니다. 입에서 일어난 변화와 글자에 남겨 둔 낱말의 모습을 함께 보면, 네 가지 이름은 외워야 할 목록보다 말소리를 읽는 방법에 가까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