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동행이 욕실 선반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작은 비누는 가방에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슬리퍼와 로션은 어떠냐는 거였다. 숙소를 100곳 넘게 다녀도 이런 순간은 가끔 헷갈린다. 사진 속에 ‘어메니티 제공’이라고 적혀 있어도, 실제 객실에서는 무료로 쓰는 물건과 가져갈 수 있는 물건, 돈을 내고 사야 하는 물건이 한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객실에 있다고 전부 내 것은 아니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건 크기보다 쓰임새다. 낱개 포장된 비누, 화장솜, 면봉처럼 투숙객 한 명이 쓰도록 준비한 소모품은 대체로 가져가도 무리가 없다. 반면 수건, 목욕가운, 헤어드라이어, 옷걸이, 다회용 컵은 머무는 동안 쓰는 객실 비품이다. 무료로 이용한다는 말과 소유해도 된다는 말은 다르다.
특히 목욕가운은 촉감이 좋아서 탐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객실에 걸려 있다는 이유로 여행 가방에 넣으면 안 된다. 일부 호텔은 별도 구매를 안내하고, 아예 판매하지 않는 곳도 있다. 수건 역시 로고가 예쁘다고 기념품이 되는 건 아니다. 퇴실 뒤 비품 누락을 확인하거나 비용을 청구하는지는 숙소마다 다르지만, 그걸 시험해 볼 이유는 없다.
작은 병과 대용량 디스펜서는 다르게 봐야 한다
예전에는 욕실에 작은 샴푸와 바디워시 병이 줄지어 있는 호텔이 많았다. 요즘은 벽에 고정된 대용량 디스펜서나 리필 용기가 더 눈에 띈다. 낱개로 제공한 제품과 객실에서 계속 사용하는 용기는 성격이 다르다. 디스펜서가 고정돼 있지 않더라도 큰 병이라면 객실 비품으로 보고 그대로 두는 게 맞다.
작은 병도 무조건 무료라고 단정하진 않는다. 욕실 소모품인지, 유료 상품인지 객실 안내문을 먼저 읽는다. 무료 제공이라고 분명한 제품이라도 투숙 인원에게 놓인 수량만 챙기는 편이다. 매일 새로 채워 달라고 요청해 모아 오는 건 호텔의 제공 취지와 거리가 멀다. 솔직히 집에 와서 안 쓰고 쌓아 둔 작은 병이 더 많았다.
국내 호텔에서는 일회용 칫솔과 치약이 없거나 유료인 경우도 흔하다. 현행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은 객실 50실 이상 숙박업소에서 일회용 면도기, 칫솔·치약, 샴푸·린스의 무상 제공을 금지한다. 롯데호텔 제주도 칫솔과 치약 등을 유료 구매 품목으로 안내한다. 예약 화면에 ‘욕실 어메니티’라고 적혀 있어도 칫솔까지 포함됐다고 생각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슬리퍼와 미니바는 표시를 한 번 더 본다
슬리퍼는 재질 때문에 판단이 갈린다. 얇은 일회용 슬리퍼는 투숙객용 소모품으로 제공하는 곳이 많지만, 두툼한 다회용 슬리퍼나 실내용 신발은 객실에서만 쓰도록 둔 곳도 있다. 포장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져가기보다 객실 안내를 확인하는 게 깔끔하다. 아이용 슬리퍼나 추가로 요청한 물품은 제공 조건이 또 다를 수 있다.
냉장고와 커피 코너도 비슷하다. 생수, 티백, 캡슐커피가 무료인지 숙소마다 다르고, 같은 호텔에서도 객실 상품에 따라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냉장고 안 물병 옆에 가격표가 없는 것만 보고 무료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미니바 안내문이나 객실 정보에 ‘무료 생수’처럼 명시돼 있는지 본다. 웰컴 과자도 선물인지 판매 상품인지 표시가 애매하면 확인한다.
애매할 때는 물건 이름을 콕 집어 묻는다
프런트에 ‘어메니티 가져가도 되나요?’라고 넓게 물으면 서로 다른 물건을 떠올릴 수 있다. 나는 ‘객실에 놓인 이 슬리퍼를 가져가도 되나요?’처럼 물건을 특정한다. 체크아웃 직전에 묻기 부담스럽다면 객실 전화로 확인하면 된다. 대여 물품인지, 무료 제공품인지, 구매 가능한 물품인지 답이 바로 갈린다.
예약 전에는 칫솔·치약 제공 여부와 비용을 확인하고, 집에서 쓰는 세면도구를 챙긴다. 숙소 사진에 작은 병이 보여도 현재 제공 방식은 달라졌을 수 있다. 사진과 실제가 다른 일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사진보다 최근 객실 안내를 믿게 됐다.
내 기준은 간단하다. 한 사람이 쓰도록 무료로 건넨 소모품은 필요한 만큼만, 다음 손님도 써야 하는 물건은 객실에 두고 나온다. 그 경계가 흐릴 때 한 번 물어보면 여행 끝에 찜찜한 기분까지 챙겨 올 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