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욕탕의 시간을 품은 미술관
경남 남해군 설천면에는 욕조와 수도꼭지, 거울을 그대로 남겨 둔 전시 공간이 있다. 눈내목욕탕미술관은 옛 목욕탕의 구조를 지우지 않고 지역 미술을 담아낸 문화공간이다. 물을 채웠던 욕조에는 목재 벤치가 들어섰고, 세면대 거울 위의 선반에는 작은 그림들이 놓였다. 과거 주민들이 이용했던 생활 시설과 현재의 전시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미술관은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696번길 16 설천면복지회관에 있으며 전시실은 건물 1층에 자리한다. 남해대교와 노량 일대를 돌아본 뒤 설천면 안쪽으로 이동할 때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실내 문화공간이다. 해안과 마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남해 여정에 지역 미술과 생활 건축을 만나는 시간을 더한다.
빈 복지회관에 더한 새로운 역할
눈내목욕탕미술관은 비어 있던 옛 설천면복지회관을 고쳐 2022년 7월 문을 열었다. 설천면 주민자치회는 목욕탕의 형태를 남기는 방안과 공간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새로운 관광시설을 별도로 세우기보다 주민들이 사용하던 공공건물에 문화 기능을 보탠 사례다.
조성 사업은 2020년 12월 경남도의 소통하는 읍면동 혁신 주민센터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건물 안전진단과 설계 자문을 거쳐 2022년 3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6월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목욕탕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정비했다.
당시 1층은 지역 예술을 소개하는 미술관으로, 2층은 공유 사무실과 건강 증진 공간으로 계획됐다. 건물 전체를 주민 생활과 연결해 다시 활용하려는 구성이었다. 여행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곳은 이 가운데 옛 목욕 공간을 활용한 1층 전시실이다.
수도꼭지 위에 놓인 그림
전시실에는 흰 타일 벽과 높이가 낮은 창문이 남아 있다. 천장에 설치한 레일 조명이 벽면 작품을 비추고, 바다와 해안, 마을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목재 액자와 검은색 액자에 담겨 이어진다. 전시장으로 바뀌었지만 벽의 재료와 설비는 이곳이 목욕탕이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작품을 거는 방식은 벽의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작품은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걸려 있고, 작은 액자는 거울 위로 길게 이어진 선반에 놓였다. 과거 세면 공간에 설치됐던 낮고 긴 구조물이 현재는 그림을 받치는 전시대 역할을 한다.
거울 아래에는 금속 수도꼭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다. 흰 타일을 배경으로 세면 자리가 연속되고, 그 위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작품들이 배치됐다. 수도꼭지와 거울을 가리지 않은 덕분에 관람객은 이전 시설의 용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옛 시설을 별도의 진열장 안에 가두지 않고 전시실 자체의 일부로 사용한 점이 이 공간의 핵심이다. 세면 자리와 벽의 높이, 방을 구분하던 구조가 그대로 이어져 과거 목욕탕의 규모와 배치를 보여준다. 그림을 감상하는 동선 역시 남아 있는 시설의 위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빈 욕조가 만든 관람석
안쪽 욕조에는 물이 빠진 자리를 따라 목재 벤치가 설치돼 있다. 벤치는 욕조 내부 벽면을 감싸고 있으며 가운데 바닥은 비어 있다. 위쪽 흰 벽에 걸린 해안 풍경과 아래쪽 초록색 타일, 목재 벤치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욕조 주변에서는 여러 종류의 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쪽 벽에는 둥근 무늬가 이어지고, 가장자리의 띠와 바닥에는 초록색과 흰색의 기하학적 무늬가 반복된다. 옛 목욕탕에서 사용하던 작은 타일이 넓은 면을 채우고 있어 당시 시설의 재료와 마감 방식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돌로 마감한 욕조 가장자리와 목재 벤치는 평평한 바닥 아래로 감춰지지 않았다. 물을 담던 부분과 주변 통로 사이의 높이 차이도 남아 있다. 관람객은 그림을 따라 이동하면서 욕조의 모서리와 목욕탕 시절의 통로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욕조 앞에는 안쪽으로 굽은 금속 손잡이도 보존돼 있다. 목욕시설에서 쓰던 높이와 형태를 유지한 손잡이 아래로 초록색 무늬 바닥과 벤치가 이어진다. 바닥 전체가 같은 높이로 정비된 공간은 아니므로 이동할 때는 작품뿐 아니라 발밑의 경계도 살펴야 한다.
전시실은 건물 1층에 있지만 내부 모든 구간의 바닥 높이가 같지는 않다. 보행이 불편한 관람객은 욕조 내부로 내려가기보다 바깥 통로를 따라 벽면 작품과 보존 시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장소의 층수와 내부 이동 여건을 구분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명과 재료가 잇는 과거와 현재
목재 벤치가 이어지는 벽 가까이에는 둥글게 짠 형태의 조명이 놓여 있다. 흰 타일과 금속 수도꼭지가 남은 공간에 목재와 짜임 재료가 더해졌다. 천장의 레일 조명은 벽면 작품을 비추고, 낮은 위치의 조명은 욕조 주변의 작은 구석을 밝힌다.
기존 시설을 철거하거나 벽 뒤로 숨기지 않고 벤치와 액자, 조명을 더해 새로운 쓰임을 만든 구성이다. 과거 목욕탕의 구조가 현재 작품의 설치 위치와 관람객의 이동 경로까지 결정한다. 건물의 흔적과 전시 장치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거울 앞에서는 맞은편 벽의 그림과 욕조 손잡이가 함께 비친다. 액자가 걸린 벽을 지나 거울과 마주하면 조금 전 둘러본 공간이 반사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목욕탕 시절의 거울을 남겨 둔 결과, 벽 뒤쪽의 전시와 관람객의 동선이 실내에 겹쳐 보인다.
벽 사이의 넓은 출입구는 다음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다. 문 주변에도 흰 타일과 세면 설비가 계속돼 두 방이 같은 목욕시설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쪽 벽을 살펴본 뒤 통로를 지나 반대편을 돌아보면 선반 위의 작은 액자까지 차례로 확인할 수 있다.
남해의 바다와 마을을 담은 작품
전시된 풍경화에는 주황색 지붕이 모인 마을과 검은 선으로 이어지는 해안이 등장한다. 건물이 촘촘하게 들어찬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는가 하면 바다와 산의 큰 형태에 집중한 작품도 있다. 남해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해안 풍경이 작가마다 서로 다른 선과 면, 색채로 표현된다.
마을을 다룬 작품에서는 지붕과 골목의 형태가 여러 방향으로 겹쳐진다. 검은색과 흰색을 바탕으로 일부 지붕과 땅에 주황색을 더해 건물과 주변 지형을 나눴다. 제한된 색채 속에서도 마을의 밀도와 지형의 흐름이 구분된다.
다른 벽에는 청회색이 넓게 펼쳐지고 아래쪽에 주황색이 자리한 세로형 그림이 걸려 있다. 주변의 작은 액자와 달리 위아래로 길게 뻗은 작품이어서 벽면 한쪽에 독립적으로 배치됐다. 그 옆으로는 목재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방의 출입구가 이어진다.
풍경이 비교적 또렷하게 보이는 작품 옆에는 검은 선과 작은 무늬를 빽빽하게 채운 그림도 전시돼 있다. 멀리서는 넓은 검은 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반복되는 선과 그 사이의 빈틈이 나타난다. 같은 벽에서도 표현 방식이 달라 작품마다 관람하는 거리와 머무는 시간이 달라진다.
목재로 벽을 두른 작은방에도 그림이 이어진다. 주황색이 들어간 해안 풍경과 붉은 바탕의 둥근 형태를 담은 작품이 걸려 있다. 흰 타일이 중심인 바깥 전시실에서 문 하나를 지나면 목재 벽을 배경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구간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작품 옆에 제목과 설명이 마련돼 있다면 소재와 표현 방식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바다와 마을을 다룬 작품이라도 실제 장소와 화면을 구성한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지붕이나 해안선처럼 눈에 먼저 들어오는 요소를 살핀 뒤 설명을 읽으면 작품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학교와 마을을 연결한 전시장
눈내목욕탕미술관은 지역에서 만든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2025년 1월 열린 그림책 작가 되기 출판 기념 전시에서는 설천초등학교의 그림책과 캔버스 작품, 학부모의 도예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만든 결과물이 마을 전시장에 모인 사례다.
전시는 시기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실제 방문 때 걸려 있는 작품은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작품이나 전시를 목적으로 이동한다면 전시 기간과 종료일, 관람시간과 비용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단체 관람이나 별도 프로그램이 운영될 경우에는 해당 안내에 명시된 주최 기관을 통해 예약 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내용이 달라져도 욕조와 세면 자리, 수도꼭지와 거울 등 건물에 남은 목욕탕 구조는 독립적인 관람 요소로 남는다. 그림만 빠르게 지나치기보다 욕조 가장자리와 세면 공간을 함께 살펴보면 건물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전환됐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관람 동선과 현장 정보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목적지는 눈내목욕탕미술관으로 설정하고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696번길 16인지 확인하면 된다. 주차는 현장의 표지와 지정 구역을 따르면 된다. 입구의 전시 안내를 먼저 확인한 뒤 세면 자리를 따라 벽면 작품을 보고 욕조 주변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작은 작품은 거울 위 선반에 놓여 있어 수도꼭지 가까이에서 보게 되고, 욕조 건너편의 큰 그림은 가장자리 통로에서 먼저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크기와 설치 높이가 제각각이므로 시선을 위아래로 옮기며 천천히 이동하는 관람 방식이 공간과 잘 맞는다.
욕조 가장자리의 작은 화분과 수도꼭지 옆 조명은 옛 생활 공간의 실제 크기를 드러낸다. 작은 액자를 받치는 선반과 벽을 따라 놓인 거울, 돌로 마감한 욕조 테두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이어진다. 그림과 건물의 이전 용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눈내목욕탕미술관 관람의 중심이다.
설천면에서 이어지는 여행 동선
설천면 안에서 일정을 이어갈 경우 구두산 일대의 상상양떼목장 편백숲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초지와 편백숲을 갖춘 야외 공간이어서 실내 전시 중심의 미술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두 장소를 같은 날 방문한다면 목장의 입장 마감 시간과 미술관 전시시간을 비교해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다.
노량 방향으로 이동하는 일정에서는 남해대교와 남해 충렬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잠시 모셨던 자리에 세워진 사당이다. 설천면 일대에서 마을 문화공간과 해안 경관, 역사유산을 구분해 만나는 동선이 구성된다.
미술 작품에 관심이 있는 관람객은 풍경화와 전시 구성을 중심으로, 오래된 건물의 활용 방식에 관심이 있는 관람객은 욕조와 세면 자리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야외 일정이 날씨의 영향을 받는 날에도 실내 전시 공간이라는 특징이 있다.
눈내목욕탕미술관은 동네의 오래된 공공건물에 전시라는 새 역할을 더한 장소다. 욕조와 수도꼭지, 거울을 남긴 전시실에서 과거의 생활 흔적과 현재의 문화 활동이 나란히 드러난다. 바다와 마을을 담은 그림 사이로 목욕탕의 구조가 이어지며, 설천면의 시간과 지역 미술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