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내려앉은 가을정원

한옥에 내려앉은 가을정원

어련당에 펼쳐진 가을 정원

울산 중구 병영의 골목길을 따라가면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정갈한 마당이 어우러진 전통한옥 어련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햇살이 기와 위에 내려앉고 마당의 금목서와 배롱나무,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한옥 특유의 차분한 풍경을 만든다. 처마 아래에는 부드러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마루와 돌계단을 따라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026년 10월에는 어련당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았다. 예비사회적기업 ㈜테라럭스가 정원문화 기획전 한옥, 꽃과 계절을 입다를 마련하면서 마당과 돌계단은 물론 한옥의 방과 마루에도 꽃 작품이 놓였다. 오래된 한옥의 건축미에 꽃과 식물의 색채를 더한 전시였다.

이번 기획전은 한옥을 화려한 장식으로 덮기보다 기존 공간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계절의 색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반듯하게 이어진 기와지붕과 자연스러운 나뭇결은 꽃의 색을 돋보이게 했고, 꽃과 식물은 고즈넉한 공간에 생기를 더했다.

걸음마다 달라지는 꽃과 한옥의 조화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한옥과 꽃의 조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꽃 작품은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마당과 마루, 돌계단과 실내 공간에 고르게 배치됐다. 관람 동선을 따라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서로 다른 구도와 색채가 펼쳐졌다.

마당에서 바라본 꽃은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을 배경으로 또렷한 색감을 드러냈다. 처마 아래에서 바라보면 꽃과 마당이 하나의 풍경처럼 연결됐다. 햇살이 닿는 곳에서는 꽃의 색이 밝게 살아났고, 그늘진 공간에서는 차분한 분위기가 강조됐다. 같은 작품도 바라보는 위치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인상을 전했다.

마루와 돌계단에 놓인 작품 역시 한옥의 구조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와 돌, 꽃과 잎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전통건축과 정원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을 만들었다. 전시장은 꽃만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한옥의 마당과 처마, 마루와 방을 차례로 살펴보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했다.

한옥이 자연을 생활 가까이에 두었던 공간이라면, 이번 전시는 그 특징을 꽃과 식물로 다시 보여준 자리였다. 정원은 대규모 공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과 마당, 골목과 생활공간 안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한옥의 구조와 작품 배치를 통해 드러냈다.

광고

배움에서 작품으로 이어진 정원문화

이번 전시의 작품은 정원과 원예교육에 참여한 청년과 시니어, 경력단절여성 등이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꽃 공부는 취미로 시작한 배움이었고, 또 다른 참여자에게는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교육을 통해 익힌 기술이 작품으로 완성되고, 그 결과물이 한옥이라는 전통문화 공간에서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배우는 사람이 작품을 만드는 주체가 되고, 완성된 작품이 다시 시민에게 정원문화의 즐거움을 전하는 구조다. 꽃을 가꾸고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취미에 머물지 않고 사회참여와 새로운 일자리의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행사의 주요 의미로 제시됐다.

행사를 기획한 ㈜테라럭스는 울산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정원 시공과 유지관리, 원예교육과 정원문화 기획 등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원사와 플로리스트가 함께 시작했으며 정원 시공과 원예교육을 중심으로 정원복지와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원복지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시민이 자연을 생활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출발점을 둔다. 이번 전시는 교육 참여자가 기술을 익히고 실제 작품을 완성한 뒤 시민에게 선보이는 과정까지 담았다. 참여자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공개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관람객에게는 꽃과 식물을 배우고 가꾸는 정원문화를 접할 기회를 마련했다.

정원문화가 배움에서 창작으로, 창작에서 시민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어련당 곳곳에서 구체적인 작품으로 나타났다. 울산 중구청과 한국정원교육협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정원문화가 일부 전문가에게만 한정된 분야가 아니라 시민도 배우고 참여할 수 있는 생활문화임을 보여줬다.

아름다운 말이 흐르는 전통한옥

전시 장소인 어련당은 울산 중구 산전길 61에 자리한 한옥 숙박체험 시설이다. 전통한옥의 공간 구성과 건축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됐으며, 중심 공간인 어련재와 마루방 형태의 어련헌을 갖추고 있다.

어련당이라는 이름은 동천의 옛 이름인 어련천에서 유래했다. 이와 함께 아름다운 말이 흐르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한옥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이 이름에도 반영됐다.

객실 명칭은 조선시대 행정조직인 육방에서 착안했다.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각각의 이름에 좋은 뜻을 담은 한자를 더해 객실별 개성을 부여했다. 과거 행정조직의 명칭이 오늘날 한옥 숙박공간의 이름으로 이어진 구성이다.

마당에서는 금목서와 배롱나무, 소나무가 함께 자란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꽃의 색과 향기가 공간을 채우고, 잎이 물드는 계절에는 나무의 변화가 마당의 분위기를 바꾼다. 나무 기둥과 기와지붕, 마루와 마당이 서로 이어져 전통건축이 자연을 가까이 두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기획전이 어련당과 조화를 이룬 배경도 이 같은 공간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기존의 나무와 마당을 바탕으로 꽃 작품이 더해지면서 전통한옥과 현대 정원문화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광고

일상을 가꾸는 정원의 역할

테라럭스는 정원을 꽃과 나무를 심어 꾸미는 장소로만 다루지 않는다.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가꾸는 방법을 교육하며, 그 과정에 여러 세대와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정원 조성과 유지관리, 원예교육, 문화기획을 연결해 식물이 시민의 일상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육 참여자가 완성한 작품이 공개 전시로 이어졌다는 점은 이번 행사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교육은 기술을 익히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창작과 전시, 시민 관람으로 확장됐다. 시민은 완성된 작품을 통해 정원문화를 접하고, 참여자는 자신이 배운 내용을 실제 결과물로 선보였다.

정원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풍경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접 배우고 심고 가꾸며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생활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은 꽃과 식물이 교육과 창작, 사회참여를 잇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울산은 2028울산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민 참여형 정원문화 활동은 정원에 대한 관심을 생활 속 실천으로 연결하는 사례가 된다. 박람회와 함께 정원문화가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시민이 직접 식물을 가꾸고 정원을 만들어 보는 기반도 함께 넓어져야 한다는 취지가 전시에 담겼다.

어련당 곁에 남은 산전샘

어련당 인근에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전샘이 있다. 울산 중구 동동에 자리한 산전샘은 오랜 세월 병영 주민들의 생활과 함께해 온 샘으로, 물맛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돗물이 보편화되기 전 마을의 샘은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생활 기반이었다. 주민들이 물을 길으러 오가며 안부를 묻고 마을 소식을 나누던 공동체 공간이기도 했다. 산전샘은 이러한 옛 마을의 생활문화와 병영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어련당이 아름다운 말이 흐르는 집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면, 산전샘은 병영 주민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모였던 생활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시설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의 삶과 함께한 시간이 축적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600년 역사를 품은 병영성

어련당 주변에는 울산 경상좌도병영성도 자리한다. 병영성은 1417년 조선 태종 때 축성됐으며, 경상좌도 지역의 군사 방어를 담당했던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현재 국가유산 사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울산 병영이라는 지명이 지닌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성곽과 주변 마을의 풍경은 과거 군사도시였던 병영의 흔적을 전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 남은 성곽을 따라가면 전통한옥과 오래된 샘, 조선시대 군사시설이 가까운 지역 안에서 서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련당에서는 전통한옥의 구조와 정원문화를 살펴볼 수 있고, 산전샘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사를 만날 수 있다. 병영성은 그보다 긴 시간대의 군사·지역사를 보여준다. 한옥과 정원, 100여 년 된 샘과 1417년에 축성된 성곽이 한 지역의 문화 산책을 구성한다.

장소위치주요 특징
어련당울산광역시 중구 산전길 61전통한옥 숙박체험 시설과 정원문화 전시 공간
산전샘울산광역시 중구 동동100여 년 동안 병영 주민의 생활과 함께한 샘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울산광역시 중구 동동1417년에 축성된 국가유산 사적

시민과 함께 넓어지는 울산 정원문화

어련당에서 열린 한옥, 꽃과 계절을 입다는 꽃과 전통한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공간 전체로 보여준 기획전이었다. 동시에 정원교육에 참여한 시민이 작품 제작의 주체가 되고, 예비사회적기업이 전시를 기획하며, 지역의 전통문화 공간이 시민을 위한 정원문화 무대로 활용된 행사였다.

마당과 골목, 오래된 한옥과 같은 생활공간에도 정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람들이 꽃을 배우고 작품을 완성하며 함께 감상할 때 정원은 단순한 조경을 넘어 지역의 문화가 된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가능성을 시민 참여 작품과 한옥의 공간미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28울산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울산에서 시민이 일상적으로 꽃과 식물을 가꾸는 문화는 정원도시의 기반과 맞닿아 있다. 큰 규모의 정원과 국제행사뿐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활 가까이에서 가꾸는 작은 식물도 정원문화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행사 전반에 담겼다.

가을의 어련당에는 꽃과 계절이 함께 놓였다. 현장에서는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사이로 꽃 작품이 이어졌고, 햇살과 그늘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전통한옥의 아름다움과 교육 참여자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보며 울산 정원문화가 생활 속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마주했다.

한옥에 내려앉은 가을정원
한옥에 내려앉은 가을정원

댓글 0

평가를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모두 ID로 로그인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