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국가유산과 김장 문화를 한자리에서 경험하는 ‘생생국가유산 온(溫)가족 김장 DAY’가 열렸다. 옹기박물관 해설부터 옹기 접시 제작, 옛 공장과 가마 견학, 장인의 제작 시연, 김장 체험까지 이어진 일정은 옹기의 역사와 쓰임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구성됐다.
‘생생국가유산’은 지역의 국가유산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국가유산청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울주군에서는 외고산 옹기마을을 무대로 ‘외고산 옹기장 시간의 맛을 선물하다’라는 이름의 행사를 2026년 6월부터 10월까지 운영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온(溫)가족 김장 DAY 옹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김장 품다’였다. 회차마다 4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했으며, 접수를 시작한 지 4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비가 내린 행사일에도 참가 가족들은 우산을 쓰고 옹기마을 곳곳을 걸으며 모든 일정을 이어갔다.
숨 쉬는 그릇 옹기를 배우다
참가자들이 처음 모인 장소는 옹기박물관이었다. 해설은 ‘옹기는 어떤 그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그 답은 ‘숨 쉬는 그릇’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옹기 흙에는 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작은 석영 알갱이가 들어 있다. 옹기를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우면 표면에 매우 미세한 숨구멍이 생긴다. 이 구멍을 통해 공기는 드나들지만 물은 밖으로 새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옹기에 담긴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효되는 데 도움을 준다.
옹기가 단순한 저장 용기를 넘어 발효 음식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 그릇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대목이었다. 뒤이어 진행된 김장 체험에서 옹기를 사용하는 이유도 이 설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피란의 역사에서 시작된 마을
외고산 옹기마을이 형성된 과정도 소개됐다.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에게는 간장과 된장을 담을 그릇조차 부족했다. 부산에서 가까운 곳에서 옹기를 만들면 필요한 그릇을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한 장인이 외고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날 옹기마을의 시작점이 마련됐다.
외고산은 옹기 생산과 운반에 필요한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인근 남창역을 이용하면 완성된 옹기를 다른 지역으로 실어 나르기 편했고, 비탈진 지형은 가마를 설치하는 데 알맞았다. 장인의 기술과 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맞물리면서 옹기 제작이 마을의 주요한 생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울산에서 세계옹기문화엑스포가 열린 뒤에는 ‘Onggi’라는 명칭이 세계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지역에 따라 항아리와 단지, 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생활 그릇이 ‘옹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옹기박물관에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옵기도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거대한 옹기의 크기와 형태를 살피며 우리 생활문화 속 저장 그릇이 지닌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흙줄을 쌓아 나눔 접시 완성
박물관 해설을 마친 참가자들은 옹기아카데미관으로 이동했다. 비가 제법 내리는 상황에서 진행요원들은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인도 방향으로 안내했다.
체험 테이블에는 동그란 접시 바닥판과 가래떡처럼 길게 뽑아 놓은 흙줄이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흙줄을 바닥판 가장자리에 둥글게 이어 붙인 뒤 손가락으로 이음새를 문질러 매끄럽게 다듬었다.
흙을 길게 만들어 한 줄씩 쌓아 올리는 방식은 옹기를 만드는 기본 원리다. 참가자들은 작은 접시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장인들이 큰 옹기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을 직접 익혔다. 흙을 누르는 힘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약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갈라진 부분과 연결 부위를 차분하게 다듬는 손길이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접시 표면에 도장을 찍어 각자의 나눔 접시를 완성했다. 체험 시간은 약 30분으로 마련돼 가족과 어린이 참가자들도 서두르지 않고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완성된 접시는 건조와 소성 과정을 거쳐 약 6주 뒤 받을 수 있다. 행사에서는 택배 배송과 직접 수령 가운데 한 가지 방식을 선택하도록 운영했다. 체험장에서 빚은 부드러운 흙이 가마의 열을 거쳐 단단한 생활 그릇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가동을 멈춘 금천토기 공장
다음 일정은 걸어서 이동한 금천토기 공장이었다. 현재 가동을 멈춘 이 공장은 평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지만,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개방됐다.
전통 옹기는 장인이 손으로 하나씩 빚어 만든다. 그러나 옹기 사용량이 많았던 시기에는 수작업만으로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다. 금천토기 공장에서는 틀에 흙을 넣어 항아리를 반쪽씩 찍어 낸 뒤 두 부분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옹기를 생산했다.
옹기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틀을 사용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제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많이 공급할 수 있었다. 현장에는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과 대량생산 방식이 공존했던 당시 옹기 산업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금천토기 공장은 옹기가 한때 가정마다 널리 사용된 생활필수품이었으며, 그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생산 체계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뜨거운 가마와 옹기 산업의 흔적
옹기가마실에서는 옹기를 굽는 연료와 가마의 변화가 소개됐다. 옹기 가마의 연료는 나무에서 가스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장작 가마에서는 불을 조절하는 일이 특히 중요했다. 가마솥으로 밥을 지을 때 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밥이 눌어붙는 것처럼, 장작 가마도 불길과 온도를 알맞게 관리하지 못하면 제작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익숙한 가마솥에 빗댄 설명은 참가자들이 가마 운영의 어려움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공장이 가동되던 당시 가마 주변은 열기로 인해 사계절 내내 60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했다. 가마 위층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활용해 옹기를 말리는 건조실로 사용됐다. 하나의 가마에서 나온 열을 굽기와 건조에 함께 활용한 구조였다.
옹기를 찾는 사람이 줄면서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현장에서는 전통 기술과 산업 기반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는 장인의 설명도 전해졌다. 멈춰 선 설비와 가마는 옹기 산업이 번성했던 시기와 수요 감소 이후의 변화를 함께 보여 줬다.
43년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옹기
공장 견학 뒤 참가자들은 마을안내센터 옹기역사관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43년째 옹기를 만들어 온 장인의 제작 시연이 진행됐다.
장인은 행사 시간에 맞춰 미리 절반 정도 쌓아 둔 옹기 위에 새로운 흙을 올리고 연결하는 과정을 보여 줬다. 옹기의 벽면이 한층씩 높아질 때마다 손과 도구로 표면을 고르게 다듬으며 형태를 잡았다.
시연에 사용된 흙은 예상보다 부드럽고 물렁했다. 물레를 너무 빠르게 돌리면 원심력 때문에 흙이 바깥으로 날아갈 수 있어 회전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는 일이 중요했다. 흙의 상태를 살피면서 손에 가하는 힘과 물레의 속도를 맞추는 과정에서 오랜 경험이 쌓인 장인의 숙련도가 드러났다.
시연을 지켜본 참가자들은 완성된 옹기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제작 과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면서 흙을 이어 붙이고,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작업이 반복됐다.
전통 가마로 향한 군고구마
옹기 제작 시연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에게 군고구마가 한 개씩 제공됐다. 참가자들은 고구마를 은박지로 꼼꼼하게 감싼 후 옹기가마 앞으로 가져가 준비된 그릇에 모아 두었다.
박물관에서 출발해 옹기아카데미관과 금천토기 공장, 옹기가마실, 옹기역사관을 잇는 이동은 외고산 옹기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선으로 진행됐다. 전시로 만난 옹기의 원리와 공장에 남은 생산 설비, 실제 장인의 제작 기술이 차례로 연결됐다.
절임배추에 양념을 채우다
마지막 일정인 김장 체험은 발효아카데미관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손을 씻고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착용한 뒤 김장 방법과 옹기에 담는 순서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배추는 미리 절인 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상태로 준비됐다. 김치 양념 역시 사용할 수 있도록 버무려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배춧잎을 한 장씩 펼치고 잎 사이마다 양념 속을 고르게 넣었다.
양념을 채운 배추는 반으로 접어 준비된 옹기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 과정에서는 옹기 위쪽을 완전히 채우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남겨 두는 것이 중요했다. 김치가 발효되면 국물이 차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옹기의 미세한 숨구멍이 발효를 돕는다는 박물관의 첫 설명은 실제 김치를 옹기에 담는 마지막 체험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옹기와 김장이 함께 다뤄지는 이유를 하나의 과정 속에서 확인했다.
김치를 모두 담은 옹기는 고운 천으로 감싸고 고무줄로 두 차례 묶어 마무리했다. 한 사람에게 옹기 한 개씩 제공돼 각자 담근 김치를 온전한 형태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천으로 단정하게 포장된 옹기들이 나란히 놓이며 김장 체험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수육과 군고구마로 마친 하루
참가자들은 체험 자리를 정리하고 만족도 조사에 참여한 뒤 시식 시간을 가졌다. 옹기에 넣지 않고 남겨 둔 김치 한 덩이는 따뜻한 수육과 함께 제공됐다. 갓 버무린 김치의 양념과 수육을 한자리에서 맛보며 김장 체험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은박지로 감싸 옹기가마에 넣었던 군고구마도 시식 자리에 돌아왔다. 고구마는 크기가 다소 작았지만 속까지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참가 가족들은 따뜻한 수육과 김치, 가마에서 구운 고구마를 나누며 일정을 마쳤다.
이날 프로그램은 ‘숨 쉬는 그릇’에 관한 박물관 해설로 시작해 직접 접시를 빚는 체험으로 이어졌다. 이어 가동을 멈춘 공장과 뜨거운 가마의 구조를 살펴보고, 43년 경력 장인의 손끝에서 옹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뒤 직접 담근 김치를 옹기에 채웠다.
각 체험은 서로 분리된 활동이 아니라 옹기의 탄생과 생산, 발효 그릇으로서의 쓰임을 순서대로 이해하도록 연결됐다. 약 6주 뒤 구워져 나오는 나눔 접시는 행사 당일 빚은 흙이 실제 생활 그릇으로 완성되는 마지막 결과물이다.
2027년에도 이어지는 국가유산 체험
‘외고산 옹기장 시간의 맛을 선물하다’ 프로그램은 2027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에도 선정됐다. 이에 따라 외고산 옹기마을의 국가유산 활용 프로그램은 5년 연속 이어지게 됐다.
국가유산청의 후원 아래 운영된 이번 행사는 박물관 관람에 머물지 않고 마을의 역사와 장인의 기술, 옹기 산업의 변화, 김장과 발효의 원리를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외고산 옹기마을이라는 지역 공간 안에서 옹기와 김장이 지닌 생활문화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 일정이었다.
외고산 옹기마을 장소 정보
| 외고산옹기마을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3길 36 |
| 옹기마을안내센터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길 23 |
| 발효아카데미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1길 18 |
| 옹기아카데미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2길 2-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