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로스터리 손님이 에어로프레스로 내린 커피가 날마다 다르다며 추출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같은 원두를 썼는데 어떤 날은 시고, 어떤 날은 떫었다고 하더군요. 기록을 보니 물의 양은 늘 비슷했지만 온도와 분쇄도가 달랐습니다. 에어로프레스는 손으로 누르는 힘보다, 물과 커피가 만나는 조건을 일정하게 맞추는 일이 먼저입니다.
처음에는 원두 15g과 물 220g으로 시작합니다
제가 집에서 기준점으로 쓰는 에어로프레스 레시피는 원두 15g, 물 220g입니다. 물 온도는 중간 정도로 볶은 원두라면 90℃, 분쇄도는 핸드드립보다 조금 가늘게 잡습니다. 에스프레소용처럼 곱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추출 시간은 물을 붓기 시작한 순간부터 약 2분 15초입니다.
이 숫자가 모든 원두의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한 번에 여러 조건을 바꾸면 맛이 달라진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처음 두세 잔은 원두와 물의 양, 시간을 그대로 두고 분쇄도만 조절하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저울이 있다면 원두와 물을 모두 재고, 휴대전화 타이머로 시간을 맞추면 충분합니다. 비싼 주전자를 먼저 살 필요는 없습니다.
종이 필터를 끼우고 천천히 누르는 순서
기본 조립 방식으로 추출합니다. 종이 필터를 캡에 넣고 물로 가볍게 적신 뒤, 캡을 본체에 끼워 컵 위에 올립니다. 필터를 적시면 종이가 캡에 붙어 조립하기 편합니다. 물은 끓인 뒤 온도계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기다린 시간만으로 90℃를 맞추기는 주전자와 실내 온도에 따라 어렵습니다.
- 원두 15g을 넣고 타이머를 켜면서 물 50g을 부어 가루를 고루 적십니다.
- 15초쯤 되었을 때 나머지 물을 부어 총 220g을 맞춥니다. 스푼으로 두세 번만 부드럽게 젓습니다.
- 플런저를 윗부분에 살짝 끼워 물이 빠지는 속도를 줄이고, 1분 45초까지 기다립니다.
- 컵과 본체를 안정적으로 잡고 25~30초에 걸쳐 천천히 누릅니다. 강한 저항이 느껴지면 억지로 힘을 주지 않습니다.
처음 물을 부을 때 일부가 필터를 통해 컵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플런저를 살짝 끼우면 더 천천히 빠지지만 완전히 밀폐하려고 세게 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붓는 동안 커피가 크게 부풀어 오르면 한 번에 물을 채우지 말고 거품이 가라앉을 틈을 주세요. 특히 볶은 지 얼마 안 된 원두에서 이런 일이 잦습니다.
시거나 쓰다면 한 가지 조건만 바꿉니다
한 모금 마셨을 때 향은 있는데 맛이 얇고 날카롭게 시다면, 우선 분쇄도를 한 단계 가늘게 해봅니다. 같은 시간 안에 물과 닿는 면적이 늘어 맛이 더 잘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혀가 마르는 듯 떫고 뒷맛이 거칠다면 한 단계 굵게 갑니다. 단순히 산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추출 실패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산지가 가진 과일 같은 산미와 덜 추출된 커피의 날 선 신맛은 입안에서 다르게 느껴집니다.
분쇄도를 바꿔도 맛이 답답하다면 그때 온도를 조절합니다. 밝게 볶은 원두는 92~94℃에서 단맛과 향이 더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고, 진하게 볶은 원두는 85~88℃에서 거친 쓴맛이 줄기도 합니다. 이 범위도 출발점입니다. 온도를 바꾼 날에는 시간과 원두 양을 그대로 두어야 변화가 읽힙니다. 누르는 시간이 길어질 만큼 저항이 크다면 분쇄도가 너무 고운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물을 조금 더 넣어 가볍게 마시고 싶다면 추출을 끝낸 커피에 뜨거운 물 20~40g을 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본체 안의 추출 조건을 건드리지 않고 농도만 바꿀 수 있습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물을 더하지 않고 먼저 마셔보세요. 에어로프레스의 맛은 추출 정도와 잔의 진하기를 나누어 생각할 때 조절하기 쉬워집니다.
원두와 물의 상태가 레시피를 흔들 때
같은 에어로프레스 레시피를 써도 원두를 언제 볶고 어떻게 보관했는지에 따라 향은 달라집니다. 구매일보다 로스팅 날짜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볶은 직후에는 가스가 많이 나와 물을 부었을 때 가루가 크게 부풀고 추출도 들쭉날쭉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봉투를 오래 열어 둔 원두는 분쇄도만 바꿔서는 사라진 향을 되찾기 어렵습니다. 원두는 필요한 만큼만 갈고, 남은 원두는 빛과 열을 피해 밀폐해 둡니다.
물도 의외로 큰 변수입니다. 수돗물의 냄새가 강하거나 물때가 잘 끼는 물이라면, 같은 원두가 탁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평소 마시기 편한 여과수를 써서 비교해 보세요. 필터를 바꿨다면 그날의 맛을 한 번 기록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종이 필터는 비교적 맑은 질감을, 금속 필터는 커피의 기름 성분이 더 남는 질감을 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원하는 입안의 느낌이 다릅니다.
로스터리에서 손님과 레시피를 맞출 때도 저는 먼저 한 잔을 같은 수치로 내려 봅니다. 그다음 ‘조금 더 달게’ 또는 ‘조금 더 가볍게’처럼 원하는 방향을 듣고 한 칸씩 움직입니다. 집에서도 원두 15g, 물 220g으로 시작해 맛이 바뀐 지점을 기억하면, 다음 잔은 훨씬 자신의 취향에 가까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