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에서 개헌 뉴스가 나오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찬성표가 많이 나오면 바로 헌법이 바뀌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국회 표결은 여러 관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개정안을 제안한 뒤 국민에게 알리고,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공포하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어느 단계에서 몇 명의 동의가 필요한지 알면 개헌 보도의 숫자도 읽기 쉬워집니다.
헌법은 왜 법률보다 바꾸기 어려울까요?
헌법은 국가기관의 권한과 국민의 기본권을 정하는 기본 규칙입니다. 일반 법률은 헌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헌법 개정 절차에는 일반 법률보다 높은 의결 기준과 국민투표가 들어갑니다. 국가기록원은 이런 헌법을 ‘경성헌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바꾸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바꾸기 전에 더 넓은 동의를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현행 헌법의 개정 절차는 제128조부터 제130조에 담겨 있습니다. 순서대로 쓰면 발의, 공고, 국회 의결, 국민투표, 공포입니다. ‘발의’는 개정안을 공식으로 제안하는 일이고, ‘공고’는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국회가 의결하더라도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개정안은 확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발의하고, 얼마 동안 공개하나요?
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습니다. 재적의원은 그 시점에 국회의원 신분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령 재적의원이 300명이라면 의원 발의에는 최소 151명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발의하는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도 거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반수는 정확히 절반이 아니라 절반을 넘는 수입니다.
제안된 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 공고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조문을 읽고 어떤 권한이나 권리가 달라지는지 검토할 시간입니다. 표어만으로 개헌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말 아래에서도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 배분, 임기, 선거 방식은 서로 다른 조항으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제한도 있습니다. 헌법 제128조 제2항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를 늘리거나 중임 규정을 바꾸는 개헌은 그 개정안을 제안할 당시의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습니다. 임기 규칙을 바꾸는 논의와 현직 대통령에게 그 규칙을 적용하는 문제를 구분해 둔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몇 표가 필요할까요?
국회는 개정안이 공고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합니다. 찬성 기준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입니다. 재적의원이 300명이라면 최소 200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의 3분의 2가 아니라 재적의원 전체를 기준으로 계산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참석자가 적다고 필요한 찬성표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일반 법률안은 원칙적으로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결됩니다. 개헌안의 문턱이 더 높은 셈입니다. 국가기록원의 헌법 개정 절차 설명에 따르면 개헌안 표결은 기명투표로 진행됩니다. 또 공고된 안을 국회 표결 단계에서 수정해 의결할 수 없습니다. 국민에게 공개한 문안과 국회가 의결하는 문안이 같아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내용이 달라진다면 공개와 심의 과정부터 다시 따져야 합니다.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곧바로 시행되나요?
국회가 의결한 개정안은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입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기준이 있습니다. 먼저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해야 합니다. 이어 실제 투표한 사람 과반수가 찬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선거권자가 1,000명이라면 적어도 501명이 투표해야 하고, 정확히 501명이 투표했다면 그중 최소 251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전체 선거권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민투표에서 확정된 개정안은 대통령이 즉시 공포합니다. 다만 ‘공포’와 ‘시행’은 같은 날짜일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새 조항을 언제부터 적용할지는 개정안의 부칙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확정되고 10월 29일 공포됐지만, 시행일은 1988년 2월 25일이었습니다. 국회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기록에서도 이 날짜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 요구와 대통령 직선제 논의를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9월에 개정안을 공고했고, 10월 12일 국회가 의결했으며,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확정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국민투표 찬성률은 93.1%였습니다. 이 연표를 보면 정치권의 합의만으로 헌법이 바뀐 것이 아니라, 공개된 문안에 대한 국회 표결과 국민의 투표가 차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헌을 두고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충분한 검토가 먼저라는 의견이 함께 나옵니다. 제도와 사회 현실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바뀔 조항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현행 규정의 어떤 부분을 유지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제안된 문안, 각 단계의 날짜, 적용 시점을 놓고 이야기할 때 논의가 더 분명해집니다.
