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강의에서 유엔 안보리 표결을 설명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열다섯 나라 중 열네 나라가 찬성했는데, 왜 미국 한 나라의 반대로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죠.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먼저 ‘상임이사국’이라는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미국의 상임이사국 지위는 언제 정해졌을까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줄여서 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 문제를 다루는 유엔 기구입니다. 현재 의석은 15개입니다.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가 상임이사국 5개 의석을 차지하고, 나머지 10개 의석은 유엔 총회가 선출합니다.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이며, 매년 5개국이 새로 선출됩니다.
미국은 나중에 투표로 상임이사국이 된 나라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유엔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다섯 나라의 상임 의석이 헌장에 담겼습니다. 당시 설계자들은 전후 국제 안보에 큰 역할을 할 나라들이 안보리의 결정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유엔 회원국 기록에 따르면 미국은 1945년 6월 26일 헌장에 서명했고, 같은 해 8월 8일 비준했습니다.
처음부터 안보리가 15개국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1945년에는 상임이사국 5개국과 비상임이사국 6개국, 모두 11개국이었습니다. 회원국이 늘면서 지역별 대표성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고, 헌장 개정에 따라 1965년 8월 31일 의석이 15개로 확대됐습니다. 상임 의석 5개는 그대로였습니다. 이 연혁을 보면 상임이사국 지위가 현재의 경제 규모나 인구를 주기적으로 비교해 배분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거부권은 어떤 표결에서 작동할까요?
안보리에서 각 이사국은 한 표씩 행사합니다. 유엔 헌장 제27조에 따라 절차 문제는 15개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안전에 관한 실질적인 사안은 9개국 이상의 찬성에 더해 상임이사국의 반대표가 없어야 합니다. 상임이사국 한 나라가 이런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면 필요한 찬성표가 이미 모였더라도 채택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거부권입니다.
기권은 반대와 다릅니다. 상임이사국이 기권해도 찬성표 9개가 모이면 안건이 채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표결 뉴스를 볼 때는 ‘미국이 찬성하지 않았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미국이 반대했는지, 기권했는지, 그리고 안건이 절차 문제인지 실질적인 문제인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거부권이 모든 국제 문제를 미국 혼자 결정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미국이 찬성하더라도 전체 찬성표가 9개에 못 미치면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거부권이 행사되면 그 안건에 대한 안보리의 결정이 막히는 것이지, 다른 나라의 입장이나 국제적 논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25년 가자지구 표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숫자로 보면 규칙이 더 분명해집니다. 2025년 9월 18일 안보리는 가자지구의 휴전, 인질 석방, 인도적 지원 제한 해제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표결했습니다. 유엔 회의 기록에는 14개국 찬성, 미국 1개국 반대, 기권 0개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찬성은 필요한 9표를 넘었지만 미국이 상임이사국으로서 반대표를 던져 초안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표결 결과와 각국이 내세운 이유는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결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미국의 반대표 때문에 초안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국 대표는 당시 회의에서 초안이 하마스를 충분히 규탄하지 않았고 인질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반대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른 이사국들은 휴전과 인도적 지원을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양쪽 주장을 이해하는 일과 표결의 법적 효과를 확인하는 일은 별개입니다.
같은 해 6월에도 가자지구 휴전 관련 초안이 14대 1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례는 미국이 언제나 반대한다는 일반화의 근거라기보다, 상임이사국의 반대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안보리의 다른 안건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이사국들이 합의해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합니다.
이 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거부권을 둘러싼 논거는 갈립니다.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주요 강대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을 안보리가 강행하면 실제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유엔 설립 당시에도 강대국의 참여를 제도 안에 묶어두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반면 축소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쪽은 상임이사국 한 나라가 14개국의 찬성을 막을 수 있어, 전쟁과 인도적 위기 앞에서 안보리가 제때 행동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엔 총회는 2022년 4월 26일 거부권 행사 뒤 해당 사안을 총회에서 토론하도록 하는 결의 76/262호를 채택했습니다. 원칙적으로 거부권 행사 후 10근무일 안에 총회 회의를 열도록 한 규칙입니다. 다만 총회 토론이 안보리에서 행사된 거부권을 취소하거나 부결된 초안을 채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임이사국 구성이나 거부권 자체를 고치려면 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유엔 헌장 제108조에 따르면 개정안은 총회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과, 모든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회원국 3분의 2의 비준이 있어야 발효됩니다. 미국도 그 요건에 포함됩니다. 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오래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런 절차가 있습니다.
안보리 뉴스를 읽을 때 저는 먼저 표결 날짜와 찬반 숫자를 확인합니다. 그다음 어느 나라가 어떤 표를 던졌고, 표결 대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봅니다. 그 순서를 지키면 ‘미국이 막았다’는 짧은 문장 뒤에 있는 제도의 작동 방식과 각국의 선택을 조금 더 차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