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량, 우리 집에는 며칠분이 있나요?

비상식량, 우리 집에는 며칠분이 있나요?

건강검진센터에서 일할 때 “집에 먹을 건 많아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전이나 단수가 생겨 조리도 설거지도 어렵다고 가정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의외로 적습니다. 내과 병동에서는 평소 식사와 약 복용 시간이 일정했던 분이 끼니를 거른 뒤 혈당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봤고요. 비상식량은 오래 두는 음식만 모아 놓은 상자보다, 우리 집 사람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사흘치 식사에 가깝습니다.

사흘치를 준비한다면 무엇부터 셀까요?

국민안전24는 비상식량과 식수를 약 3일분 준비하도록 안내합니다. 먼저 가족 수에 3일을 곱해 식사 횟수를 세면 됩니다. 두 사람이면 적어도 18끼입니다. 그 안에 유아, 임신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삼키기 어려운 어르신이 있다면 같은 메뉴로 채울 수는 없습니다.

물도 음식과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미국 재난 대비 안내의 기준은 1인당 하루 약 3.8리터이며, 마시는 물뿐 아니라 기본적인 위생에 쓸 물까지 포함한 양입니다. 네 식구의 사흘치라면 약 46리터가 됩니다. 다만 심부전이나 투석 때문에 수분 섭취량을 제한받는 분은 이 숫자를 하루 음용량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보관할 물의 양과 실제 마실 양을 구분하고, 평소 의료진이 정한 제한량을 따르세요.

맛보다 먼저 볼 것은 먹을 수 있는 조건입니다

저라면 상자에 넣을 음식을 고를 때 세 가지를 봅니다. 포장을 뜯어 바로 먹을 수 있는지, 물이나 전기가 없어도 되는지, 가족의 식사 제한에 맞는지입니다. 즉석밥은 익숙하지만 데우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통조림도 따개가 필요한 제품이면 수동 따개를 함께 넣어야 하고요. 한 번 열면 남기기 쉬운 큰 캔보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작은 포장이 편합니다.

  • 주식은 바로 먹을 수 있는 빵, 크래커, 시리얼 등을 가족의 취향과 씹는 능력에 맞춰 고릅니다.
  • 단백질 식품은 참치나 닭고기 통조림, 상온 보관이 가능한 식품을 살펴보되 알레르기와 나트륨 함량을 확인합니다.
  • 과일이나 채소는 상온 보관 제품을 더할 수 있습니다. 당뇨가 있다면 시럽에 담긴 과일과 달게 만든 음료를 평소 식사처럼 자주 먹는 계획은 피합니다.
  • 아기에게 필요한 조제식, 알레르기 대체식, 씹거나 삼키기 쉬운 음식은 해당 가족의 몫으로 따로 챙깁니다.

제품 앞면의 ‘건강한’이라는 문구보다 영양정보와 보관 방법이 더 쓸모 있습니다. 나트륨은 1회 제공량뿐 아니라 한 포장을 다 먹었을 때의 양을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2회분인 제품을 혼자 다 먹으면 표시된 1회분 나트륨의 두 배를 먹게 됩니다. 여러 제품을 한 끼에 곁들이면 그 양도 합쳐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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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나 신장질환이 있다면 같은 상자로 충분할까요?

당뇨가 있는 분에게는 식사 간격과 약 종류가 중요합니다. 인슐린이나 저혈당을 일으킬 수 있는 약을 쓰는데 식사가 늦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혈당이 70mg/dL 미만이면 저혈당으로 보고, 의식이 있고 삼킬 수 있을 때 빠르게 흡수되는 탄수화물 15g을 섭취한 뒤 15분 후 다시 측정하도록 안내합니다. 여전히 70mg/dL 미만이면 같은 조치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일반 식사용 비상식량과 별개로 포도당 정제나 일반 주스처럼 저혈당에 대처할 물품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콜릿이나 견과류는 지방 때문에 당 흡수가 늦어 응급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투석 중인 분은 더 개별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미국 신장재단은 투석이 중단되는 비상 상황에서 칼륨, 인, 나트륨, 수분이 쌓이는 것을 경계합니다. 흔히 비상식량으로 떠올리는 견과류, 말린 과일, 즉석 국물류가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다니는 투석실에 식사 계획과 투석을 못 받게 될 때의 연락 방법을 미리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심부전이나 고혈압으로 염분을 제한받는 분도 국물과 가공식품의 나트륨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약과 비상식량을 한 상자에 넣었다고 준비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 이름, 용량, 복용 시간을 적어 두고 필요한 약과 혈당 측정용품을 어떻게 보관할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인슐린처럼 보관 조건이 중요한 약은 제품별 안내와 의료진의 지시를 따르세요. 재난 때문에 식사를 못 했다고 약을 임의로 끊거나 두 배로 먹는 판단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래 보관한 음식, 언제 버리고 언제 진료받을까요?

비상식량은 눈에 띄고 꺼내기 쉬운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둡니다. 새 제품을 뒤에 넣고 오래된 것부터 평소 식사에 쓰면 날짜를 놓치기 어렵습니다. 소비기한만 보지 말고 포장 상태도 확인하세요. 캔이 부풀거나 새고, 심하게 찌그러졌다면 맛을 보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냄새가 괜찮다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정전 때 냉장고 음식부터 급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미국 식품안전 안내에 따르면 문을 열지 않은 냉장고의 냉기는 약 4시간, 가득 찬 냉동고는 약 48시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온도가 올라간 고기, 생선, 달걀, 남은 음식은 아깝더라도 폐기해야 합니다. 실제 보관 온도와 문을 연 횟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맛을 봐서 결정하지 마세요.

비상식량을 먹은 뒤 반복해서 토하거나 물도 마시기 어렵다면 진료를 받으세요. 당뇨가 있는 분의 혈당이 70mg/dL 미만으로 떨어져 조치 후에도 회복되지 않거나, 투석을 받지 못한 뒤 숨이 차고 몸이 붓는 경우에도 의료진과 바로 상의해야 합니다. 의식이 흐리거나 삼킬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음식이나 음료를 먹이지 말고 119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제가 비상식량 상자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유통기한보다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의 몸 상태입니다.

비상식량, 우리 집에는 며칠분이 있나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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