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은 왜 이렇게 생생할까요?

1회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은 왜 이렇게 생생할까요?

얼마 전 꿈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굴도 모르는 살인마에게 밤새 쫓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뒤에도 골목의 어둠과 발소리가 또렷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꿈은 장면이 워낙 무서워서 뜻까지 불길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꿈속의 살인마를 현실에 나타날 사람으로 곧장 옮겨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저는 누가 쫓아왔는지만큼 어디로 달렸고,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를 함께 듣습니다.

옛 꿈풀이에도 무서운 장면은 늘 흉몽이었을까요?

우리 민속의 꿈풀이는 꿈에 나온 장면을 그대로 현실에 대입하는 방식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꿈’ 항목은 상징을 읽는 풀이와, 궂은 장면을 현실의 좋은 일로 거꾸로 읽는 풀이가 함께 전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그 항목에 소개된 전통 해몽에는 칼에 맞아 죽는 꿈을 길하게 풀이한 예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까지 길몽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칼에 맞는 장면과 끝없이 도망치는 장면은 꿈꾸는 사람이 겪은 일이 다르니까요.

같은 꿈이 사람에 따라 달리 풀이된 옛이야기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원성왕 이야기에서는 한 꿈을 두고 처음에는 불길한 징조라는 풀이가, 나중에는 왕위에 오를 징조라는 풀이가 나옵니다. 이 기록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풀이가 오늘날에도 맞는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꿈의 한 장면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해서 무서운 일이 생긴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쫓아오는 사람보다 도망치는 장면에 눈이 가는 이유

‘살인마’는 아주 강한 말입니다. 그런데 꿈에서는 상대의 얼굴이나 이름이 흐릿한데도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만 확실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살인마라는 인물을 특정한 누군가의 암시로 보기보다는, 꿈속에서 위험을 크게 느끼게 만드는 모습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여러 가능한 읽기 중 하나입니다. 전날 본 영화의 장면이 남았을 수도 있고, 최근 겪은 긴장과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령 같은 복도를 달리는 꿈이라도 장면을 조금 더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지만 문을 열고 빠져나온 사람은 ‘벗어났다’는 느낌을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마다 잠겨 있어 발만 구르던 사람은 막막함을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겠지요. 이 두 경우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입니다. 실제 꿈의 뜻을 판정하는 공식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꿈을 들을 때 다음과 같은 차이를 적어 둡니다.

  • 쫓는 사람의 얼굴을 알았는지, 끝내 보지 못했는지
  • 혼자 달렸는지, 누군가와 함께 피했는지
  • 숨을 곳을 찾았는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지
  • 잡히기 전에 깼는지, 안전한 곳에 도착했는지

이 목록은 정해진 해몽표가 아닙니다. 같은 ‘쫓기는 꿈’이라는 말에 가려진 서로 다른 경험을 듣기 위한 메모에 가깝습니다. 특히 끝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쁜 일이 남아 있다는 식으로 풀 필요는 없습니다. 꿈은 가장 긴박한 순간에 잠이 깨면서 끝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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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이 쫓아올 때

쫓는 사람이 낯선 경우에는 그가 누구인지 찾으려 애쓰기보다 꿈 전체의 분위기를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골목이 좁았는지, 집처럼 익숙한 곳이었는지, 달리고 싶어도 몸이 느리게 움직였는지에 따라 꿈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익숙한 사람이 살인마로 나온 경우에도 그 사람의 실제 성격을 꿈이 폭로했다고 여기면 곤란합니다. 꿈속 인물은 현실에서 아는 얼굴을 빌려 전혀 다른 두려움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관계를 무조건 지워서도 안 됩니다. 최근 그 사람과 다투었거나 함께 있는 자리에서 긴장했다면, 그 경험을 떠올려 볼 수는 있습니다. 반면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그 얼굴이 단지 기억에 남아 꿈에 등장했을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합니다. 한 장면만으로 관계를 의심하거나 상대를 위험한 사람으로 판단할 까닭은 없습니다.

꿈에서 벗어난 뒤 남는 감각은 무엇일까요?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나면 무서웠다는 한마디로 기억을 덮기 쉽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 떠오르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혼자였다는 서운함, 누군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의 안도감, 끝내 멈춰 서지 못했던 답답함이 남기도 합니다. 그 감각은 꿈의 길흉보다 지금 자신에게 가까운 이야기를 건넬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도 꿈을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읽지 않았습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 다른 풀이가 전해진다는 점이 저는 오히려 마음에 남습니다. 무서운 꿈을 꾼 아침이라면 그 꿈이 앞날을 결정했다고 여기기보다, 밤사이 무엇이 그토록 다급하게 느껴졌는지 천천히 떠올려 보는 쪽이 더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은 왜 이렇게 생생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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