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여행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봤더니

순천 여행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봤더니

순천역을 나와 큰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다. 관광 안내판보다 낮은 담장과 가게 문 앞 화분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은 유명한 풍경이 아니라 그 평범한 골목이었다. 순천 여행지를 묻는 사람에게 요즘은 역 가까운 조곡동부터 천천히 걸어보라고 말한다.

한적한 여행은 장소 이름만 보고 고르면 조금 어긋난다. 같은 골목도 장이 서는 날과 평일 오후의 표정이 다르고, 주민이 오가는 길에서는 여행자가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 좋다. 내가 걸었던 동선을 따라, 쉬어 갈 곳과 조금 아쉬웠던 점까지 적어본다.

순천역 뒤편에서 만난 조곡동의 느린 골목

첫걸음은 순천역 주변의 조곡동 철도문화마을로 향했다. 역을 등지고 무작정 골목으로 들어가기보다 지도에서 마을 이름을 확인하고 큰길을 건너는 편이 수월했다. 골목이 여러 갈래라 처음에는 방향을 한두 번 다시 잡게 된다. 그래도 길 찾기에 쫓길 만큼 넓은 동네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좋았던 건 철도와 함께 살아온 동네라는 이야기가 풍경에 과하게 덧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낮은 집 사이를 걷다 보면 오래된 동네의 생활감이 남아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추기보다 골목 끝까지 걸었다가 돌아오는 쪽이 더 잘 어울렸다. 누군가 사는 집의 대문이나 창문은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다. 관광지가 되었다고 해도 주민에게는 여전히 집 앞길이니까.

주말 오후에 사람이 몰리는 다른 순천 여행지와 비교하면 걸음이 한결 느슨했다. 다만 골목 자체가 넓은 산책로는 아니다. 차가 지나갈 때는 가장자리로 비켜서야 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여럿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걷기에는 맞지 않는다.

문화의거리에서 옥천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조곡동에서 다시 원도심으로 넘어가 문화의거리 쪽을 걸었다. 순천시 관광 안내에도 걷기 여행 장소로 소개되는 거리다. 이름만 들으면 가게가 빽빽한 곳을 떠올리기 쉬운데, 내가 갔던 낮에는 문을 연 공간과 닫힌 공간이 섞여 있었다. 전시를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벽면과 작은 간판, 골목이 꺾이는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거리에서는 목적지를 촘촘히 찍기보다 옥천 방향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물길 가까이 가면 차 소리보다 발소리가 또렷해지는 구간이 있다. 잠깐 앉아 쉬었다가 다시 원도심 쪽으로 돌아오기도 좋았다. 대신 전시 공간이나 가게는 여는 시간이 제각각이어서, 특정 곳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당일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게 낫다.

솔직히 문화의거리라는 이름만 믿고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하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나는 그 심심함이 좋았다. 골목 하나를 다 걷고도 다음 장소로 서둘러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순천의 오래된 중심가를 여행 일정 사이의 빈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걷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광고

웃장에서는 한 끼보다 시장의 시간을 봤다

원도심을 걷다 배가 고파져 웃장으로 향했다. 순천에서 웃장은 국밥거리로도 알려져 있어 식사할 곳을 찾기 어렵지 않다. 시장 입구부터 바로 한 집을 고르기보다는 안쪽까지 한 바퀴 돌았다. 식재료를 고르는 사람, 가게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여행 중이라는 감각이 잠시 옅어졌다.

국밥 한 그릇은 든든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메뉴 이름보다 식사 뒤 시장을 빠져나오던 길이다. 바쁜 시간에는 통로가 생각보다 분주하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다면 식사 시간 한복판을 피해서 걷는 편이 맞다. 시장은 관광객을 위해 비워 둔 공간이 아니어서, 물건을 살 생각이 없다면 통로를 막지 않고 천천히 지나가면 된다.

웃장과 아랫장을 둘 다 넣으려다 이날은 욕심을 접었다. 시장 두 곳을 빠르게 훑는 것보다 한 곳에서 밥을 먹고 주변 골목까지 보는 쪽이 내 여행 방식에는 맞았다. 장날이나 가게 운영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으니, 시장이 목적이라면 순천시 관광 안내에서 그날 정보를 확인해 두는 게 좋다.

해가 기울 무렵에는 동천을 조금만 걸었다

마지막에는 동천 쪽으로 내려갔다. 순천시가 소개하는 동천길은 시내에서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지만, 나는 긴 코스를 채우지 않고 걷기 좋은 구간만 골랐다. 물가에서는 앞서 걸었던 골목과 시장의 소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산책하는 주민과 가끔 마주칠 뿐, 무언가를 꼭 봐야 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평평한 길이라 걷는 부담은 적었지만 그늘이 없는 구간도 있었다. 한여름 한낮보다는 해가 조금 낮아졌을 때가 편했고, 비가 온 뒤라면 물가 상태를 보고 걷는 게 낫겠다. 징검다리나 물 가까운 곳까지 굳이 내려가지 않아도 강변을 따라 잠깐 걷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날은 순천역 근처 골목에서 시작해 원도심과 시장을 지나 동천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도에는 여러 순천 여행지가 따로 찍혀 있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그 사이의 길도 여행이었다. 순천을 다시 찾으면 새로운 명소를 더하기보다, 그날 지나친 골목 하나를 느린 속도로 다시 걸어보고 싶다.

순천 여행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봤더니 - 요약
광고

댓글 0

평가를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모두 ID로 로그인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