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창문이 닫혀졌다’를 보았습니다. ‘닫혔다’로 고쳐 주자 학생이 물었습니다. “뜻은 통하는데 왜 빼야 해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중피동과 이중사동은 글자 수로 가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행동하고, 누가 그 행동을 겪거나 시키는지 따라가면 말이 만들어진 까닭이 보입니다.
창문은 닫혔는데, 왜 닫혀졌다고 할까요?
‘닫다’는 누군가 창문을 닫는 행동입니다. 여기에 피동의 뜻을 더하면 ‘닫히다’가 됩니다. ‘창문이 닫혔다’라고 말할 때 창문은 행동을 하는 쪽이 아니라 그 행동을 겪는 쪽이지요. 그런데 ‘닫히다’에 다시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붙이면 ‘닫혀지다’가 됩니다. 피동의 뜻을 두 번 얹은 셈입니다.
국립국어원은 피동을 나타내는 접미사 ‘-이-, -히-, -리-, -기-’가 붙은 말에 ‘-어지다’를 다시 더하는 경우를 이중피동으로 설명합니다. ‘닫혀졌다’는 ‘닫혔다’로, ‘잊혀졌다’는 ‘잊혔다’로 쓰는 편이 적절합니다. ‘잊혀진 계절’처럼 귀에 익은 표현도 있지만, 익숙하게 들린다는 사실만으로 피동이 두 번 들어간 구조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지다’가 보일 때마다 지워서는 안 됩니다. ‘유리창이 깨어졌다’의 ‘깨어지다’는 ‘깨다’에 ‘-어지다’를 붙여 피동의 뜻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앞에 피동의 뜻이 이미 들어 있는 ‘깨지다’를 쓴 것이 아니니까요. 먼저 앞말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보여지다’와 ‘알려지다’는 왜 다를까요?
발표 자료를 보며 “글씨가 잘 보여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때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요’가 자연스럽습니다. ‘보이다’가 ‘보다’의 피동사로 쓰였는데 거기에 ‘-어지다’가 한 번 더 붙었기 때문입니다. 글씨의 상태를 말하는 데 ‘보인다’만으로 뜻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같은 ‘보이다’라도 쓰임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사진을 보였다”에서는 학생이 사진을 보게 했다는 사동의 뜻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이처럼 사동사 ‘보이다’에 피동의 뜻이 더해지는 맥락이라면 ‘보여지다’를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낱말 하나만 떼어 놓고 언제나 같은 판정을 내리기보다, 문장 속 ‘보이다’가 무슨 뜻인지 먼저 읽어야 합니다.
‘그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도 자주 오해받습니다. ‘알려지다’를 보면 피동이 겹친 듯하지만, ‘알리다’의 ‘-리-’는 여기서 사동의 뜻을 더합니다. ‘알다’에서 ‘남이 알게 하다’라는 ‘알리다’가 되고, 그 알리는 일을 겪는다는 뜻으로 ‘알려지다’가 된 것입니다. 사동 뒤에 피동이 이어진 말이지, 피동을 두 번 쓴 말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남겨지다’도 사동사 ‘남기다’에 피동의 뜻이 더해진 말로 설명합니다.
시키는 사람이 둘이면 이중사동도 필요합니다
사동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아이가 밥을 먹으면 ‘먹다’, 어른이 아이에게 밥을 먹게 하면 ‘먹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이다’의 ‘-이-’가 사동의 뜻을 맡습니다. ‘먹게 하다’도 사동 표현이지만, 두 말이 언제나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숟가락을 들어 먹여 주는 상황과 아이가 스스로 먹도록 이르는 상황을 구별할 때가 있지요.
그렇다면 사동사 뒤에 ‘-게 하다’가 또 나오면 무조건 덜어 내야 할까요? “엄마가 아빠에게 아기를 재우게 했다”에는 시키는 관계가 두 단계 있습니다. 아기가 자고, 아빠가 아기를 재우고, 엄마가 아빠에게 그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재우다’만 남겨 “엄마가 아기를 재웠다”라고 바꾸면 아빠가 맡은 일이 사라집니다. 국립국어원도 이런 맥락에서는 ‘재우게 했다’를 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실제로 시키는 사람이 한 명이고 행동도 한 단계라면 표현을 길게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재우게 했다”는 문장도 가능하지만, 엄마가 직접 아기를 재웠다는 장면을 전하려는 글이라면 “엄마가 아기를 재웠다”가 더 또렷합니다. 이중사동을 볼 때는 형태가 겹쳤다는 사실보다 그 겹침이 문장 속 관계를 드러내는지가 중요합니다.
고칠 때는 말의 주인을 찾아보면 됩니다
학생들과 문장을 고칠 때 저는 접미사 이름부터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 가지를 차례로 묻습니다.
- 누가 처음 행동을 하나요? ‘먹다’에서는 아이가 먹고, ‘닫다’에서는 누군가 창문을 닫습니다.
- 그 행동을 겪는 쪽이 있나요? ‘창문이 닫혔다’에서는 창문이 닫히는 일을 겪습니다.
-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나요? ‘엄마가 아빠에게 아기를 재우게 했다’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다릅니다.
이 질문을 거치면 ‘문이 열려졌다’는 ‘문이 열렸다’로 고치기 쉽습니다. ‘열리다’에 이미 피동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빠에게 아기를 재우게 했다’에서는 ‘-게 하다’를 지우기 전에 누가 아기를 재우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이중피동은 대개 이미 나타난 피동의 뜻이 되풀이된 자리에서 생깁니다. 이중사동은 시키는 관계가 실제로 두 단계일 때 그 차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글을 읽을 때도 말을 고칠 때도, 형태를 세기 전에 그 문장에 등장하는 사람과 행동을 먼저 그려 보는 까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