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상품을 기획할 때 혜택보다 먼저 보는 숫자가 있다. 고객이 매달 실제로 갚을 금액이다. 적립률이 높아도 카드값 일부를 다음 달로 넘기면 수수료가 혜택을 금방 따라잡는다. 당장 낼 돈이 줄어드는 편리함, 그게 ‘마력 리볼빙’에 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1. 적립률보다 먼저 약정결제비율을 본다
리볼빙의 정식 명칭은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이다. 카드사와 정한 비율만큼 결제하고 나머지 대상 금액을 다음 달로 넘긴다. 예를 들어 일시불 이용액 100만 원에 약정결제비율이 20%라면 이번 결제일에 원금 20만 원을 내고 80만 원을 이월한다. 80만 원이 사라진 게 아니다. 다음 달 카드값에 다시 들어온다.
여기서 약정결제비율과 최소결제비율을 구분해야 한다. 약정결제비율은 평소 결제하도록 설정한 비율이고, 최소결제비율은 연체를 피하려면 적어도 내야 하는 기준이다. 최소금액만 냈다고 부담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납부액이 최소 기준에도 못 미치면 부족분은 연체로 처리될 수 있다. BC카드의 리볼빙 안내도 이 둘을 따로 설명한다.
리볼빙은 보통 일시불 이용액을 대상으로 한다. 할부나 단기카드대출처럼 적용 대상에서 빠지는 거래가 있으므로, 계좌에 준비할 돈을 계산할 때 카드값 전부에 약정비율을 곱하면 틀릴 수 있다. 대상 밖 금액은 별도로 청구된다.
2. 80만 원을 넘기면 수수료가 얼마인가
개인에게 적용된 연 수수료율이 18%라고 가정하자. 80만 원을 30일 이월한 비용은 80만 원 × 18% × 30일 ÷ 365일로 약 1만 1,836원이다. 실제 금액은 적용 수수료율, 이월 일수, 카드사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18%는 계산을 위한 가정이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금리가 아니다.
같은 달 카드 혜택으로 1만 5,000원을 받았다면 숫자만 보면 3,164원이 남는다. 하지만 이월 원금 80만 원을 다음 달에도 갚지 못하면 수수료는 계속 붙는다. 같은 원금을 60일 들고 있다고 단순 계산하면 약 2만 3,671원이다. 한 달 혜택 1만 5,000원을 넘어선다.
제가 혜택표에서 ‘월 최대 1만 5,000원’을 볼 때 수수료율을 같이 적어두는 이유다. 할인은 한도가 있지만 이월 비용은 잔액과 기간에 따라 쌓인다. 월 한도를 다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손익은 더 빨리 뒤집힌다.
3. 매달 쓰면 이월 잔액은 얼마나 커지나
매달 리볼빙 대상 거래로 100만 원을 쓰고, 매번 원금의 20%만 결제한다고 해보자. 첫 달 이월 원금은 80만 원이다. 다음 달에는 기존 80만 원과 새 이용액 100만 원을 합친 180만 원의 20%인 36만 원을 원금으로 갚는다. 이월 원금은 144만 원이다. 그다음 달에는 244만 원의 20%인 48만 8,000원을 갚고 195만 2,000원이 남는다. 수수료는 이 계산과 별도로 청구된다고 가정했다.
지출과 결제비율이 그대로라면 이월 원금은 시간이 갈수록 400만 원에 가까워진다. 400만 원에 연 18%를 적용해 30일치를 계산하면 약 5만 9,178원이다. 매달 100만 원을 쓰는 카드에서 적립을 최대 1만 5,000원 받더라도 수수료 부담이 훨씬 크다. 롯데카드도 매달 카드값 일부를 계속 이월하면 갚아야 할 원금이 늘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이 계산은 지출이 매달 같고, 이월 원금을 추가로 갚지 않으며, 결제비율과 수수료율도 바뀌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실제 청구액을 예측하려면 카드 명세서의 이월 원금과 적용 수수료율을 확인해야 한다. 이월 원금을 새 카드 이용액과 섞어 ‘이번 달 사용액’으로만 보면 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놓치기 쉽다.
4. 연회비까지 넣으면 카드 혜택은 남는가
가상의 카드를 하나 놓고 보자. 연회비 2만 원, 적격 이용액의 1.5% 적립, 월 적립 한도 1만 5,000원이다. 매달 혜택 대상 금액 100만 원을 전액 결제한다면 연 적립액은 18만 원이고 연회비를 뺀 금액은 16만 원이다. 단순한 연회비 손익분기점은 연 적격 이용액 약 133만 3,334원이다. 월평균 약 11만 1,112원이지만, 전월실적 조건이 있다면 그 금액도 채워야 한다.
실적을 채운다고 모든 결제가 적립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카드별로 세금, 상품권, 무이자할부 같은 거래의 실적 인정 여부와 혜택 제외 여부가 다르다. 월 한도 1만 5,000원도 적격 이용액 100만 원을 넘긴 뒤에는 적립액이 더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소비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빼고 다시 계산해야 연회비 대비 이득이 보인다.
그 카드로 앞의 80만 원을 30일만 이월하면 가정상 수수료가 약 1만 1,836원이다. 한 달 적립액 1만 5,000원의 약 79%를 쓰는 셈이다. 이월이 반복된다면 혜택 좋은 카드를 찾는 일보다 잔액을 줄이는 일이 먼저다. 이미 이용 중이라면 약정결제비율을 높이거나 여유 자금으로 이월 원금을 미리 갚을 수 있다. BC카드는 리볼빙 이용 중 일시 상환이 가능하고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고 안내한다. 저는 카드가 이득인지 판단할 때 할인액 옆에 연회비와 이월 수수료를 같이 적는다. 세 숫자가 한 줄에 있으면 매력적인 혜택표도 훨씬 차분하게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