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학급 안내문에 적힌 ‘학생·학부모 설명회’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쉼표를 써도 뜻이 통하는데, 왜 굳이 가운데에 점을 찍느냐고요.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가운뎃점 기호는 말을 잠깐 끊는 표시라기보다, 앞뒤의 말을 한 묶음으로 읽어 달라는 표시입니다. 이 느낌을 알고 나면 어디에 찍어야 할지 훨씬 선명해집니다.
점 하나로 무엇을 묶는 걸까요?
‘사과, 배, 귤을 샀다’는 물건을 하나씩 늘어놓은 문장입니다. 반면 ‘학생·학부모 설명회’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를 설명회의 대상으로 함께 묶어 보여 줍니다. 국립국어원의 문장 부호 규정도 가운뎃점을 쓰는 경우로 어구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묶어 열거하는 일을 듭니다. 단순히 항목이 여럿이라는 이유만으로 점을 찍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항목들이 글 안에서 어떤 관계인지를 드러내는 데 뜻이 있습니다.
가령 ‘교실에는 책상, 의자, 사물함이 있다’는 물건을 차례로 나열하므로 쉼표가 자연스럽습니다. ‘책상·의자는 교실 앞쪽에, 사물함은 뒤쪽에 놓였다’고 쓰면 책상과 의자를 같은 위치에 놓인 한 무리로 읽게 됩니다. 같은 두 물건이어도 문장에서 맡은 역할이 달라지면 부호 선택도 달라지는 셈이지요. 가운뎃점은 앞말과 뒷말에 붙여 ‘책상·의자’처럼 씁니다. ‘책상 · 의자’처럼 양옆을 띄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함께 놓인 말에는 반드시 가운뎃점을 찍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의 해설은 한 단위로 묶어 보일 때 가운뎃점을 쓰고, 각 항목을 낱낱이 나열할 때는 쉼표를 쓰거나 부호 없이 적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글쓴이가 무엇을 한 무리로 보이려는지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짝을 잇고, 반복되는 말을 줄일 때
‘찬성·반대 의견’, ‘동해·서해·남해’처럼 서로 짝을 이루거나 같은 기준으로 묶이는 말 사이에도 가운뎃점이 들어갑니다. 안내문에서 ‘교사·학생 간담회’라고 쓰면 두 집단을 함께 가리킨다는 뜻이 또렷해집니다. 이때 점을 읽을 때마다 소리 내어 ‘점’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에서 관계를 보여 주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반복을 덜어 낼 때는 가운뎃점의 역할이 더 분명합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금·은·동메달’로 적으면 마지막의 ‘메달’이 앞의 ‘금’과 ‘은’에도 걸립니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은 ‘상·중·하위권’으로 줄일 수 있고요. 공통으로 붙는 부분을 한 번만 적되, 세 말이 함께 묶였다는 사실을 점으로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이런 경우 가운뎃점 대신 쉼표를 쓰는 것도 허용합니다. 따라서 ‘금, 은, 동메달’ 역시 규정에서 인정하는 표기입니다.
다만 줄인 말이 독자에게 곧바로 풀리지 않으면 원래 말을 모두 쓰는 편이 낫습니다. 학생에게 ‘한·화·양·인화·코팅지’를 읽혀 보면 무엇이 각각의 ‘지’인지 잠시 멈칫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국립국어원도 이처럼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는 예에서는 반복되는 성분을 그대로 적는 편이 낫다고 안내했습니다. 부호는 글을 짧게 만드는 도구이지만, 읽는 사람의 수고까지 늘려서는 곤란합니다.
6·25는 되는데 날짜에도 찍을까요?
‘6·25 전쟁’이나 ‘3·1 운동’의 숫자 사이에 놓인 점도 자주 눈에 띕니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두 항목을 묶는다기보다, 특정한 의미가 있는 날을 나타냅니다. 현재 규정에서는 이런 날의 월과 일을 아라비아 숫자로 적을 때 ‘6.25 전쟁’, ‘3.1 운동’처럼 마침표를 쓰는 것이 원칙이고, ‘6·25 전쟁’, ‘3·1 운동’처럼 가운뎃점을 쓰는 것도 허용합니다. 익숙한 ‘6·25’를 틀렸다고 고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이 대목은 규정이 바뀐 시점을 함께 기억하면 덜 헷갈립니다. 문장 부호 규정은 2014년에 개정되어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해설에 따르면 예전에는 이런 날에 가운뎃점을 썼지만, 실제 글에서 마침표가 널리 쓰이고 자판으로 입력하기도 편하다는 점을 반영해 마침표를 원칙으로 삼고 가운뎃점을 허용했습니다. 말이나 부호의 쓰임은 사람들이 실제로 글을 쓰는 방식과도 맞물려 움직입니다.
일반적인 연월일 표기는 별개로 봐야 합니다. ‘2026. 11. 5.’처럼 마침표로 연, 월, 일을 나타낼 수 있지만, 여기에 가운뎃점을 옮겨 ‘2026·11·5’라고 적는 방식은 문장 부호 규정의 날짜 표기가 아닙니다. ‘6·25 전쟁’의 점은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이름 속에 있고, 평범한 날짜의 점은 연월일을 표시합니다. 모양이 비슷해 보여도 쓰는 자리가 다릅니다.
점이 없을 때 더 자연스러운 말도 있습니다
‘직·간접 경험’이라고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줄인다는 생각은 자연스럽지요. 그런데 ‘직간접’은 이미 한 단어로 굳어진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의 문장 부호 해설은 ‘선후배’, ‘민형사’, ‘직간접’처럼 한 단어가 된 말에는 가운뎃점이나 쉼표를 쓰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경우에는 ‘직간접 경험’이라고 쓰면 됩니다.
수업에서 가운뎃점을 가르칠 때 저는 점을 찍기 전에 먼저 묻습니다. 이 말들이 짝인가, 같은 기준으로 묶이는가, 아니면 뒤의 말을 함께 쓰기 때문에 앞에서 줄였는가. 셋 중 어느 쪽인지 설명할 수 있으면 점을 찍을 자리도 대개 보입니다. 설명이 길어지고 뜻마저 흐려진다면 말을 풀어 쓰면 됩니다. 작은 점 하나보다 독자가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더 중요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