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에서 학생이 ‘해가 보였다’와 ‘동생이 사진을 보였다’를 나란히 적어 놓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보였다’인데 왜 하나는 피동이고 다른 하나는 사동이냐는 것이었지요. 접사 이름부터 외우면 이런 문장 앞에서 멈칫하기 쉽습니다. 저는 먼저 누가 보고, 누가 보여 주는지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고 합니다.
피동과 사동은 주인공의 자리가 다릅니다
‘아이가 문을 닫았다’에서는 아이가 직접 움직입니다. ‘문이 닫혔다’로 바꾸면 문이 앞자리에 나옵니다. 문은 스스로 닫은 것이 아니라 닫히는 일을 겪습니다. 이렇게 어떤 대상이 다른 힘에 의해 동작을 겪는 표현이 피동입니다. ‘닫다’에 붙은 ‘-히-’가 그 뜻을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사동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사람이 한 명 더 드러납니다. ‘아이가 밥을 먹었다’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로 바꾸어 보지요. 먹는 사람은 아이지만, 먹도록 한 사람은 엄마입니다. ‘먹다’에 붙은 ‘-이-’가 사동의 뜻을 보탭니다. ‘피동은 당하고 사동은 시킨다’고 짧게 외울 수도 있지만, ‘시키다’만 떠올리면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는 장면은 놓치기 쉽습니다. 사동에는 남이 그 일을 하게 하거나 어떤 상태가 되게 하는 뜻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문장에서 먼저 찾을 것은 접사의 글자보다 역할입니다. 누가 실제로 움직였는가. 누가 그 움직임을 겪었는가. 누가 그 일이 일어나게 했는가. 이 세 자리를 구별하면 ‘문이 닫혔다’와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의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이히리기’를 보고 곧바로 답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설명하는 피동 접사에는 ‘-이-, -히-, -리-, -기-’가 있습니다. ‘쌓다→쌓이다’, ‘닫다→닫히다’, ‘열다→열리다’, ‘안다→안기다’처럼 말이지요. 사동 접사에는 이 네 가지에 ‘-우-, -구-, -추-’가 더해집니다. ‘먹다→먹이다’, ‘앉다→앉히다’, ‘울다→울리다’, ‘웃다→웃기다’, ‘자다→재우다’, ‘달다→달구다’, ‘낮다→낮추다’가 그 예입니다.
목록을 보면 앞의 네 모양이 겹칩니다. 그래서 ‘-히-’가 보이면 피동이라는 식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문이 닫혔다’의 ‘-히-’는 피동을 나타내지만, ‘엄마가 아이를 의자에 앉혔다’의 ‘-히-’는 사동을 나타냅니다. 접사의 모양이 같아도 앞말과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의 뜻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접사 목록은 가능한 모양을 알려 주는 자료이고, 실제 뜻은 문장 안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접사가 붙는 방식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규칙은 아닙니다. ‘닫다’를 피동으로 만든다고 ‘닫기다’라고 쓰지 않지요. 우리말에서 굳어져 쓰이는 말은 ‘닫히다’입니다. 각각의 말을 접사 하나로 기계처럼 바꾸기보다, 어떤 낱말이 실제로 쓰이고 어떤 뜻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함께 익혀야 합니다.
‘보이다’는 문장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처음 학생이 가져온 두 문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보였다’에서는 해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다’의 피동사인 ‘보이다’가 쓰인 경우입니다. 반면 ‘동생이 내게 새 사진을 보였다’에서는 동생이 내가 사진을 보게 합니다. 여기서는 ‘보다’의 사동사인 ‘보이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피동사 ‘보이다’와 사동사 ‘보이다’를 구별해 싣고 있습니다.
두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조사도 힌트가 됩니다. ‘해가 보였다’에서는 보이는 대상인 해가 ‘이/가’와 함께 나오고, ‘사진을 보였다’에서는 보여 주는 사람이 앞에, 보여 주는 대상인 사진이 ‘을/를’과 함께 나옵니다. 다만 조사 한 글자만으로 모든 사례를 판정하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지까지 살펴야 뜻이 잡힙니다.
‘보이다’가 특별히 외워야 할 예외라기보다, 같은 형태가 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낱말입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안겼다’의 ‘안기다’는 피동이고, ‘엄마가 아이에게 인형을 안겼다’의 ‘안기다’는 사동입니다. 앞뒤 말을 지운 채 ‘안기다’만 놓으면 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접사가 겹쳐 보일 때는 뜻이 겹치는지 살핍니다
글을 고칠 때 자주 만나는 말이 ‘보여지다’입니다. ‘멀리 산이 보여진다’처럼 산이 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라면 ‘산이 보인다’가 간결합니다. 이 문맥에서는 피동사 ‘보이다’에 다시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가 붙어 뜻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문이 닫혀졌다’도 ‘문이 닫혔다’로 쓰면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보여지다’라는 모양을 보는 순간 무조건 지워서는 안 됩니다. ‘보이다’가 누군가에게 보게 한다는 사동의 뜻으로 쓰였다면, 뒤에 붙은 ‘-어지다’가 그 사동 표현을 피동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역시 이런 경우는 문맥에 따라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표면에 나타난 글자 수보다 각 부분이 맡은 뜻을 살피는 편이 정확합니다.
피동과 사동을 배우는 일은 접사 일곱 개를 순서대로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이 닫혔다’에서는 문이 일을 겪고, ‘엄마가 아이를 앉혔다’에서는 엄마가 아이의 움직임을 일으킵니다.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문장 속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알면, 비슷해 보이던 표기도 조금씩 다르게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