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가계부를 펼쳐놓고 이사 예산을 계산하다가, 집값보다 먼저 봐야 할 숫자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대출을 받으면 당장 필요한 현금은 줄지만, 매달 나가는 이자와 계약이 끝날 때 갚아야 할 원금은 그대로 남는다.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금액과 우리 집이 편하게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다를 때가 많다.
1. 보증금에서 내 돈을 빼고, 남길 돈도 따로 적는다
보증금 2억 원인 집을 보고 모아둔 돈이 7천만 원이라면, 처음에는 전세대출 1억 3천만 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그 7천만 원을 전부 보증금에 넣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사비, 중개보수, 가전 교체비가 들고, 이사한 다음 달에도 생활비는 필요하다.
가령 당장 쓸 현금 7천만 원 중 1천만 원을 이사 비용과 비상금으로 남기면 보증금에 넣을 돈은 6천만 원이다. 필요한 대출은 1억 4천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 차이 1천만 원을 빠뜨리면 처음 계산한 이자도 달라진다. 비상금은 집을 구하고 남으면 만드는 돈이 아니라, 집을 고르기 전에 확보할 돈으로 보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
2. 월 이자를 월세처럼 가계부에 넣는다
전세대출 1억 4천만 원에 연 4% 금리가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한 이자는 한 달 약 46만 7천 원이다. 대출액이 같은데 금리가 연 4.5%라면 약 52만 5천 원이다. 0.5%포인트 차이가 매달 약 5만 8천 원, 2년이면 약 140만 원이 된다. 실제 납입액은 대출 상품의 금리와 이자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지지만, 집을 비교할 때 쓰기에는 충분히 구체적인 숫자다.
가계부에는 이자만 넣지 않는다. 관리비 18만 원, 통신비 10만 원, 교통비 20만 원처럼 매달 거의 고정으로 나가는 돈을 함께 적는다. 위 사례라면 이자까지 합쳐 월 94만 7천 원이다. 식비와 보험료, 저축액을 빼고도 이 금액을 꾸준히 낼 수 있는지 봐야 한다. 특히 상환 방식이 만기일시상환이라면 매달 이자를 낸다고 원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의 대출 잔액도 가계부 한쪽에 계속 적어두는 게 좋다.
3. 금리 한 줄보다 실제 부담할 비용을 비교한다
은행 두 곳에서 각각 연 3.9%, 연 4.1%를 안내받았다면 낮은 숫자에 눈이 먼저 간다. 하지만 우대금리를 받기 위한 조건을 계속 지킬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 급여 이체나 카드 사용 조건 때문에 평소보다 소비가 늘어난다면, 낮아진 이자가 가계부에서는 별 이득이 아닐 수 있다. 금리 외에 보증료와 인지세 등 계약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확인할 항목이다.
정책 대출 대상인지도 먼저 확인할 만하다. 주택도시기금의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처럼 소득, 자산, 무주택 여부와 주택 조건을 심사하는 상품이 있다. 기준과 금리는 신청 시점에 달라질 수 있으니, 계약 전에 주택도시기금과 취급 은행에서 내 조건으로 확인해야 한다. 상담 단계에서 들은 예상 한도를 확정된 대출금처럼 계산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4. 보증금이 돌아오는 경로까지 확인한다
전세대출을 알아보다 보면 ‘보증’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대출을 받기 위한 보증과 계약 종료 후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을 보호하는 반환보증은 확인할 목적이 다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안내에서도 전세자금 대출 관련 보증과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보장 내용을 구분한다.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보증금 반환까지 보호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계약 전에는 은행에 해당 집으로 대출이 가능한지,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한지 각각 물어보는 게 좋다. 등기부의 소유자와 선순위 권리, 계약서상 임대인도 확인해야 한다. 반환보증에는 주택과 계약에 관한 가입 조건과 신청 기한이 있으므로 계약 직후로 확인을 미루지 않는 편이 낫다. 이 부분은 월 이자 몇만 원을 아끼는 계산보다 먼저 챙기고 싶다.
가계부를 오래 쓰며 느낀 건, 좋은 집의 기준이 보증금 액수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사를 마친 뒤에도 생활비가 돌고, 예상 밖의 지출을 감당할 현금이 남아 있는 집이라면 오래 살아도 덜 불안하다. 전세대출 금액을 정할 때 저는 그 여유까지 집값의 일부로 계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