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고성군 거류면 거류산 자락에는 세계 고봉을 향한 엄홍길의 도전과 발자취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엄홍길전시관이 자리한다. 울긋불긋한 나무와 소나무 숲길, 완만한 산책로가 전시 공간과 어우러져 산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거류산의 가을 풍경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거류산 자락에서 만나는 가을
전시관 주변 주차장에서는 거류산 능선과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나무와 초록빛이 남은 나무가 나란히 서고, 가지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산자락을 길게 비춘다.
인근 이정표에는 유담둘레길과 거류산종주길이 표시돼 있다. 거류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3.2km다. 정상 등반이 부담스럽다면 전시관 주변의 완만한 길과 산자락을 천천히 걸으며 숲의 분위기를 살필 수 있다.
소나무 아래 자연석 계단을 지나면 솔잎과 작은 돌이 흩어진 붉은 흙길이 이어진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길과 달리 나무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난 구간도 있어 발밑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굽어진 길 주변에는 햇빛을 머금은 초록색과 노란색 잎이 겹쳐지고, 생울타리 사이에는 나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산책로에서는 산티아고 10,315km, 뉴욕 11,292km 등 세계 여러 도시의 방향과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도 볼 수 있다. 먼 도시를 향한 화살표와 가까운 거류산 숲길이 한 공간에 놓여 색다른 장면을 만든다.
고성이 기억하는 산악인
전시관 입구 가까이에는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 조형물은 내부 전시를 보기 전부터 엄홍길이 걸어온 등반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엄홍길은 1960년 9월 14일 경남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의정부 도봉산 자락으로 옮긴 뒤 산과 가까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고성군은 고향 출신 산악인의 도전과 기록을 알리기 위해 2007년 10월 거류면에 엄홍길전시관을 열었다.
전시관은 2024년 새롭게 단장됐다. 등산 배낭의 무게를 직접 느끼고 히말라야 등정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체험 요소를 보강했다. 한 사람의 성공만을 내세우기보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 다시 이어진 발걸음을 함께 조명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실패에서 완등까지 이어진 기록
실내 전시에서는 엄홍길의 출생 기록과 가족사진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한 사진에는 세계의 높은 봉우리를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산악인이 되기 전 삶과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다.
엄홍길은 1985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처음 도전했지만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실패 이후 도전을 이어갔고, 1988년 마침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이후 히말라야 고봉을 향한 등반은 계속됐다.
2000년에는 해발 8,000m급 주봉 14좌를 모두 올랐다. 여기에 얄룽캉과 로체샤르 등정이 더해졌다. 2007년 5월 31일 마지막 로체샤르 등정에 성공하면서 16좌 완등 기록을 세웠다. 전시관은 이 과정을 연도별 기록과 관련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유리 진열장에는 에베레스트와 K2, 안나푸르나 등 눈 덮인 히말라야 고봉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축소된 모형이지만 가파르게 이어지는 능선과 봉우리의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등반 기록과 함께 살펴보면 산악인이 마주했던 지형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상보다 먼저 보이는 두 발
전시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전시물은 조명을 받은 두 발의 형상이다. ‘엄홍길 대장의 발’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전시는 정상의 깃발이나 설산의 장관보다 그곳까지 직접 걸어간 사람의 몸과 시간을 앞에 내세운다.
눈과 얼음, 거친 바위를 거듭 밟아야 했던 발은 엄홍길의 등반이 단순한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 고봉의 이름과 높이를 나열한 자료 사이에서 두 발의 모습은 도전이 쌓인 과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어센더와 고도계, 랜턴, 물컵 등 실제 산악 활동과 관련된 장비도 살펴볼 수 있다. 크기가 작고 사용 흔적이 남은 장비들은 극한 환경에서 필요한 물건의 역할을 보여준다. 히말라야에서는 장비 하나의 무게와 기능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배낭으로 느끼는 등반의 무게
체험 공간에는 4kg, 7kg, 10kg 무게의 배낭이 마련돼 있다. 관람객은 서로 다른 배낭의 무게를 통해 산악인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평탄하지 않은 흙길에서는 작은 돌이나 드러난 나무뿌리도 걸음을 조심하게 만든다. 여기에 무거운 배낭이 더해지면 한 걸음을 옮기는 일의 의미도 달라진다. 배낭 체험은 숫자로만 표시된 무게를 몸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전시 요소다.
검은 벽에는 엄홍길의 산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산은 내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
이 문장은 산을 일방적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표현과 거리를 둔다. 전시관에 소개된 엄홍길의 말로서, 수많은 등반을 거친 산악인이 산을 대하는 마음을 압축해 전한다.
전시관 밖에서 이어지는 산책
전시관 출구에는 무인 커피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건물 밖에서는 ‘고성이 낳은 히말라야 영웅 엄홍길’이라고 새긴 기념석을 볼 수 있으며, 그 뒤로 거류산의 능선이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산책길은 돌이 깔린 채 완만하게 굽어진다. 큰 나무 아래에는 흔들의자가 놓여 있어 전시 관람과 주변 산책을 마친 뒤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가을에는 노란 잎과 햇살이 의자 주변을 감싸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엄홍길전시관은 높은 산을 직접 오르지 않더라도 산악인의 도전과 실패, 완등의 기록을 차례로 이해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거류산 자락의 숲길과 실내 전시가 자연스럽게 연결돼 산과 사람의 관계를 함께 돌아보게 한다.
관람 정보
| 시설명 | 엄홍길전시관 |
|---|---|
|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거류로 335 |
| 관람료 | 무료 |
| 주차 | 무료 |
| 관람 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 문의 | 고성 엄홍길전시관 055-670-266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