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영화를 찾아보다 보면 1930년대 작품은 컬러인데 1960년대 작품은 흑백인 경우가 있습니다. 연도만 보고 화면 색을 짐작했다가 의외라고 느낀 적이 저도 있습니다. 그래서 ‘흑백영화 시기’를 딱 몇 년부터 몇 년까지로 외우면 오히려 헷갈립니다. 컬러 기술이 등장한 때와 컬러영화가 흔해진 때 사이에는 긴 간격이 있었거든요.
흑백영화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영화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흑백 촬영은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었습니다. 초기 필름은 빛의 밝고 어두운 차이를 기록했고, 배우의 표정이나 배경도 명암으로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객이 본 화면까지 언제나 검고 흰색뿐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다릅니다.
영국영화협회가 소개하는 초기 영화 자료를 보면, 흑백 필름에 염료를 입혀 장면 전체를 파랗거나 붉게 보이게 하는 방식이 널리 쓰였습니다. 화면 일부에 손으로 색을 더한 작품도 있었고요. 지금 남아 있는 흑백 복사본만 보고 원래 상영 모습까지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초기 영화는 모두 흑백이었다’는 말은 촬영 방식에는 대체로 맞아도 관객의 경험까지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또 하나 구분할 점은 소리입니다. 무성영화와 흑백영화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대사가 녹음된 유성영화가 자리 잡은 뒤에도 흑백 촬영은 계속됐습니다. 옛 영화를 고를 때 ‘소리가 없겠지’ 하고 넘겼다면, 제작 연도와 함께 유성영화인지도 따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컬러영화가 나왔는데 흑백은 왜 계속됐을까
컬러는 어느 날 갑자기 발명돼 흑백을 밀어낸 기술이 아닙니다. 초기부터 여러 실험이 있었고, 1920년대에는 일부 장면이나 작품 전체에 색을 담는 방식도 쓰였습니다. 세 가지 색을 본격적으로 구현한 테크니컬러 장편영화 <베키 샤프>가 나온 해는 1935년입니다. 그런데 이 날짜를 흑백영화의 마지막 해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당시 컬러 촬영에는 비싼 장비와 많은 조명, 별도의 작업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제작비를 더 쓸 수 있는 대작이나 뮤지컬, 서부극부터 컬러가 눈에 띄기 시작한 배경입니다. 영국영화협회에 따르면 <베키 샤프> 이후에도 컬러영화가 수적으로 흑백영화를 앞서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해 극장에 걸린 두 영화가 서로 다른 색의 화면을 보여주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셈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1960년 개봉한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입니다.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 영화는 흑백입니다. 1930년대에 컬러 장편이 나왔는데도 25년 뒤 수상작이 흑백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전환이 단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들어 컬러 촬영 방식이 달라지고 비용 부담이 줄었지만, 흑백은 한동안 익숙하고 실용적인 선택지로 남았습니다.
나라와 장르에 따라 전환 속도도 달랐다
‘언제까지 흑백이었나’라는 질문에는 어느 나라의 영화를 말하는지도 들어가야 합니다. 제작 환경과 관객 취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영화협회가 소개한 일본 영화 자료에서는 1960년 일본 국내 제작 영화 547편 가운데 컬러가 239편, 약 44%였습니다. 그 시점에도 나머지 작품 상당수는 흑백이었다는 뜻입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장르에 따라 컬러의 쓰임이 달랐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풍경을 보여주는 뮤지컬이나 서부극은 컬러의 효과가 컸습니다. 반면 강한 그림자와 대비가 분위기를 만드는 범죄영화, 인물의 표정에 집중하는 드라마에서는 흑백이 충분히 매력적인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시대 작품인데 색이 다르다면 기술 수준만큼 제작비와 표현 의도도 함께 떠올려 볼 만합니다.
그래서 흑백영화 시기를 간단히 말할 때는 ‘초기 영화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널리 쓰였고, 1960년대에도 계속 제작됐다’ 정도가 무난합니다. 다만 이것은 세계 모든 영화에 적용되는 종료 연도가 아닙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컬러 전환이 더 느렸고, 이후에도 감독은 흑백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흑백영화를 볼 때 눈여겨볼 점
요즘 흑백영화는 대개 기술의 한계보다 화면을 만드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쉰들러 리스트>(1993), <아티스트>(2011), <로마>(2018)처럼 컬러가 일반적인 시대에 나온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세 영화의 내용과 연출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흑백 화면이 관객에게 어떤 감각을 남기는지 비교하며 보기 좋습니다.
관람 전에는 세 가지만 가볍게 확인해도 충분합니다. 제작 연도, 제작 국가, 그리고 처음부터 흑백으로 만든 작품인지입니다. 오래된 작품이라면 복원본에 색조가 되살아난 경우도 있으니 상영본 설명을 함께 보면 좋습니다. 포스터가 흑백이라고 영화 전체가 흑백인 것은 아니고, 일부 장면에서만 색을 바꾸는 작품도 있습니다.
저는 흑백영화를 볼 때 초반 몇 분 동안 인물의 얼굴과 배경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먼저 보게 됩니다. 색이 빠진 자리에서 조명, 그림자, 옷감의 질감이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흑백영화 시기를 알고 보면 오래된 화면의 제작 조건도 보이고, 지금 감독이 그 화면을 다시 고른 이유도 조금 더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