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일본 여행을 앞둔 지인이 트레블월렛 카드 발급을 물었다. 해외 결제 수수료가 0%라니 일단 만들면 이득 아니냐는 얘기였다. 상품 이름은 ‘트래블월렛’이고, 실제로 따질 것은 발급비보다 여행에서 쓸 통화와 금액이다. 이 카드는 충전한 돈으로 결제하는 선불카드다. 신용카드처럼 쓴 뒤 청구되는 구조가 아니다.
발급 전에 확인할 3가지 조건
트래블월렛의 카드 상품설명서와 이용약관상 발급 대상은 만 17세 이상이다. 본인 명의 휴대전화와 국내 금융계좌가 필요하고, 앱에서 본인 확인과 계좌 등록을 거쳐 신청한다. 모바일 카드와 실물 카드 형태로 발급할 수 있다. 현지에서 실물 카드를 쓸 계획이라면 신청 화면에서 수령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연회비는 없다. 따라서 연회비를 회수하려고 억지로 소비할 필요도 없다. 다만 무료 발급과 무료 사용은 다른 말이다. 결제할 통화를 먼저 충전해야 하며, 충전 잔액이 부족하거나 해당 통화를 충전하지 않았다면 결제가 제한될 수 있다. 출국 전 앱에서 통화와 잔액을 확인하고, 실물 카드를 받았다면 서명해 두는 편이 낫다.
카드 상품설명서에는 기본 최대 충전한도가 잔액을 포함해 원화 200만 원 상당액으로 안내돼 있다. 200만 원 넘게 쓸 여행이라면 한 번에 전액을 넣는 방식으로 계획하면 안 된다. 결제 후 다시 충전하는 흐름을 생각해야 한다. 호텔 보증금처럼 예상 결제액이 일시적으로 묶이는 거래도 있어 잔액을 딱 맞춰 채우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환전 수수료 0%가 적용되는 통화
트래블월렛 이용약관에 따르면 달러·엔·유로를 충전할 때는 매매기준율과 같은 환율을 적용한다. 반면 태국 바트, 베트남 동, 대만 달러 등 다른 지원 통화에는 통화별로 매매기준율 대비 0.5~2.5%의 수수료가 붙는다. 모든 통화의 카드 결제 수수료는 0%지만, 충전 단계의 비용까지 0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해외 결제에 총 100만 원을 쓰고, 비교 대상 카드의 실제 해외 이용 비용이 2.5%라고 가정하자. 달러·엔·유로를 충전해 같은 기준 금액을 결제한다면 수수료 차이는 약 2만 5천 원이다. 환율 변동과 환불 비용은 뺀 단순 계산이다. 비교 대상 카드가 해외 결제에 2%를 돌려준다면 실질 비용은 0.5%, 즉 약 5천 원으로 줄어든다. 그때 트래블월렛의 차이는 2만 5천 원이 아니라 약 5천 원이다.
기타 통화에서 충전 수수료가 1%인 경우도 가정해 보자. 100만 원을 충전하면 비용은 약 1만 원이다. 비교 카드의 실질 해외 이용 비용이 0.5%라면 오히려 트래블월렛 쪽이 약 5천 원 비싸다. 실제 수수료율은 통화별로 다르므로 충전 직전 앱의 환율정보를 보고 계산해야 한다. ‘해외 결제 수수료 0%’라는 문구 하나로 모든 여행지를 묶으면 계산이 틀어진다.
현금 인출과 남은 잔액의 비용
현지에서 현금을 자주 찾는 사람은 카드 결제 비용만 보면 안 된다. 이용약관에는 해외 현금자동입출금기 인출 시 트래블월렛이 정한 수수료가 붙을 수 있고, 현지 기기 운영사도 별도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인출 화면에 표시되는 현지 수수료를 확인한 뒤 진행해야 한다. 소액을 여러 번 뽑는 일정이라면 건별 비용이 쌓인다.
남은 외화도 공짜로 원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설명서에는 환불 시 앱에 고시된 환불 환율을 적용하고 환불 수수료를 차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나온다. 예외적으로 별도 환불 수수료가 면제되는 경우는 있지만, 평소 계산에서는 환불 환율과 수수료를 확인하는 게 맞다. 여행 예산 100만 원을 전부 미리 충전했다가 20만 원 상당을 남기면, 절약한 해외 결제 수수료 일부가 되돌리는 과정에서 줄어들 수 있다. 필요한 금액을 나눠 충전하는 이유다.
현지 결제 단말기가 원화와 현지 통화 중 하나를 고르게 하면 현지 통화를 택하는 편이 비용을 읽기 쉽다. 원화 결제에는 가맹점이나 결제망의 환산 조건이 개입할 수 있어, 카드의 결제 수수료 0%만으로 최종 금액을 예측하기 어렵다.
내 소비 패턴에선 얼마가 남을까
연회비가 0원이니 연회비 기준 손익분기 소비액도 0원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금액을 써도 다른 카드보다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다. 비교식은 간단하다. ‘기존 카드의 해외 이용 비용에서 해외 적립액을 뺀 값’과 ‘트래블월렛의 충전·인출·환불 비용’을 같은 여행 금액으로 비교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카드로 80만 원을 쓰고, 기존 카드의 해외 이용 비용이 2%, 해외 적립이 1%라면 기존 카드의 순비용은 약 8천 원이다. 엔화를 충전해 전액 결제하고 별도 인출이나 환불이 없다면 트래블월렛 쪽 결제 수수료는 0원이다. 이 사례의 차이는 약 8천 원이다. 반대로 현금 인출 비용이나 남은 잔액의 환불 비용이 8천 원을 넘으면 우위가 사라진다.
기존 카드의 전월 실적도 함께 봐야 한다. 해외에서 쓸 금액을 옮긴 탓에 다른 카드의 실적 조건을 놓치고 월 혜택 5천 원을 잃는다면, 그 5천 원은 여행 비용에 더해야 한다. 해외 소비가 적고 기존 카드의 적립이 괜찮은 사람에게는 새 카드 관리가 별 이득이 아닐 수 있다. 반면 달러·엔·유로 결제가 많고 필요한 만큼 충전해 쓰는 사람이라면 구조가 단순하다. 나는 발급 버튼보다 먼저 여행 통화, 예상 카드 결제액, 현금 인출 횟수를 적는다. 그 세 숫자가 카드의 쓸모를 거의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