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찰장에서 전세권 설정 기간이 끝났다는 말만 듣고 안심하는 분을 종종 봅니다. 저도 초보 때는 등기부에 적힌 만료일이 지나면 전세권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건물 전세권은 그 날짜 하나로 판단하면 위험합니다. 갱신됐는지, 앞선 권리보다 먼저 등기됐는지,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했는지에 따라 낙찰자가 떠안을 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적을 수 있는 기간부터 다르다
민법 제312조에 따르면 전세권의 존속기간은 최대 10년입니다. 12년으로 약정해도 10년으로 줄어듭니다. 건물 전세권은 1년 미만으로 정하면 1년으로 봅니다. 그래서 건물에 6개월짜리 전세권을 설정했다고 해도 법에서 보는 기간은 1년입니다. 이 최소 1년 규정은 건물 전세권에 관한 것이니 토지 전세권까지 똑같이 적용하면 안 됩니다.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당사자가 합의해 갱신할 수도 있습니다. 갱신한 날부터 다시 최대 10년입니다. 여기서 자주 섞이는 게 전세계약 기간과 전세권 등기입니다. 계약서에 ‘전세 2년’이라고 써 있는 것과 등기부에 전세권이 설정돼 있는 것은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전세계약만 체결했다면 전세권 설정 기간을 논하기 전에, 전세권 등기가 실제로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만료일이 지났는데도 권리가 남는 경우
건물 전세권에는 법정갱신 규정이 있습니다. 설정자가 만료 전 6개월부터 1개월까지 사이에 갱신거절이나 조건변경 통지를 하지 않았다면, 종전과 같은 조건으로 다시 전세권이 설정된 것으로 봅니다. 이때 새 존속기간은 2년처럼 딱 정해지는 게 아니라 기간을 정하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민법 제313조에 따라 어느 쪽이든 소멸을 통고할 수 있고, 상대방이 통고를 받은 날부터 6개월이 지나면 전세권이 소멸합니다.
경매 물건을 볼 때 까다로운 대목이 여기입니다. 건물 전세권의 법정갱신은 갱신등기를 새로 하지 않아도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입니다. 등기부의 옛 만료일만 보고 ‘이미 끝났다’고 계산하면 안 되는 이유죠. 실제로는 갱신거절 통지가 있었는지, 언제 상대방에게 도달했는지, 전세금은 반환됐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서류로 확인되지 않으면 입찰금액에 위험을 반영하거나 물건을 지나치는 편이 낫습니다.
경매에서는 기간보다 등기 순서와 배당요구가 무섭다
가령 시세가 3억 원인 아파트에 전세금 1억 8천만 원의 전세권이 먼저 등기되고, 그 뒤 근저당권이 설정됐다고 해봅시다. 전세권의 등기상 만료일은 지났지만 법정갱신 여부가 불분명합니다. 이 상태에서 2억 4천만 원에 낙찰받으면 얼핏 6천만 원 싸게 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세권을 낙찰자가 인수하고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입대금과 전세금만 합쳐 4억 2천만 원입니다. 취득세, 명도비, 이자까지 더하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숫자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지만, 계산을 잘못하는 방식은 현장에서 실제로 봅니다.
민사집행법 제91조는 선순위 권리에 대항할 수 없는 전세권은 매각으로 소멸하고, 그 밖의 전세권은 원칙적으로 매수인이 인수하도록 정합니다. 다만 인수 대상 전세권이라도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하면 매각으로 소멸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세권 설정 기간을 본 다음 등기 순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배당요구 여부를 차례로 대조합니다. 전세권자가 실제로 점유하는지와 별도의 임차권 주장이 있는지도 봅니다. 배당요구를 했다는 말만 듣지 말고 사건 기록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설정하려는 사람도 날짜 두 개를 챙겨야 한다
전세권을 새로 설정할 때는 계약 시작일과 등기 순서를 따로 봐야 합니다. 전세권의 순위는 계약서를 쓴 순서가 아니라 등기된 순서가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3월 1일 계약하고 보증금을 보냈는데 전세권 등기가 3월 5일에 이뤄졌다면, 그 사이 다른 담보권이 먼저 등기됐는지가 중요해집니다. 계약서에 전세권 설정을 약속받았다는 것만으로 선순위가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기가 왔을 때도 전세금 반환과 말소 서류를 함께 챙겨야 합니다. 민법 제317조는 전세권이 소멸하면 목적물 인도와 말소등기에 필요한 서류의 교부, 전세금 반환을 동시에 이행하도록 정합니다. 돈을 받기 전에 무턱대고 말소부터 해주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반대로 경매 입찰자라면 만료일이 지났다는 말만 믿고 권리가 없어졌다고 계산해서도 안 됩니다. 제 입찰 수첩에는 전세권 날짜 옆에 늘 한 줄을 더 적습니다. ‘이 돈을 결국 누가 돌려주는가.’ 그 답이 서류로 확인될 때만 가격을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