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비트코인 선물 차트를 보다가 가격은 3% 남짓 움직였는데 청산 알림이 쏟아지는 걸 봤습니다. 현물만 들고 있었다면 손실은 3% 안팎이었겠지만, 선물 계좌의 사정은 다릅니다. 비트코인 청산 이유를 보려면 가격 하락폭보다 먼저 포지션 규모와 남은 증거금을 확인해야 합니다.
1. 레버리지가 작은 가격 변동을 큰 손실로 만든다
증거금 500만 원으로 10배 롱을 잡으면 포지션은 5,000만 원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5% 내릴 때 포지션 손실은 약 250만 원, 처음 넣은 증거금의 절반입니다. 20배라면 같은 5% 하락으로 초기 증거금 규모의 손실이 납니다. 실제 강제 청산은 증거금이 정확히 0원이 되는 순간보다 앞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거래소가 포지션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금액, 즉 유지증거금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겨우 몇 퍼센트 빠졌는데 왜 청산됐지’라는 말은 계좌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같은 가격에 진입했더라도 레버리지, 추가 증거금, 포지션 크기에 따라 청산 가격이 달라집니다. 시장의 변동폭은 모두에게 같아도 버틸 수 있는 폭은 계좌마다 다릅니다.
2. 차트의 마지막 체결가와 청산 기준 가격은 다르다
거래소 화면에 보이는 최근 체결가만 보고 청산선을 판단하면 어긋날 수 있습니다. 바이비트는 선물 청산의 기준으로 표시가격을 사용한다고 설명합니다. 표시가격은 여러 현물 시장을 반영한 지수와 선물 가격의 괴리 등을 고려해 산출됩니다. 바이낸스도 선물의 미실현 손익과 청산 판단에 표시가격을 씁니다. 차트에 찍힌 한 번의 거래 가격과 표시가격이 항상 같지는 않은 셈입니다.
여기에 유지증거금률도 붙습니다. 바이낸스의 청산 가격 안내를 보면 포지션 규모별로 적용되는 유지증거금 구간이 다릅니다. 포지션을 크게 늘렸는데 진입 가격만 그대로 기억하면 청산선이 왜 달라졌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저는 주문을 추가할 때마다 평균 진입가보다 표시가격과 예상 청산가 사이의 거리를 다시 봅니다.
3. 펀딩비와 교차 증거금이 버틸 여력을 바꾼다
무기한 선물의 펀딩비도 작은 숫자라고 넘기기 어렵습니다. 가령 명목 포지션 5,000만 원에 펀딩비가 한 차례 0.01%라면 지급액은 5,000원입니다. 이 비율로 세 차례 지급하면 1만 5,000원입니다. 실제 펀딩비율과 지급 주기는 변하므로 예시 금액을 고정 비용처럼 보면 안 됩니다. 다만 계좌에 여유 자금이 부족하면 지급된 펀딩비가 포지션 증거금을 줄여 청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바이낸스 안내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교차 증거금에서는 다른 포지션의 손실도 같은 계좌 잔고를 갉아먹습니다. 비트코인 롱 하나만 보면 청산까지 거리가 남아 있어도, 함께 잡은 포지션이 급락하면 계좌 전체의 유지 여력이 줄어듭니다. 격리 증거금과 교차 증거금 중 무엇을 썼는지 확인해야 손실 경로가 보입니다.
4. 얇은 호가창에서는 청산이 다음 청산을 부른다
강제 청산 주문이 시장에 나오면 가격이 더 밀리고, 그 가격이 다음 롱 포지션의 청산선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호가창에 매수 주문이 충분하지 않은 시간대라면 같은 매도 물량도 가격을 더 크게 움직입니다. 처음 하락을 만든 재료와 이후의 급락을 키운 힘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23년 8월 급락 뒤 코인베이스 기관 리서치는 주요 비미국 거래소의 비트코인·이더리움 무기한 선물 미결제약정 명목가치가 급락 전 178억 달러에서 8월 24일 122억 달러 미만으로 줄었다고 집계했습니다. 이는 비트코인 단독 수치가 아닙니다. 그래도 가격 하락과 함께 쌓여 있던 선물 포지션이 크게 축소된 사례로 볼 만합니다. 다만 미결제약정 감소분 전부를 강제 청산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트레이더가 자발적으로 포지션을 닫아도 수치는 줄어듭니다.
5. 온체인 입금은 매도 압력을 가늠할 단서다
제가 온체인에서 먼저 보는 건 거래소로 들어오는 비트코인 물량입니다. 입금이 늘고 현물 거래량까지 커진다면 실제 매도 압력이 가격을 밀었는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현물 가격 하락이 표시가격에 반영되면 레버리지 롱의 청산선도 가까워집니다. 반대로 온체인 입금만 급증했다고 곧바로 ‘대량 매도 확정’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글래스노드는 거래소 지갑 주소를 식별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고, 거래소의 내부 자금 이동 때문에 입출금 수치가 일시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온체인 데이터는 중앙화 거래소 안에서 누구의 선물 포지션이 청산됐는지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거래소 입금량을 현물 거래량, 미결제약정, 펀딩비와 나란히 놓습니다. 입금만 튀고 현물 거래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해석을 보류하는 편입니다.
비트코인 청산은 대개 하나의 뉴스보다 여러 숫자가 겹쳐 나타납니다. 레버리지로 청산선이 가까워진 계좌에 증거금 감소와 얇은 호가창이 겹치면 작은 하락도 커집니다. 시장 분위기가 시끄러울수록 저는 방향 예측보다 표시가격과 청산선 사이에 얼마의 여유가 남았는지부터 확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