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교실에서 김치볶음밥을 같이 만들면 같은 재료를 써도 맛이 꽤 다르게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밥알이 고슬고슬한데, 옆 사람 것은 김치죽처럼 되지요. 주방에서 오래 일하며 보니 차이는 대개 김치 국물의 양, 불 세기, 밥을 넣는 순서에 있었습니다. 한 끼 분량부터 차근차근 맞춰 볼게요.
한 그릇에 필요한 재료와 양
1인분 기준으로 밥 1공기 210g, 잘 익은 김치 100g, 양파 40g, 식용유 2작은술 10ml, 간장 1작은술 5ml을 준비합니다. 달걀 1개와 대파 10g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됩니다. 김치가 지나치게 시면 설탕 1/2작은술, 약 2g을 따로 두세요. 처음부터 넣지 말고 볶은 뒤 맛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김치 100g은 밥숟가락으로 수북하게 5~6숟가락 정도입니다. 다만 숟가락마다 차이가 있으니 처음 한 번은 무게를 재보면 다음부터 감이 잡혀요. 김치 국물은 따로 1큰술 15ml만 받아 둡니다. 국물이 많다고 전부 넣으면 밥이 질어집니다. 김치가 촉촉하면 그 1큰술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양파가 없다면 생략해도 괜찮습니다. 대파 대신 쪽파를 쓰거나, 둘 다 없으면 김치와 밥만으로 볶아도 돼요. 밥이 150g뿐이라면 김치는 70g, 기름은 1과 1/2작은술, 간장은 1/2작은술부터 넣으세요. 양념은 밥 양에 맞춰 줄여야 마지막에 짜지 않습니다.
볶기 전에 김치와 밥 손질하기
김치는 가위로 1cm 안팎으로 잘라 둡니다. 크게 썰면 밥 한 숟가락마다 김치가 고르게 들어가지 않고, 팬에서도 익는 시간이 들쭉날쭉해요. 양파는 김치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게 썹니다. 대파를 쓴다면 얇게 송송 썰어 주세요.
차가운 밥은 숟가락으로 큰 덩어리만 먼저 풀어 둡니다. 억지로 낱알까지 떼려다 밥을 으깨면 볶았을 때 끈적해져요. 갓 지은 밥이라면 접시에 넓게 펴서 5~10분 정도 김을 빼고 사용합니다. 뜨거운 밥에 김치 국물까지 더하면 수분이 팬에 오래 남습니다.
팬은 지름 24~26cm 정도면 한 그릇 볶기에 편합니다. 작은 팬에 밥과 김치가 겹겹이 쌓이면 수분이 날아갈 자리가 없어져요. 팬이 작다면 두 번에 나누어 볶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김치를 먼저 볶고 밥은 나중에 넣기
팬을 중불로 30초쯤 데운 뒤 기름을 넣습니다. 대파가 있으면 먼저 넣어 30초 정도 볶고, 양파를 넣어 1분 더 볶습니다. 대파가 없다면 양파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기름에서 파 향이 올라오면 그때 김치를 넣어요.
김치는 중불에서 2~3분 볶습니다. 처음엔 팬 바닥에 붉은 물기가 보이다가 점차 줄어들고, 김치 가장자리가 조금 투명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수분을 날려야 나중에 들어갈 밥이 양념을 머금으면서도 뭉개지지 않아요. 김치가 팬에 달라붙기 시작하면 불을 한 단계 낮추고, 받아 둔 김치 국물을 1작은술씩만 더합니다. 국물 1큰술을 한꺼번에 붓지 마세요.
밥을 넣고 중불을 유지한 채 주걱으로 큰 덩어리를 누르듯 풀어 2분 볶습니다. 계속 휘젓기보다 밥을 펴서 20~30초 두었다가 뒤집으면 팬의 열이 밥에 닿습니다. 밥알이 어느 정도 풀렸을 때 팬 한쪽을 비우고 간장 1작은술을 빈 자리에 넣으세요. 10초쯤 끓어 향이 올라오면 밥과 섞어 1분 더 볶습니다. 간장을 처음부터 김치에 붓는 것보다 밥이 들어간 뒤 넣어야 짠맛을 확인하기 쉽습니다.
한 숟가락 먹어 보고 간을 맞춥니다. 김치가 많이 시면 준비한 설탕 1/2작은술을 넣고 30초 더 볶으세요. 싱거우면 간장을 1/2작은술씩 추가합니다. 달걀은 별도 팬에 부쳐 얹으면 깔끔하고, 팬이 하나라면 볶음밥을 그릇에 덜어 낸 뒤 같은 팬에 부치면 됩니다.
질거나 짜졌을 때 수습하는 법
제가 처음 요리교실에서 시범을 보일 때 김치 국물을 넉넉히 넣었다가 밥이 축축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간장을 더 넣어 맛을 덮기보다, 밥을 팬에 얇게 펴고 중불에서 1분가량 그대로 둡니다. 뒤집어서 다시 1분 볶으면 수분이 조금씩 날아가요. 팬 바닥이 타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고 두세 번에 나누어 반복합니다.
이미 짜다면 김치나 물을 더 넣지 마세요. 간하지 않은 밥 2~3숟가락을 추가해 섞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밥이 없다면 달걀을 소금 없이 부쳐 함께 먹으면 한입의 짠맛이 덜합니다. 반대로 너무 뻣뻣하고 김치 맛이 약하다면 남겨 둔 김치 국물을 1작은술만 넣어 볶고 맛을 본 뒤 다음 양을 결정하세요.
한 번에 근사하게 만들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김치를 먼저 볶아 물기를 줄이고, 밥을 넣은 뒤 간을 조금씩 맞추는 순서만 익히면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도 든든한 한 그릇이 나옵니다. 제게 자취 요리왕은 재료를 많이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기 팬과 불의 속도를 알아가는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