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가 시간 여행 영화 한 편만 골라 달라고 했다. 막상 제목을 대려니 망설여졌다. 같은 시간을 되풀이해도 어떤 영화는 웃기고, 어떤 영화는 보고 나서 오래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시간 여행 영화 추천을 할 때는 별점보다 먼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싶은지 묻는다. 아래 여섯 편은 이야기가 움직이는 방식과 보고 난 뒤 남는 감정이 서로 다르다. 줄거리의 출발점까지만 적었고, 반전과 마지막 장면은 건드리지 않았다.
시간을 돌려도 결국 사람이 남는 영화
편안한 저녁에 한 편을 고른다면 어바웃 타임부터 권한다. 팀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처음에는 연애를 위해 그 능력을 쓴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시작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건 가족과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다. 시간 여행의 규칙을 촘촘하게 따지는 재미를 기대하면 조금 느슨할 수 있다. 반대로 좋은 사람들과 보낸 하루가 왜 소중한지 느끼고 싶다면 잘 맞는다. 따뜻한 영화이지만 감정이 가볍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비슷하게 일상에서 출발해 다른 온도로 남는다. 마코토는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얻고 지각이나 난처한 순간처럼 눈앞의 작은 문제부터 고친다. 학생 시절이라면 누구나 해볼 법한 선택이라 금세 마음이 간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편해진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청춘 애니메이션의 맑은 화면과 여름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작은 선택이 관계에 남기는 흔적을 생각하며 보면 더 좋다.
같은 하루가 반복될수록 더 재미있는 영화
속도감이 필요할 때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다. 외계 생명체와 싸우는 전장에서 케이지는 죽을 때마다 같은 시점으로 돌아온다. 처음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사람이 반복을 통해 전장을 익혀 간다. 관객도 그와 함께 실패의 이유를 배우기 때문에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돼도 지루할 틈이 적다. 액션과 게임의 재도전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다. 전투 장면이 거칠고 긴박해서 조용한 감성 영화를 찾는 날에는 취향이 갈릴 수 있다.
팜 스프링스도 하루가 반복되지만 방향은 다르다. 결혼식에 온 두 사람이 같은 날에 갇히고, 영화는 이 황당한 상황을 건조한 농담과 로맨스로 풀어낸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다음 시도에서 무엇을 바꿀지 궁금하게 한다면, 이쪽은 빠져나갈 수 없는 하루를 함께 보내는 두 사람의 태도를 보게 한다. 재치 있는 대화와 조금 비뚤어진 유머가 좋다면 맞을 가능성이 크다. 가벼운 코미디를 예상했다가 인물들이 지닌 씁쓸함에 뜻밖에 마음이 머물 수도 있다.
시간 여행의 규칙을 따라가는 재미
처음 시간 여행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백 투 더 퓨처가 여전히 좋은 출발점이다. 마티가 과거로 가서 젊은 시절의 부모를 만나면서, 자신의 현재까지 흔들릴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설정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사건 하나가 다음 사건을 밀어내는 방식이 경쾌하다. 가족과 함께 보기에도 좋고, 오래된 영화 특유의 소품과 음악을 즐기는 맛도 있다. 다만 1980년대 영화의 연기와 농담이 낯선 사람이라면 초반에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반대로 머릿속에서 사건을 맞춰 보는 일을 즐긴다면 프리데스티네이션을 고르겠다. 시간 여행을 하는 요원이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인데, 사건의 순서만 따라가도 자연스럽게 물음표가 늘어난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미리 찾아볼수록 재미가 줄어든다. 소개 글도 여기까지만 읽고 보는 편이 낫다. 인물의 대화와 시간의 앞뒤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피곤한 밤에 틀어 두기보다는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때에 어울린다.
지금 기분에 맞춰 한 편만 고른다면
따뜻한 여운을 원하면 어바웃 타임, 청춘의 아쉬움을 느끼고 싶다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좋다. 빠른 액션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씁쓸한 웃음이 섞인 로맨스는 팜 스프링스 쪽이다. 시간 여행의 고전적인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백 투 더 퓨처, 이야기를 다 본 뒤 처음부터 다시 떠올리는 즐거움을 원한다면 프리데스티네이션을 권한다.
나는 시간 여행 영화에서 기계나 규칙보다 시간을 다시 얻은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더 오래 본다. 그 선택을 웃으며 지켜보고 싶은 날도 있고, 조용히 곱씹고 싶은 날도 있다. 오늘 볼 영화는 그날의 마음과 가까운 쪽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